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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기 Jul 20. 2019

기억 속 우붓의 풍경

장마도 없던 초여름이 지나고 한여름의 태풍이 주말을 덮은 저녁, 겹겹의 구름과 덥고 습한 공기가 가득한 풍경. 작년 겨울의 우붓과 비슷하다.

잔나비의 음악을 자주 들었다. 돌로 지은 붉은 기와의 낮은 집들로 가득한 마을. 해질녘 평화로운 마을과 뒤덮인 구름과 노을로 가득한 풍경이 보이는 조용한 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잔나비의 음악을 자주 들었다.

스쿠터를 타고 논이 펼쳐진 구불구불 도로를 드라이브하고, 손님이 별로 없는 단골 음식점에서 미고랭이나 나시고랭을 먹고, 담배를 한대 피우고 소설을 읽었다.

온화한 표정의 사장님은 내가 오면 나시고랭? 이라고 먼저 묻는다. 내가 좋아하는 가게의 끝자리로 걸어가면 까만 개는 나를 따라오며 내 발목을 살짝 깨물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BTS를 좋아한다는, 언제나 밝은 미소의 직원은 재떨이를 먼저 가져다주고, 나시고랭을 가져다주고, 망고쥬스를 가져다준다. 까만 개는 내가 밥먹는 동안 내 옆에 앉아 밥먹는 모습을 불쌍히 쳐다본다. 내가 밥을 다 먹으면 거의 빈 접시를 열심히 햝는다. 그리고 밝은 미소의 직원은 개한테 한소리 하며 빈 접시를 치워준다. 그리곤 나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등을 기대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어쩌다 스콜같은 소나기가 오면, 등 뒷쪽에 있는 연못에 내리를 비를 쳐다보고, 하릴없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책을 계속 읽는다. 까만 개는 가게 반대편 끝 자리 방석에 누워 자거나, 지나가는 행인이라도 있으면 가게 입구로 나가 쳐다보거나 짖는다. 비가 그치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계피와 과일을 섞은 홈메이드 주스를 사고 가게를 나선다.

헬멧을 쓰고 스쿠터를 타고 시동을 걸고, 잠시 우붓 시내를 한바퀴 드라이브한다. 골목을 걸으며 구경을 하는 사람들, 여행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우클렐레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가게 주인, 요가복 차림으로 요가매트 가방을 들고 요가원으로 향하는 사람들, 단체로 버스를 기다리는 중국인들, 2층 가게에서 한가하게 거리를 쳐다보며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멋진 레스토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자기 몸만한 여행가방을 메고 숙소로 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헬멧을 쓰지 않고 스쿠터를 타는 여행자를 잡으려 도로를 주시하는 경찰들.

숙소로 돌아와, 숙소를 관리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저녁식사로 미고랭을 해줄 수 있는지 묻는다. 할머니가 미소지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2층으로 올라간다. 짐을 풀고 콜라를 마시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한다.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고 바지만 입은 채 거실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몸이 마르기를 기다린다.

해질녘 평화로운 마을과 뒤덮인 구름과 노을로 가득한 풍경이 보이는 조용한 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잔나비의 음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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