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자율주행이 아니야
시니컬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
예전부터 운전을 싫어했습니다. 늘 체력이 다할 때까지 에너지를 쏟아붓는 타입이라 그런지, 운전만 하면 졸음이 몰려오고, 그걸 참으면서 하는 운전은 더욱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차를 샀고, 무난한 시기에 출산을 하여 무난한 빈도로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출산. 아기가 있으면 차가 필수라던데, 이 부분은 동의합니다. 차만 타면 잠깐 흥분했다 이내 잠드는 아기 덕분에 우리집 차는 수면제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자율주행이 가능해지면 제일 먼저 재우는 루트를 학습시킬 예정입니다. 스르르 눈을 감는 아기를 옆에서 지켜보다 저 또한 살살 졸기 시작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달콤합니다.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운전을 싫어하는 제게 큰 도움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술자리에 차를 몰고 가도 걱정이 없을 것이고, 장거리 운전을 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며, 가족과 함께할 때에 얼굴을 마주 보며 이동할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가 상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 테슬라건 현대차건, 어서 빨리 자율주행이나 상용화해라.'
아내는 이제 막 초보운전을 벗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운전할 상황을 피해 가지만, 필요할 때는 할 수 있는 그런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운전을 할 때에는 늘 주차를 걱정합니다. 마트 주차장에서 주차할 때면 뒤에서 오는 차량에게 큰 압박감을 느껴 주차가 더 어려워지는 현상들과 아직 씨름하는 중입니다. 어쩌면 저보다 더 자율주행을 바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율주행에 대한 사색이 깊어갈 때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자율주행이 되면 내가 차를 많이 이용하긴 하려나?'
내가 하는 이동의 9할은 출퇴근인데, 자율주행이 완벽하게 구현이 되면 출퇴근길에 잠을 잘 수는 있을지언정, 어차피 주차증이 없어서 주차를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가까운 지역으로 이동한다 쳐도, 주차공간이 없어서, 혹은 발렛비가 아까워 차를 가져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내 스스로 깨닫습니다. 자율주행이 운전의 불편함을 해소해줄 것은 자명하나 주차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제 차는 이대로 아파트 주차장을 지키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요.
애초에 운전을 즐기지 않는 제게는 자율주행이 된다 하더라도 차를 많이 이용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기차고, 경유차고, 휘발유 차량이고, LPG 차량이고, 수소차고 나발이고, 주차할 공간이나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