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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네이트 Oct 24. 2017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68번째로 읽게 되는 책 입니다.


'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여, 개인의 행위나 인식 등을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총체적인 구조와 체계에 대한 탐구를 지향한 현대 철학 사상의 한 경향이다. 


구조주의(Structuralism)는 매우 폭넓은 지적 분야를 포괄하는 이론으로 언어학, 인류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미학과 정치이론 등의 발달에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 곧 구조주의는 단순히 철학의 한 유파라기보다는 하나의 세계관이자 그로부터 비롯된 학문적 방법론으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 두산백과 中


 사실 책을 주문할 때 실망을 하진 않을까? 혹은 지식잔치의 향유를 보는 것은 아닐까? 등의 우려가 많았던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나서는 어쩌면 이런 글이 바로 '지식인의 사회적인 책임'을 하는 글이구나 싶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우치다 타츠루교수의 글을 쓰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했습니다. 지식의 군림이 아닌 지식의 나눔을 실현하고 싶음 절실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즉, 지식이란 것을 모두가 바닥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실질적인 발전을 위해 누군가가 초석을 깔아놓으면 다음 세대는 바닥이 아닌 무릎에서 부터 연구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하는... 그만큼 어렵게 받아들여지는 구조주의 라는 것을 초심자도 쉽게 접하고, 구조주의를 기반한 사고의 확장을 만들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책이 바로 이책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지식의 군림이 아닌 지식의 나눔'                                    

                                                                                                                                                                                                                                                                                                                

 개인적으로도 사실 너무나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이런 일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공부를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새롭고 궁금한 무언가를 이해하고 적용하려면 많은 시간이 들거나 혹은 중도에 궁금함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바로 '내가 그렇게 힘들게 알고 이해한 것을 누군가 다른 나와같은 사람이 있다면 쉽게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좀더 심오한 연구 등을 할 수 있도록 하자' 그런데 문제는 그것도 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시간을 좀더 벌구 있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책의 저자가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존경스럽고 큰 공감이 있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바닥에서 시작해서 무릎 까지만 하다가 마는 경우가 다 반사의 현실에서...


 어쩌면 이를 기반으로 구조주의라는 것에 대한 인식의 정도를 높일 수 있을 뿐더러 이와 관련된 업버젼의 책도 좀더 읽어볼 생각입니다. 


 책을 읽음에 손쉬움은 결국 몰입의 정도도 높일수 있었습니다. 책 속으로 좀더 들어가 보자면,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

'왜 우리가 지금까지 그것을 모른 채 살아왔는가?'


 대단히 중요한 글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삶을 사는 것에 있어서 근원이 되는 '왜?'라는 질문를 너무나 쉽게 간과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저 알수없는 당위성에 그래야만 한다고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한번쯤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와 왜 지금까지 그것을 모른 채 살아왔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바르게 세상을 보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재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유효성을 알려준 것이 바로 구조주의 입니다'

 이를 인식하는 것이 쉽지도 않았고 진정 많이 시간이 소유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가치의 당위성에 나름의 합리성에 어쩌면 많은 틀림이 아닌 다름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현실, 그것을 인식하고 행하기가 그토록 힘겹다는 사실, 아직도 많은 이들의 행동방식이 그런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에 대해 필연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타인이다. 우리는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늘 우리를 잘못 해석할 수밖에 없다. '각자가 각자에게 가장 먼 사람이다'라는 격언이 영원이 적용될 뿐이다. 우리에 대해 결코 '인식자'일 수 없다. -도덕의 계보 中' 

 '각자가 각자에게 가장 먼 사람이다'라는 말은 몇번을 읽어도 아쉬움과 답답함을 만들어 내는 듯 합니다. 내가 나자신을 항상 잘 이해하고 알고 있다는 생각의 프레임이 얼마나 무섭고 그를 기반으로 얼마나 많은 오류와 실수가 만들어 졌는지는 생각하니...  


'어떤 제도가 생성된 순간의 현장, 즉 역사적인 가치판단이 개입해서 그것을 더럽히기 전의 '가공 전 상태'를 훗날 룰랑 바르트는 '영도'라는 학술 용어로 부르게 됩니다. 구조주의란 한마디로 다양한 인간적 여러 제도(언어, 문학, 신화, 친족, 무의식 등)에서의 '영도의 탐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이어진 푸코의 '인간주의'를 이해하려면 책을 읽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지금, 여기, 나'로 표현되어지는 인간주의, 일종의 자아중심주의가 얼마나 많은 인디오를 희생했는지, 혹은 그 밖의 얼마나 많은 흑 역사의 근간이 되었는지를 이제는 다시금 생각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얼마전에 문득 나의 그림자를 사진으로 찍었던 기억이 남니다. 어쩌면 내가 나를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힘도 아마 이 책이 기반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푸코의 사회사를 읽을 때 중요한 것은 그의 '성 담론화'에 대한 비판에서 엿볼 수 있듯이 '권력'이라는 말을 단순히 '국가권력'이라든지, 그것이 조정하는 각종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실체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권력'이란 모든 수준의 인간적 활동을 분류하고, 명명하고, 표준화하여 공공의 문화재로 지의 목록에 등록하려고 하는 '축적 지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읽으면 더욱 구조주의의 필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듯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왜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나?' 되뇌이지 않을 수 없게됩니다. 숲이 말하려고 하는 내용은 너무나 방대했으나 우리는 단지 머리위의 하늘이 전부이고 눈앞의 꽃의 아름다움에만 빠져 그 달콤함속에 진화되어진 살을 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기호라는 것은 어느 사회집단이 인위적으로 약속한 '표시와 의미의 결합'입니다. 기호는 '표시'와 '의미' 사이에는 어떠한 자연적, 내재적 관계도 없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순전히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의 기능적 관계뿐입니다' 

 문제는 '표시와 의미의 결합'의 일반화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분류화에 따른 차별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력에 대한 이해가 없이 '지금, 여기, 나'를 기반으로 한... 


'에크리튀르와 스틸은 다릅니다. 스틸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호이지만 에크리튀르는 집단적이고 선택되고 실천되는 '선호'입니다. 에크리튀르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가 지닌 '자연'적 어법에 부여해야 하는 사회적 장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바르트는 썼습니다' 

 문제는 책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패권을 지는 자의 모든 말이 장애가 없는 '편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현재 매체나 정치인의 언어가 바로 그런 식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것들이 부지부실간에 에크리튀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발전의 기본틀은 '정-반-합'은 인지도 못하는 사이에 '정-정-합'의 구조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그려지는 그림만 그리게 된다는, 그것도 내가 원해서 그린다고 그린 그림이...


'인간이 타자와 공생하기 위해서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집단에 적용되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사회는 동일한 상태로 계속 있을 수가 없다'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먼저 타자에게 주어야 한다'는 두 가지 규칙입니다' 

 정지적이고 이기적인 생활을 가지고서는 역사에 기록이 남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그런가 싶습니다. 주변을 한번 봅니다. 그런가...


 단편적으로 전체의 맥락과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한번 둘러봤습니다. 짧은 책이지만 구조주의 근원이 되는 철학은 어떤 것이며, 그의 이유에 대한 전반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글이 있습니다. 또한 책의 제목에서도 보여지듯이 항상 접하기에 먼곳에 있다고만 느꼈던 이들에 대한 짧지만 임팩트 있는 글이 충분히 쉽게 쓰여져 있습니다. 약간의 관심과 흥미가 있다면 강하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좀더 지식의 눈을 뜨고 사고의 깊이를 늘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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