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시청자'의 2015 MBC 방송연예대상 관전평
어제 MBC 방송연예대상이 방영되었다. 내가 편애하는 프로그램이 다수 포진된 방송사인 탓일까? 지난주 일요일에 전파를 탄 KBS 방송연예대상에 비해 훨씬 더 재밌고 알찼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물론 중복수상, 복수수상 등 방송사 연말 시상식의 오랜 병폐는 여전했지만, 육성재-조이 커플의 발랄함부터 김성주-김구라의 조화로운(?) 진행과 중간중간 곁들인 프로그램별 결산 꼭지들까지 알찬 구성이었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수상 소감을 3분 이내로 제한한 룰을 도입한 점이었다.
이 ‘3분 룰’은 수상자가 벅찬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거나 구구절절 지인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감사인사를 보내는 등의 시상식 ‘꼴불견’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가장 압권은 역시 대상 수상자가 본인이 출연한 프로그램이 PD상으로 선정되어 수상 소감을 말하려고 하자 3분이 경과되었음을 알리는 BG가 깔리는 장면이었다). 이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늘 촉박해 연출진은 연신 팔을 돌리며 진행자들에게 대본을 건너뛰고 빨리 진행해달라는 사인을 보냈지만, 그나마 ‘3분 룰’ 덕분에 역대 시상식 중 가장 담백한 소감들이 이어질 수 있었다. 중견들은 저마다의 경륜과 눈치로 짧고 임팩트 있는 소감을 남겼고 신인들은 더러 3분을 경과해 BG가 흘러나오긴 했지만 발랄하고 진정성 있는 소감을 선보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몇 명은 끝내 BG가 끝날 때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번 시상식 역시 복수수상의 남발이라는 죄명을 피해갈 수 없었다. 어떤 이는 트위터에 이번 시상식을 두고 “이럴 것이면 차라리 마리텔 부문, 무한도전 부문, 복면가왕 부문, 나혼자산다 부문 나눠서 상을 주지 그랬냐”라고 비난을 했다. 아마 MBC 연말 시상식 관계자가 들었다면 당장 내년 시상식에 도입해야겠다고 메모해둘 만한 예리한 지적이었다. 내가 봐도 중복 시상이 너무 많았다. 하나씩 떼어놓고 본다면 거의 모든 수상자가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활약을 보여주긴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싸잡아서 뭉텅이로 상을 주니 상의 격은 물론 수상자들의 지난 한 해 보람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
게다가 인기상, 우수상, 특별상, 최우수상, 공로상, 뉴스타상, 커플상, 공헌상……. 뭔 놈의 상은 그렇게 많은지. 상을 받는 사람들도 민망하게 여길 정도로 올해에도 역시 사람보다 상이 더 많았다. 부문도 많고 복수수상도 많으니 방송시간이 편성에 쫓기는 것은 당연한 일. 웃픈 ‘3분 룰’을 들고 나온 것도 어쩌면 주최한 측의 자가당착이었다. 터무니없이 작은 그릇을 준비해놓고 그 안에 너무 많은 음식물을 담으려고 하니, 급한 대로 수상자들의 소감이라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수상자 목록은 ‘일개 시청자’인 내가 봤을 때인 내가 봤을 때는 전반적으로 공정하고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납득할 수 없는 수상자가 없지는 않다. 그중 가장 공감이 되지 않았던 수상자는 공로상을 받은 ‘무한도전’ 팀이었다. 공로상은 으레 화면을 통해 수상자의 업적과 공적을 담은 영상을 내보내 발표하곤 하는데, 공로상 순서가 오자 화면에는 <무한도전>의 옛 방송분이 편집된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엔 해당 프로그램의 간판 신판인 박문기 선생님이 받는 줄 알았다. 아니면 열심히 <무한도전>의 공적을 읊고 있는 (역시 프로그램의 간판 성우인) 안지환 성우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공로상의 주인공은 <무한도전> 팀이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이 당혹감은 물론 ‘공로상은 원래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 받는 상’이라는 선입견에 기인하는 바가 가장 컸고 그다음으로는 도대체 이미 국민 프로그램의 반열에 올라 뭘 해도 예뻐 보이는 프로그램과 그 멤버들에게 지루한 공치사를 남발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박도 있었다.
