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책 한권 외워봤니?, 김민식 저, 위즈덤 하우스, 2017
나는 영어를 못한다. ‘못한다'라는 기준이 너무 주관적이라 애매하긴 하지만 내 기준에서 만족스럽지 못하다. 실제로 외국인과 대화가 힘들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단어부터 문법까지 안되니 답답하다. ADE라고 재작년, 작년에 외국에 갔다 왔는데 가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거나 통역사를 옆에 끼고 우리나라 말로 이야기했다.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초6, 중3, 고3 동안 공교육 영어 지도를 받은 사람이다. 무려 12년 동안이나 영어 공부를 했는데 왜 영어를 못하지? 대한민국 영어 교육과정의 문제인가? 그것도 문제겠지만, 내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까닭도 있다. 당최 영어에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영어는 대학 가는 도구였을 뿐이다. 내 삶에 왜 필요한지 몰랐다. 이제 와서 핑계지만 부모님이 내가 학생 시절 일 때 해외여행 한번 가 주셨으면 영어에 대한 마음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 이후 대학가서도 약간의 영어 공부를 하다 포기했고, 군대 가서도 중학생들이 읽는 영문법 책을 읽고 했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4년 전에는 텝스 공부를 했는데 겨울방학 때 60시가 연수를 듣고 나서 텝스 시험을 봤는데 점수가 더 떨어졌다. 그 충격에 이후로는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내가 영어 못하는 거야 그렇다 치고, 이제 아이가 생기고 보니 내 아이의 영어 공부는 어떻게 시켜야 되나 무척 고민이 되었다. 광고, 언론 이런 것들을 보면 죄다 외국에 나가서 몇 년 살거나 학원을 보내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난 그럴 돈도 없고 외국 나가 살 자신도 없다. 그런던 차에 신문에서 이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추천글을 읽게 되었다. 거기에 이 책의 저자인 김민식 PD에 대한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참 재밌게 읽었다.
http://www.hani.co.kr/arti/PRINT/785558.html
이 책의 결론은 쉬운 기초영어회화 책 1권을 사서 매일매일 외워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 1권을 완벽하게 외우고 나면 영어를 잘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내가 영어를 가장 재미있게 잘 했을 때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중 1 때 영어 선생님이 1과 본문을 외우게 시켰다. 그러면 영어를 잘할 수 있다고 하셨다. 1과는 How are you?로 시작하니 쉽게 외웠다. 난 아직도 그 문장을 기억한다. “Mom, I’m home. I’m hungry.” 그렇게 2과, 3과 까지 외웠었다. 그 이후는 포기했지만. 만약 내가 그때 영어 책을 다 외웠다면 지금쯤 영어를 잘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 같다.
그래서 이제부터 여기서 추천한 기초회화 책 1권을 사서 하루에 10문장씩 외우려고 한다. ‘작심삼일'에 그칠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영어공부를 어떻게 시킬 것인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영어 관련 사교육 따위는 받지 않을 거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니 그전에 파닉스 교육은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3학년 전에 해외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어에 대해 동기화시켜주기 위해서다.
이 책 에필로그에 아래처럼 영어 공부를 바라보라는 작가의 주문이 나온다.
투자란 보상을 바라고 하는 행위지요. 이제 영어에 투자하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예전 같은 보상은 이제 없습니다. 영어 공부, 그 자체가 보상이어야 합니다. 영어로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계발을 위한 취미 활동, 두뇌 인지력을 키우는 바둑이나 장기 같은 게임처럼 영어 공부를 즐기셔야 합니다. 저성장 시대에 외국어 공부는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현재를 즐기는 취미니까요.
- 에필로그 중 -
맞는 말이다. 내 아이가 영어에 관심이 생기도록 내가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영어를 좋아하면 시키고, 안 좋아하면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TV를 켜면 5살짜리 꼬마 여자애가 능숙하게 영어를 하며 ‘무슨 무슨 영어’를 하니 이렇게 되었다고 0.01%도 안 되는 사례 가지고 허위 과장 광고를 하지만, 나는 그런데 휘둘리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이 책은 영어와 관련된 책이라기보다는 이 저자의 삶이 녹아있는 수필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다. 바쁜 와중에도 280쪽 되는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저자의 필체가 너무 정겨웠기 때문이다. 나의 영어 실력과 자녀의 영어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