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을 찾는 중입니다.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직장경력 11년 차, 5년에 한 번씩 이직을 하고 있습니다. 11년째 사회생활을 하는 중이니 이번이 3번째 직장 차례인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직에 성공했습니다.
(짝짝짝 셀프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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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을 함께한 동료들을 떠나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겠다는 결심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5년 전 첫 직장을 떠나올 때에도, 엊그제 두 번째 직장의 문을 닫을 때에도 많은 아쉬움과 불안함이 함께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함을 바꾸는 결정을 합니다.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겠지만 심플하게, 더 큰 회사에서 새로운 직무를 탐구해보고자 퇴직원에 서명을 했습니다.
퇴직을 앞둔 시점, 직장동료들은 하나라도 더 주려고 노력하는 착한 동네형이 되어버립니다. 직급이라는 껍데기를 벗고 지인이 되는 순간, 둘 사이에 오가는 말은 한층 자유롭고 솔직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인생에 대한 조언, 가정에 대한 조언, 새로운 직장생활에 대한 조언, 그리고 응원 등이 오갑니다. 평상시 직장생활에서는 낯간지러워서, 혹은 사생활에 대한 간섭으로 여겨질까 못 나누던 대화거리가 자연스레 주제로 자리 잡습니다. 이런 대화의 장을 퇴직할 때에나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아무리 술자리에서 솔직할지라도 맨 정신에 진솔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즘 애들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더라."
아들과의 대화를 예시로 들며 좋아하는 이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아직 학생인 아들과 30대 후반에 접어든 저를 '요즘 애들'로 함께 묶어주신 부분은 진심으로 감사한 부분입니다만 '평생직장'에 대한 의견은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이 한 문장에 대해서 왜 공감보다 반감이 앞섰는지, 이 한 문장이 왜 시시때때로 머릿속에서 다시 들려왔는지 생각해봤습니다.
'평생직장'이 없다는 것은 십수년 전 첫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흔히 하던 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변인들이 첫 회사에서 아직까지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있고, 앞으로도 충성을 다할 계획이지요. 물론 좋은 회사에 취직한 사람이 주변에 많기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남들이 알만한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래서 2번의 소속변경을 두고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이 늘 반반 정도였습니다. 수직상승이 아닌 수평이동에 가까운 이직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다운그레이드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해보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우선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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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직장에서 생산활동의 시작과 끝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을 이미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회사가 망하거나, 건강이 악화되는 불행을 겪지 않았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강산이 변하도록 월급쟁이 생활을 한 제가 꼰대의 대열에 들어갔기 때문에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원한다고 평생직장이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사실입니다.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고, 하고 싶은 일이 자꾸 바뀌던 제겐 평생직장이란 범접하기 어려운 개념 중 하나입니다. 운이 좋게도 하고 싶은 일을 일하고 싶은 회사에서 할 기회를 얻었지만, 과연 평생직장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물론, 남은 생산활동을 이곳에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타의에 의해서, 혹은 제 내면의 변화로 인해 중단되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될 예정입니다.
저는 '요즘 애들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다'라는 주장에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평생직장을 찾는 중입니다."
예전처럼 회사들이 앞다투어 성장만 하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회사가 나를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공무원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평생직장은 열심히 찾아야 만날 수 있는 보석 같은 것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겠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제가 가장 듣고 싶고, 제게 가장 힘이 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