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덧 교직 경력 18년 차에 접어든다.
강산이 두 번 가까이 변하는 시간 동안 학교 현장에 있으며 수많은 동료 교사들을 만난다.
젊은 시절, 내 눈에 비친 일부 선배 교사들의 모습은 다소 의아했다. 동료 장학이나 공개 수업이 잡히면 어떻게든 피하려 하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더라도 '대충' 끝내기를 희망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그때의 나는 혈기 넘치는 시선으로 그들을 재단하곤 했다.
'교사의 전문성은 수업에서 나오는데, 왜 저렇게 소극적일까? 수업에 대한 열정이 식은 건 아닐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 또한 경력이 쌓이며, 주변 교사들을 더 깊이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자신의 수업이 망하길 기대하는 교사는 단 한 명도 없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호흡하며 '교사로서의 행복감'과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아무리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교사라도, 교실 문을 닫고 아이들과 마주하는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설령 업무에 치여 준비가 부족했을지언정, 수업이 진행되는 순간순간에는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 애쓰는 것이 교사의 본능이다.
그렇다면 왜, 학교 행정이나 장학 활동 앞에서는 그토록 방어적이 되는 걸까?
그들이 거부하는 것은 수업 그 자체가 아니라, '타인에 의한 통제'다.
교사라는 직업군은 본래 높은 수준의 주도성(Agency)을 가진 집단이다. 내 학급, 내 수업을 내 뜻대로 디자인하고 이끌어가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그런데 누군가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고, 보여주기식 행사를 강요하고, 나의 자율성을 침해하려 할 때, 교사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거부하고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학교장이 무언가를 하자고 했을 때 나타나는 무기력함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주도하지 않은 일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직 문화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얻는다.
교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외부의 압박이나 보여주기식 장학이 아니다. 교사 개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그들이 스스로 수업을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수업 좀 잘하라"고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꿈꾸는 수업은 무엇인가요?"라고 묻고 그 주도권을 온전히 교사에게 돌려줄 때, 비로소 학교는 살아있는 배움터로 변할 것이다.
18년 차 교사인 내가 과거의 오해를 거두고 동료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 이유다. 우리는 모두, 내 교실에서만큼은 최고의 교사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