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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Oct 22. 2023

남겨질 이들을 위해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해 10


내가 이전의 글에서 했던 말이 있다.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남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검은색을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

어떤 이의 검은색은 은은하게 광이나 비치는 나를 바로 마주하지만, 누군가의 검은색은 거칠고 불투명해 자신을 돌볼 수가 없다. 그럼 당신은 자격이 있다. 5번의 과정만 거치면 편해질 수 있다.


첫 번째, 원망

사람은 누구에게 상처받느냐에 따라 아픔의 정도가 모두 다르다. 나를 잘 알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아프다. 가족이나 애인에게 상처받는 경우가 그렇다. "나를 제일 잘 알면서!, 사랑하면서 상처를 주다니!" 그들을 향한 서러움과 배신감이 몰려온다.

두 번째, 자책 

자책을 하는 건 어찌 보면 예견된 수순이다. 사실 나를 제일 잘 알고 가까운 사람은 가족도 애인도 아닌, 나 자신이다. 이때부터는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다. 내가 변변치 않아서, 평균이하의 사람이라서, 그런 내가 불행한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점차 어둠 속에 가라앉는다. 위로 떠오를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세 번째, 고의로 고통받기

자신을 고의로 더 악랄한 고통 속에 빠트린다. 처절한 노래를 듣고, 가슴 처첨한 영화를 보며, 온종일 술을 들이붓는다. 그리고 변명을 댄다. 슬픈 영화를 봐서,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래서 힘든 거라고. 괴로움에 대한 이유를 만들고 잠시나마 안도한다.

네 번째, 어둠에 적응하기 

몸도 마음도 일렁이다가 마지막 희망의 불이 꺼졌다. 처음엔 당황한다. 벽을 더듬거리다 버튼을 달칵거려 보지만, 이내 정전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 뒤엔 어둠에 적응되어 꼭 무섭지만은 않다. 드디어 어둠에 적응하니 사람들은 박수를 쳐준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야!" 어둠에 홀로 있다 보니 어느새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민한다. "그냥 잠이나 잘까"


여기까지 왔으면 드디어 마지막 과정이다.



마지막 과정은 내일 쓰겠다.





"그냥 내일 하자"

부지런함과는 거리가 먼 내가 습관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행동 중 하나이다.

나는 다른 이의 일사천리 한 실행력을 볼 때면, 그제야 내가 산더미처럼 쌓아뒀던 일들을 목격하고는 한다. (사실 이 글도 전에 쓰려고 했지만 지금 쓰고 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물론, 이 말에도 허점은 있다.

우리 누나는 오늘의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누군가는 이별을 말한 다음날 하루종일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며칠 전 나는 머리를 밀기 위해 바리깡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동안의 무시가 서운했는지, 밥도 마다한 채 작동하길 거부했다.


"아, 이거 왜 이래, 그냥 내일 해야겠다."


라는 결말이었다면 다음날 바리깡에게 뽀뽀라도 해줬을 거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날만큼은 미루거나 하지 않고, 나는 미친 실행력과 일사불란함 그 자체였다. 내 머리를 보니 당장 현역으로 입대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마침 다음 주에 는 동원훈련도 간다. 아마 예비군들은 내가 현역인 줄 알고 반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꼭 이러한 것들 때문은 아니지만, 종종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내가 그렇게 밉진 않다.

나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는 것이니까.


자살에 이르는 사람의 경로는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사건이 일어날지 예측하고 예방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최근에 종종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셨고, 친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내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다. 내가 머리를 자를 거라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조차도 실행에 옮기기까지 10 분도채 걸리지 않을 거라는 건 알 수 없었다. 그날 새벽, 날 막을 수 있던 건 가족도, 친구도, 나 자신도 아니었으며 그저 말썽을 부리던 바리깡만이 유일했다.


세상에는 문득 머리를 자르고 싶은 사람은 많고, 그 이유도 다양하다.

이별을 해서, 편해지고 싶어서, 내기에 져서, 그저 날씨가 더워서.

저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물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그저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잘 어울린다", "머리 이쁘네"라며 칭찬을 해줄 수 있지만, 목숨은 그렇지 않다.


죽을죄를 지은 사람 이거나, 누구보다 선했던 사람이라도 남아있는 이들에게 ‘영원한 작별’이라는 형벌을 선고할 자격은 없다.


머리카락을 자를 땐, 주변에서 '나'를 걱정해서 말리겠지만, 목숨을 끊을 땐,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말려주길 바란다.

그게 분노든 슬픔이든 나를 생각해 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태산이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말이 있다.

너의 목숨은 태산보다 귀중하고, 너의 슬픔은 태산보다 높지만, 남겨질 이들의 아픔은 하늘보다도 넓다.


지금까지의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가족과 친한 친구 같은 글이 되어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글이 '고장 난 바리깡' 정도만 되어 줄 수 있다면, 난 그 정도면 괜찮다고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너무나 간단명료한 문장이지만,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인생과 만남과 헤어짐이 전부 다르다. 누구는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고아원에서 태어난다. 어떤 이는 따뜻한 손길을 건네는 인연들을 만나지만, 어떤 이는 만나는 사람마다 내 뒤통수를 친다. 합의하에 서로 깨끗이 정리하는 이별도 있고, 한쪽의 일방적인 작별인 경우도 있다.

이렇듯 우리는 행복한 날들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괴롭고 힘든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자, 내 의지로 막을 수 없는 우연이다. 따라서 우리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

나는 우리의 헤어짐이 ‘외롭고 괴로운 남겨짐’이기보다는, 이별의 그리움 속에서도 '아름답고 후회 없는 기억들이 남겨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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