본래 상이란 것은 잘 하는 사람에게 잘 했다고 주는 것이 맞긴 맞다. 하지만 잘 한 사람이 한둘인가? 방송국에, 그리고 시청자에게 공로한 이들이 한둘인가? 모두의 공적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그중에서 가장 업적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이, 많은 이에게 그 공적이 알려지지 않은 이, 그리고 앞으로 장래가 가장 촉망되어 상으로써 용기와 격려를 북돋울 만한 이에게 주는 것이 상식적인 시상일 것이다. 나는 ‘일개 시청자’인지라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무한도전>처럼 이미 잘 나가다 못해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방송인들 말고 음지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한 방송인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복된 치하에 수상자들조차 감동하지 못한 이번 공로상 시상을 2015 MBC 방송연예대상의 워스트 시상으로 꼽고 싶다.
끝으로 대상을 받은 김구라 말고, 최우수상을 받은 김영철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사실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기대가 되었던 시상 소식은 물론 ‘김영철의 대상 수상’이었다. 결국 수포로 돌아간 망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김영철은 대상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믿음이 있다(물론 김구라의 수상도 인정한다). 언론에서는 시상식 전부터 김영철의 대상 가능성을 점치며 ‘국민 비호감의 극적인 역전 드라마’라는 스토리로 썰을 풀기 시작했다. 시상식 직전에 녹화한 <라디오스타> 방송에서 김영철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본인 스스로 ‘뉴스타상 같은’ 허접한 상을 주려거든 나를 부르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나는 그의 솔직한 말을 들으며 불쾌하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하게 제 밥그릇을 챙기려는 그의 모습이 대견하고 씩씩해 보였다.
그래서 사실 나는 그가 대상을 받기를 바랐다. 불과 10여 년 전 역대 가장 뜨거운 신인이었지만 이제는 비호감, 마이너, B급, 3류 등의 딱지가 젖은 낙엽처럼 이마에 붙어 방송가의 오랜 ‘게스트’가 되어버린 그가 이번 연말 시상식에서 역전 홈런을 때려내기를 바랐다. 어느 때고 몸을 사리지 않고 남을 웃겼고, 분위기에 괘념치 않고 집요하게 방송 분량을 챙겼고, 자신의 개그를 위해선 얍삽하고 뻔뻔한 ‘추태’를 피하지 않았던 그가 적어도 올해만큼은 유재석, 김구라, 김성주 등 쟁쟁한 후보들과 맞붙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상식 1부 끝 무렵 조금 이상한 소식이 김성주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번 시상식의 대상 후보는 두 명입니다.
이윽고 무대의 메인 스크린에는 두 명의 대상 후보자 얼굴이 비쳤다. 유재석과 김구라였다. 김영철은 없었다.
김영철은 최우수상을 탔다. <무한도전>의 하하와 함께. ‘비호감 개그맨’, ‘리액션 담당 게스트’, ‘성대모사 좀 하는 밉상’에 ‘불과’했던, 또는 그렇다고 세상으로부터 규정되었던 김영철이었기에, 사실 연말 시상식의 (대상 바로 아래의 상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점만으로도 놀랍고 경이적인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도 충분히 만족스러워했고 숱하게 연습을 했음에도 결국 소감은 횡설수설했을 정도로 주체를 못할 정도로 벅차 보였다.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그가 최우수상을 받기까지, 그러니까 시상식 일정이 잡히고 초대장을 받고 드레스를 준비하고 자리에 착석해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어 객석의 박수를 받기까지, 그는 꽤나 힘들어했다. 실험실에 갇힌 쥐처럼 안절부절못하였다.
