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나는 이 일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by 크네이트

에필로그 ― 나는 이 일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묻는다


1. 지금,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오후 6시 30분.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 습관처럼 컴퓨터를 끈다.

그리고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나는, 어떤 일을 한 걸까?”


처음 이 조직에 들어왔을 때는 모든 게 새로웠다.

아이디어를 내고, 밤을 새워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도,

‘내가 여기에 있다는 느낌’이 분명했다.

그땐 일하는 이유를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확실한, 어떤 소속감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회의는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말을 아껴야 하는 시간이 되었고,

보고서는 설득이 아닌 형식이 되었으며,

출근은 기대가 아니라 습관이 되었다.

그래도 떠나진 않았다.

그저 “지금은 때가 아니야”, “나가서 뭘 하지?” 같은 말들로

스스로를 달래며 남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내가 한 일이 누구에게 어떻게 쓰였는지 모른 채 하루를 마쳤고,

이젠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며 하루를 넘긴다.

감정은 줄고, 책임감은 남았으며,

처음 가졌던 기대 대신 익숙함과 체념만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변화는 갑작스럽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서서히 감정이 줄고, 생각이 멈추고,

나라는 사람도 함께 희미해졌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변화는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다.

보고도 모른 척하는 불공정,

말해도 바뀌지 않는 시스템,

그 안에서 다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접는 일들.


조직은 말하지 않는다.

“당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당신이 언제부터 조용해졌는지”

하지만 나는 느낀다.

내가 더 이상 이 일을 통해 나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2. 왜 나는 이 책을 쓰게 되었는가?


나는 몰입이 줄어드는 과정을 내 안에서 직접 경험했고,

그보다 더 아프게는 동료들이 하나둘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처음엔 누구나 열정적이었다.

주도적으로 나서고, 아이디어를 내고, 팀을 이끌던 사람들이

점점 말을 줄이고, 책임만 떠안고,

결국 “그냥 시키는 일만 하자”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 변화의 원인은 단순히 일이 많아서도, 개인이 나약해서도 아니었다.

그건 작고 반복된 불공정에서 비롯되었다.

일의 분배는 균형을 잃었고,

절차는 설명되지 않았으며,

관계는 경청 없이 끊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못된 것을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접고, 존재감을 거두었다.


나는 그것을 심리적 사직, 혹은 유지적 몰입이라 부른다.

성과는 내고 있지만 마음은 떠난 상태,

조직에 있으나 스스로를 지우는 상태.

그리고 이 상태는 생각보다 더 흔하며,

생각보다 더 조직을 망가뜨린다.


이 책은 그 침묵을 말하고 싶어서 시작되었다.

조직에 남아 있지만, 이미 마음은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성과’라는 수치로 판단하기 전에,

그 안에 어떤 감정의 균열이 있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고 싶었다.


3.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몰입은 회복될 수 있는가?’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나는 믿는다.

공정성이 회복될 수 있다면,

관계가 다시 연결될 수 있다면,

사람은 다시 자신을 회복하고, 일을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그 회복의 실마리는 거창한 전략이 아니다.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리더의 ‘한 문장’,

Job Crafting이라는 직원의 ‘작은 주도성’,

그리고 I-deals라는 ‘관계 기반 협상’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그 회복의 여정을 따라간다.

조직공정성이 무너졌을 때 사람은 어떤 심리적 단계를 겪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몰입도를 변화시키며,

끝내 ‘심리적 사직’이라는 조용한 이탈로 이어지는지를

연구와 사례,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그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전략들을

이론적 타당성과 실제 적용 가능성 속에서 제시하고자 했다.

조직이 다시 정서적 에너지를 회복하려면,

리더도, 구성원도, 시스템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이 책은 그 ‘함께’ 바뀌는 방법에 대한 실천 안내서다.


4.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지만, 그럼에도 일하고 있는 사람

∙ 성과는 내고 있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기뻐하지 않는 사람

∙ “그냥 버티자”는 말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사람

∙ 말하고 싶지만, “말해도 바뀌지 않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막는 사람

∙ 그리고, 지금 이 일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잃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


당신이 겪고 있는 그 ‘낮은 불만족’,

‘작은 이탈’,

그 ‘미묘한 체념’이

결코 작거나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싶다.


우리는 바꿀 수 있다.

거대한 제도가 아니라,

작은 제안에서부터.

그리고 그 제안은 조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은 여기서 끝나지만,

당신의 질문은 지금부터 시작될 수 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그 말을 다시 시작하려면, 무엇부터 바꿔야 하는가?”


당신의 한 문장,

당신의 작은 제안,

당신의 오늘 회의에서의 마지막 질문.

그것이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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