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y Sung Dec 25. 2023

나는 요즘 책을 천천히 읽는다.

책을 처음으로 제대로 열심히 읽고 싶었던 10년 전에는 다독(多讀)을 하고 싶었다. 1년에 50권 넘게 읽고 싶었고, 그러려면 속독(速讀)이 필요했다. 책을 빨리 읽으며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읽으려고 했다. 그래야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어 댔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 동안 50권의 책을 빠르게 읽고, 내가 읽은 책 목록을 보며 좋아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기억이 휘발된다. 분명히 나는 300쪽이 넘는 책을 읽었는데 머릿속에 남는 건 몇 문장이다. 그러면서 회의감이 찾아온다. 

'책은 읽어봤자 소용없어.'

그래서 휘발을 줄이고자 에버노트에 책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책을 두 번 읽는 습관이 생겼다. 한 번 읽을 때는 밑줄을 치며 책을 읽고, 두 번째 읽을 때는 밑줄 친 내용을 바탕으로 에버노트에 타이핑을 하며 책 내용을 정리했다.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처럼 여러 번 읽고 정리하면 기억이 보다 더 오래 남는다. 


하지만 여전히 책을 읽고 정리한다고 기억에 오래 남지는 않는다. 그래서 독서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책을 읽고 지식을 많이 얻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을 때의 만족감이 중요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몰랐던 지식을 새로 쌓아가는구나!'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이 이거였는데, 이 책의 저자도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이런 만족감을 얻으려면 책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 한 문장 되새김질하며 책을 읽으면 피아제가 이야기한 '동화와 조절'을 경험하며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면 행복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책을 천천히 읽는다. 그러면서 독서하는 그 순간을 즐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보다 더 현명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착각에 빠지며, 그 착각을 즐긴다. 어차피 지식은 휘발되기에 똑똑해진다는 것은 착각이지만, 책을 읽으면 내가 가진 생각들은 조금 더 견고해지고 지혜를 얻는 것은 진실이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책을 꾸준히 천천히 읽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학교는 2가지 측면에서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