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아니면 말고
계속해서 인터뷰를 보다 보니 대답하는 실력도 점점 늘고 긴장도 처음보다 덜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니면 말고'라는 마음 가짐으로 마음을 가볍게 가지기로 했다.
그래서 취업만을 목표로 인터뷰를 준비하고 기다리지는 않았다. 취업 준비하면서 동시에 제대로 쉬기에는 마음 한편이 불편하여 쉽지 않았지만, 마냥 인터뷰 준비만 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애초에 영국에 오기 전부터 취업 준비하면서 쉬기로 생각했으니, 그러기로 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퇴사 후 진짜 휴가를 즐기기 위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갤러리 방문, 펍에 가서 나의 취향에 맞는 맥주도 발견하고 새로운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의 일상, 취업 스토리 등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3년 넘게 코로나로 인해 못했던 해외여행도 갔다.
새로 사귄 친구의 제안으로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나라인 '자메이카'를 '방구석에만 있으면 뭐 하겠냐. 에라이 가보자.' 하며 따라갔다. 그렇게 약 4개월을 걸쳐 '모로코', '네덜란드', '스페인'을 여행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할 때 '나는 여행할 자격이 없다. 빨리 취업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컴퓨터만 붙들고 있었다. 두 번째 취업 준비생이 되어보니 그런 생각들은 다 부질없고 최대한 있는 힘껏 즐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내 젊음은 영원하지 않으며 이런 기회도 흔치 않으니 다 해보자!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취업 준비생들에게 말 해주고 싶다.
시간이 다소 걸릴지라도 무조건 된다. 그러니 지금을 즐겨라.
12월 초, 스페인 여행하기 직전 리크루터로부터 인터뷰 제안이 왔다. 나는 무조건 고.
간단히 회사 정보와 직무에 대한 소개받고 스페인 여행 후 인터뷰 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UX 디자인 과제를 받았다. 피그마를 이용하여 하나의 페이지를 기획 및 구성하는 것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짧았지만 최선을 다해 과제의 퀄리티를 올려 인터뷰 전날 제출했다.
12월 19일, 첫 번째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어는 UX 디자인팀의 매니저, HR매니저 2명이었다. 내가 디자인한 과제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그 순간 '아 됐다. 될 것 같다.'라는 느낌이 딱 들었다.
그리고 UX 지식 관련해서 Q&A 형식으로 그들이 질문하면 내가 대답하였다. 헷갈리거나 잘 알아듣지 못한 부분은 당당히 되물어보고 최대한 그들의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웃으며 첫 번째 인터뷰가 끝났다.
12월 22일, 두 번째 인터뷰가 진행됐다. 두 번째 인터뷰는 CEO와 HR매니저, UX 디자인팀의 매니저 3명이었고 회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 등 이것저것 대화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CEO가 나의 포트폴리오와 1차 인터뷰의 피드백이 인상 깊었고 같이 함께 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코멘트를 해줬다.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쾌지나 칭칭 나네!!!! 될 줄 알았어!!!! 그동안 깎였던 자존감들이 회복되다 못해 하늘 높이 솟구쳤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오퍼레터를 받아야 진짜 합격이기 때문이다. 오퍼레터는 언제 올까? 크리스마스가 하필 껴있는 바람에 크리스마스 끝나고 보내줄까? 영국은 대부분이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새해 초까지 휴가로 알고 있는데 그럼 1월 이후에 올까? 꺅 도대체 언제?!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드. 디. 어 오퍼레터를 받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짜부터 스페셜하다. 그동안의 마음고생들이 한순간에 싹 가셨다. 이것이 고진감래로구나. '내가 해냈다'라는 성취감은 정말로 달콤했으며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4개월 동안 크고 작은 목표를 성취를 함으로써 나에 대한 믿음이 쌓이고 나 자체로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요즘 왜 그렇게 사람들이 존버를 외치는지 알 것 같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버텨나가면 결국엔 내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타 언어로 일한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과 불안 사이의 설렘. 다시 사회 초년생이 된 기분이다. 영국 사회의 초년생으로서 앞으로 어떤 재미있는 일들이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