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관리가 필요 없는 조경을 하겠노라 마음을 먹은 것도 있었지만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 구성 방식을 보고 자극을 받았던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만든 조경이 올해로 만 3년이 되어가고 이제 완전히 자리 잡은 식물들은 첫해 빈약하기 그지없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손님이 올 때마다 풀 좀 뽑으라는 소리(?)를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초와 그라스는 꽃이 있기는 하지만 화려하지 않다. 대신 봄철 머리를 바짝 깎고 다시 자라는 시기까지 약 2달을 제외하면 1년 내내 예쁜 잎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풀떼기라며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풀들을 사랑하고 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애정하는 아이는 감동사초와 파니쿰이다.
봄철 가장 먼저 감동사초의 꽃이 올라온다. 그걸 보면 이제 따뜻해지겠구나 하는 마음도 같이 올라온다. 잎은 가늘고 보드랍다. 만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번식도 잘된다. 그런데 높이가 낮아서 그런지 주변으로만 번식하고 큰 식물들에 가려 비실대다가 겨울을 나고 나면 대부분 죽고 없다. 대신 내가 원하는 위치로 잘 옮겨심기만 하면 잘 자라준다.
파니쿰은 잘 번지지 않는 대신 잘 죽지도 않는다. 원하는 곳에 심으면 그대로 자라주고 분묘를 하면 그대로 또 잘 커준다. 적당한 높이로 인근집들의 시선도 가려주고 가을이면 빨간 꽃이 기분 좋은 색감을 내준다. 관리라고는 1년에 한 번 머리를 깎아주는 것이 전부다.
그에 반해 모닝라이트는 씨앗이 잘 퍼지고 잘 자란다. 관리를 최소화하려면 잘 죽지도, 잘 번식하지도 않는 아이들이 좋은데 이 녀석은 지나치게 잘 자라고 지나치게 잘 번식한다. 가장 큰 단점은 잎이 거칠다는 것인데 장갑을 끼고 만지다가도 팔뚝에 긁혀 피를 본 적이 종종 있을 정도다. 이미 몇몇 식물들을 휘감아 죽여놓았다. 잎이 거칠어서 그런지 주변 식물들이 영 힘을 못쓴다. 거친 잎으로 주변 친구들을 괴롭히는 모양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정리할 놈들은 미리 뽑아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한해를 지날 때쯤 꽃이 좀 부족한 것 같아 꽃이 피는 러시안 세이지와 잉글리시 라벤더를 사다 심었다. 역시 관리가 별로 필요 없는 종류로 심었는데 잉글리시 라벤더는 양평에서 잘 안된다는 얘기를 들어서(라벤더는 원래 건조하고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다) 큰 기대를 안 했는데, 현관문 앞 양지바른 곳에 심어두었더니 번성을 하였다. 생각보다 너무 커져서 조밀하게 심어져 있던 것을 마당으로 옮겨 심었고 역시나 번성을 하고 있다. 봄이 끝날 무렵이면 풍성한 라벤더 꽃을 보고 몇몇은 잘라 꽃병에 두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초기 조경 계획은 오가든에서 해주셨다. 그라스와 사초 중심의 정원을 구성하고 거기에 매해 조금씩 꽃들을 추가하고 있다. 수영장을 설치하고 텐트를 치는 공간은 비워두었지만 점점 풀들이 자라고 사초들도 마당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적당한 긴장감마저 든다.
조경에 관심이 있다면 피트 아우돌프의 번역된 책이 있으니 관심을 가져보시고, 서초구 헌릉에 있는 오가든을 방문해 보자. 여전히 1년에 한 번쯤 안부를 묻고 있지만 영 도움은 못 되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광고 아닌 광고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