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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장 Jul 09. 2024

시간을 설계한다는 것

몇일 전 서울 시립대학교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오래 된 학교이니만큼 오래된 건물이 많았다. 조금만 손보면 더 멋진 건물이 될 것 같은 것들도.


나중에 심은 것인지 처음부터 심은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덩굴로 뒤덮여 본래 모습을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건물도 많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저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덩굴로 뒤덮인 지금의 모습을 의도한 것일까.


건축가는 집 짓기 전에 일이 끝나고 시공자는 집을 지으면 일이 끝난다. 그런데 집의 시간은 그 때부터다. 준공을 하고 사람이 살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보통 디자인이란 집을 짓기 전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준공 후 들어설 멋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투시도를 이리 저리 그린다.

10년 후, 20년 후의 모습은 잘 상상하지 않는다.

건축은 지어지면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거의 그대로 수십년을 지내게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집을 다 짓는 순간부터 다른 측면의 디자인이 시작된다.


시간의 디자인.

나무가 자라고 건물에 세월의 때가 묻으며 진짜 건축이 점점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조경설계라는 것이 시간을 설계한다는 말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시간을 설계한다는 말, 정말 멋진 말이 아닌가!


안도 다다오의 다큐멘터리에 나온 말 중 여전히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있다.

"사수가 얘기해 준 건데, 집 앞에 나무 한그루를 심으면 실패하지 않아요. 집이 못생겨도 나무가 다 가려주니까."


그래서 문호리주택에도 대문 옆에 단풍나무를 심었다.

10년 뒤에는 나무가 울창해져 집이 더 근사해지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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