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조달청에서 발주한 영암도서관 설계공모에 참여했다. 경기도 교육청의 시스템처럼 상당 부분 개선된 것이 보였고 소도시의 도서관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여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 끝나고 보니, 경기도 교육청의 어느 심사위원분의 말처럼 시스템은 참 좋은데 이상하게 당선은 늘 정해져 있는 것 같다는 묘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입상한 사무실을 보고 있자니 공모를 많이 하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정말 잘하는 사무실들이 입상했구나 하는 것을. 먼저 축하를 보낸다.
예전에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서 유현준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심사위원을 싹 다 바꿔야 한다. 내가 전부 심사하고 싶다.
그때는 뭐 저런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있나 의아했는데, 지나고 보니 전부 맞는 말이다. 심사경험이 미천하지만 늘상 좋은 계획안은 있는 것 같다. 그것을 보는 눈이 없거나 좁은 나라에 이런저런 끈들로 엮여 팔이 안으로 굽었을 수도 있다. 심사위원의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에 수십, 수백억의 세금이 투입되는 것이라면 그 심사위원의 권한에 걸맞는 책임을 주어야 한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직책은 어디에도 없다.
LH 감리 관련 수천만 원의 뇌물이 오간 사건이 얼마 되지 않았다. 당선된 사무소는 있는데 누가 당선을 시켰는지는 아무도 관심 없다. 우리는 제안을 하고 당선되기를 기다리는 처지인데, 정작 당선시킨 사람은 주목을 받지도, 받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뭐 이렇게 설계했냐 욕할 게 아니라 뭐 이런 걸 뽑아놨나 욕해야 한다.
지금 공공건축 심사 과정을 보면, 과정'만' 공정하게 보인다. 소수의 투표자에 의해 결정되는 선거가 있다면 그 투표자는 공정할 것으로 기대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존경과 추천을 필요로 할 것이다. 대의 투표에 가까운 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가 계속 논의해야만 한다. 공공건축가 제도를 처음 만들었을 때 여러모로 훌륭한 분들이 그 자리에 있었고 잘 작동했던 것을 경험했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물론 이번 공모는 매우 공정할 뿐만 아니라 훌륭한 심사위원들이 소신껏 잘했을 것이라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나라장터에서 해당 공모를 검색하면 심사결과를 모두가 볼 수 있다. 아, 마지막 칼라사진은 우리의 안이다. 나만 좋았던 것 같다. 광장에 방문하는 사람에게 그늘과 위요감을 주는 회랑을 계획했다. 광장 한쪽에는 근사한 숲도 만들었다. 소도시의 도서관은 압축적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밀도가 낮은 곳에 밀도를 높이는 방법은 하나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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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공모 #비판
회랑을 만들어 광장에 그늘을 제공하고 2개층의 열린 도서관을 제안했다. 소도시에는 압축적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