최종 대상 후보가 발표되는 순간 카메라는 의식적으로 김영철의 표정을 클로즈업해 그의 기대와 실망 사이의 간극을 잡아내려고 했으며, 대상 후보자 김구라는 아예 면전에 대고 농담조로 김영철의 대상 후보 탈락이 시상식의 격을 상승시켰다며 즐거워했다. 급기야 MC 김성주는 대상 후보 탈락자 김영철에게 다가가 '대상을 받지 못할 것이 확실해졌는데 소감이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천하의 김영철도 이번만큼은 재치 있게, 뻔뻔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물론 여전히 최우수상을 포함한 좋은 상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본심을 들켰다는, 그리고 그것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일로 되어버렸다는 상실감을 완전히 감추진 못했다. ‘아쉽지만 괜찮다’라는 간단한 말을 끝내 찾지 못하고 어색하고 민망하게 인터뷰는 끝이 났다. 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끊으라는 김구라의 재촉에 김성주는 마이크를 회수했다. 아무리 김영철이 만만하고 밉상짓을 많이 했어도 이렇게 사람 마음 같고 장난질을 쳐도 되는 걸까, 안타까웠다.
나는 그것이 설사 가당찮고 허황될지라도 누군가가 망상에 가까운 꿈을 꾸는 것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가운데 혼자서 그 망상을 즐기며 자신을 다독이고 격려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런 헛된 꿈을, 요원한 바람을 늘 품고 살지 않는가? 김영철에게 ‘방송연예 대상’은 아마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안타깝게도 자신의 그런 ‘망상’을 수많은 스포트라이트 앞에 벗겨진 몸처럼 전시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물론 이 부분은 그가 공공연하게 발언하고 내색한 탓도 크다). 순식간에 자신의 꿈이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 버린 순간마저도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방송의 전시물로 소비되어버렸다. “비호감인 너를 최우수상까지 줬으니 이 정도쯤은 할 수 있잖아?”라는 시상식 주최 측의 목소리가 들렸다면, 그건 좀 지나친 망상일까.
한 해의 방송계 수확을 결산하고, 시청자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방송인과 프로그램을 치하한다는 의의를 표방하는 방송 3사 연말 시상식의 실상은 그들의 말처럼 완전하고 완벽하지 못하다. 오히려 이런 불완전함을 그들을 즐기는 것 같다. 과거를 돌아보고 공과 과를 엄밀히 분석해 잘한 이에게는 상을 주고 못한 이에게는 상을 주지 않는 것이 '시상'의 정의일 것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진실이라는 것이 없는, 조작된 진실만이 표백된 우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방송이라는 세계에서 어떤 진정성이나 공정함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연말 시상식은 그냥 쇼다. 모두 입 다물고 공공연한 비밀을 침묵한 채 즐기고 떠드는 쇼에 불과하다. 그러니 물아주고 나눠주는 시상의 병폐도, 공정하고 객관적이지 못한 수상자 선정 기준에 대한 의혹도 사실은 무의미한 공염불일 뿐이다. 차라리 이 바닥에서 유일한 진실이자 진리는, 이런 공공연한 비밀을 누가 더 세련되고 야무지게, 그리고 재미있고 웃기게 포장하고 은닉하느냐일 것이다. 일개 시청자의 관전평은 그래서 부담이 없고 가볍다.
<사진 출처>
0. http://fun.jjang0u.com/chalkadak/view?db=160&no=215739
1. http://news.zum.com/articles/27651525?c=06
2. http://www.starseoultv.com/news/articleView.html?idxno=374083
3. http://baekn.etoday.co.kr/view/news_view.php?varAtcId=56262
4. http://sytvholicgirl.tistory.com/113
5. http://pann.nate.com/video/221826298?type=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