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로 불린 곳이다. 지금 중동 지역에서 가장 핫플은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나 카타르 도하를 떠올리겠지만, 두바이나 도하가 발전하기 전에는 베이루트가 중동의 허브 역할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레바논이 과거에는 로마 제국의 영향권에 있었고, 근대에는 프랑스의 식민지여서 나라 곳곳에 고대, 중세 유럽 분위기의 건축물이 남아있다. 그래서 아랍어 외에도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나라다. (다른 중동 지역은 주로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 또한 다른 중동 지역과 달리 이슬람교만큼이나 기독교의 비중이 크다. 레바논 현지 사람에게 이슬람교와 기독교 교인의 비율이 반반이라고 들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아보니 이슬람교 51%, 기독교 45%였다. 뭐 심리적으로는 반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레바논은 자유로운 나라다. 종교 비율에서 보듯이 다른 중동 지역보다 율법적인 분위기가 덜하다. 당장 레바논 여성들은 거리를 다닐 때 히잡을 쓰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다른 중동 국가들과 다르다. 물론 이슬람 사원에 들어갈 때는 국적 막론하고 여성이라면 최소한 스카프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레바논은 과거 2000년에 아시안컵이 열렸던 국가고,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여러 차례 원정 경기를 치른 곳이다. 나도 2013년 6월에 레바논 출장을 가게 됐다. 당시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원정경기 관계로 베이루트에서 경기가 있었다.
출국은 6월 1일 새벽이었다. 그런데 출국을 며칠 앞두고 베이루트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대사관에서 2km 떨어진 지역에서 로켓탄이 떨어져 폭발한 것. 레바논이 종교 갈등 등으로 내전이 끊임없이 벌어지는데, 이 폭발 사고도 이와 관련이 있었다.
폭발 사고 후 붉은악마 등 한국 축구팬의 레바논 원정 응원은 무산됐다.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출장 기자들은 불안감을 안은 채 레바논으로 출국했다. 이에 따라 개별 행동은 최소화하고 단체로 움직이기로 했다.
인천공항에서 베이루트 다마스커스공항까지는 직항이 없다. 두바이나 도하에서 갈아타고 가야 했다. 나를 비롯한 몇 명은 카타르항공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마도 에미레이트항공보다 가격이 싸서 그랬을 것이다. 어떤 루트를 이용하든 도착 시간은 비슷했으니까.
인천을 떠나 도하에 도착하고 3~4시간을 기다리며 간단한 식사도 하고 기념품도 산 뒤 베이루트행 비행기를 탔다. 도하에는 새벽에 도착했기에 잠깐이나마 일출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낯선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입국장으로 나오자 중동 특유의 냄새부터 맡았다. 출장 기간 이용할 차량에 탑승한 뒤 호텔로 향했다. 도시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고 파손된 것부터 눈에 들어왔다. 내전의 상처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도착하고 몇 시간 뒤 두바이에서 적응 훈련하던 대표팀이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 후 대표팀이 묵는 숙소에서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최강희 감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예약한 호텔은 나름 베이루트 시내 중심가였다. 이곳은 중심가라서 그런지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였다. 호텔은 다양한 음식점이 즐비한 거리로 이어졌다. 젊은 남녀의 모습도 쉽게 눈에 들어왔다. 과연 이곳이 며칠 전에 로켓탄이 떨어졌던 그곳이 맞는가 싶었다.
그 분위기가 너무 강렬해서 기사로 남겼다. 베이루트의 두 얼굴을 느낀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