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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팔 Dec 08. 2015

#5 나는 변하고 싶다,
이 빌어먹을 사랑으로

남자가 사랑할 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62쪽






명절은 내게 꽤 유용하다. 한가하게 계란말이나 돼지고기볶음 따위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침대에 누워 밀린 책을 읽다 꾸벅꾸벅 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요긴한 것은 나름 최신 영화를 집에서 공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명절, 그러니까 추석이었는지 설날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어차피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귀성길과 귀경길에서 누군가들은 지루하게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고 있을 때, 나는 소파에 반쯤 기대어 사랑에 관한 영화 두 편을 봤다. 두 영화의 제목을 이어 붙이면 이렇다.


남자가 사랑할 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참고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남자이며, 오랜 시간 '솔로'라는 사회적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사랑이란 것을 해보지 못한, 어쩌면 전설로만 듣던…… 여기까지만 해두자. 너무 슬퍼질 것 같다. 아무튼 긴 연휴에 만난 두 영화는, 그리고 두 영화 제목을 이어 붙인 그 문장은 내게 매우 다급한 선언처럼 다가왔다. 뭐, 사실 TV를 틀자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고 나는 과자를 우적 거리며 실실거리며 아무 생각 없이 봤을 뿐이지만, 두 편의 영화를 다 본 뒤 든 감정은 무척 소설적이게도, 바로 저 위의 문장과 같았다. "남자가 사랑할 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제길. 하지만 영화를 다 본 뒤 든 감상은 역시 상스러운 욕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빌어먹을 사랑을 하고 있지 않으니까. 황정민처럼 마초적이고 거친 사랑은커녕 유달의 찌질한 연애 따위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나도 '이보다 더 좋'아지고 싶은데, '사랑할 때'가 왔으면 좋겠는데, 빌어먹을 사랑이 주변에 없으니까! 자, 넋두리는 이쯤 하고 영화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아주 조금만.  



한동욱 감독. 황정민, 한혜진, 곽도원, 정만식 출연.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삼류 연애소설의 제목처럼 오글거리고 무척 촌스러운 제목의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 가장 즐겨 사용했지만 이내 신선도가 떨어질 때로 떨어져, 충무로에선 지나가던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바로 그 소재, 조폭이 주인공이다. 나는 처음에 이 영화가 개봉했다고 했을 때 '대체 왜?' 뭐 이런 질문을 던졌다. 3대 한국 조폭 영화(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의 흥행빨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고 조폭에 대한 수식 역시 '단순하고 무식한'을 넘어 '잔인하고 교묘한'으로 옮겨가고 있던 순간에 대체 왜 이런 조폭감성멜로물이 나왔을까? 뭐 이런 질문 말이다.

   

영화는 초중반쯤부터 봤다. 채널을 돌리다가  얻어걸린 영화였으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진 못했다. 스토리는 대충 이랬다. 


황정민이 한혜진을 꼬시기 위해 별별 짓을 다 하다가 결국 한혜진 아버지의 부음을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져 키스와 그 이상의 것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관계로 진전되어 한혜진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멸과 조소, 분노와 모멸의 대상이었던 황정민에게 다정하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 애 가질까?”라고 물어보는 결혼 생활이나 진배없는 행복한 동거 생활을 영위해 나갈 무렵 어떤 사건을 계기로 황정민은 2년간 콩밥을 먹고 출소하여 옛 여자 친구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그를 차갑게 외면한다. 


한 마디로 슬픈 이야기. 하지만 소재의 촌스러움, 이야기의 전형성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재밌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영화의 배경이었던 부산에 가면 진짜 저런 사람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정만식의 비열한 웃음이란! 하지만 나는 이 '스토리' 말고,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영화 제목의 뒤에 따라올 서술어. 즉 '변한다'라는 단어에 대해 몇 자 더 적어볼까 한다. 하지만 잠시 그 전에 잭 니콜슨이 출연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 이 영화는 유달이라는 각종 신경과민증 및 조울증을 겸비한 노총각이 생애 최초로 외로움이라는 것을 느끼고, 결국 사랑에 빠진 자신을 인정하는 이야기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포스터. 잭 니콜슨의 과민하고 찌질한 환자 연기가 압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내 기억으론 엄청나게 오래된 고전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엄니와 이모들이 간만의 나들이에 홍조를 띠고 내겐 500원짜리 맥도널드 햄버거를 남겨놓고 극장 나들이 갔을 때 그녀들이 본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극장 간판에 그려진 선글라스를 끼고 특유의 유쾌하고 살짝 거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잭 니콜슨이 중년의 사랑이 어울릴 법한  나이 때의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우리 외할머니와 말동무를 나눠도 어색하지 않을 폭삭 늙은 노배우였다! 


아무튼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후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계기는 약 1년 전 역시 케이블에서 이 영화를 우연히 보았을 때 접한 유달의 대사 때문이었다(지금 검색해보니 이 영화는 1997년에 개봉했다). 나는 이 대사를 듣고 영화를 끝까지 계속 보게 되었고, 역시 이번 명절 때도 우연히 돌린 채널에서 방영 중이던 이 영화를 아빠미소를 지은 채 흐뭇하게 끝까지 다 보게 되었다.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소."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


2. 오 마이 갓! 나는 당장 TV 앞으로 달려가 늙다리 영감에게 키스를 퍼붓고 싶었다. “맞아요, 잭. 그래서 난 지금 아주 조금이지만 예전보다 저 나아졌다고요!”









‘남자가 사랑할 때’ 남자는 변한다. 그녀(혹은 그)가 식사 중 다리 떠는 짓을 싫어하면 우린 충분히 그녀(혹은 그)를 위해 그 버릇을 중단할 용의가 있다. 시험기간에는 키스 등의 제반 접촉 행위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공부를 우선해야 한다면 역시 우린 따를 의사가 있다. 나처럼 자발적으로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은 수준 높은 교양인들 역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그녀 혹은 그를 위해 바뀔 준비가 되어 있다(당신도 어서 그렇다고 대답하라!).


사랑은 변화를 동반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대개의 경우 '더 나아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황정민은 건달 생활을 청산하였으며 출소 후 착한 삶을 살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물론 외적 요인으로 인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지만). 이기적이고 무례하며 철부지 같았던 유달(잭 니콜슨) 역시 그녀에게 대게 다리를 뜯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바꿔 말하자면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무언가를 사랑할 때 변한다. 혹은 변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비록 유달의 그 대사가 나를 향한 고백도 아니었고, 심지어는 현재 내게 그런 고백을 할 사람도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 대사를 접할 때마다  가슴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들어찬다. 눈물이 살짝 고이기도 한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그 원료는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일 것이다.  무언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가슴이 뛰고 더 나은 무언가를 지향하게 된다. 



그래서 진정한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지’ 않음에도 무언가를 ‘배우는’ 관계이다. 그것은 정확히 ‘삶에 대한 배움’이다. 진정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일방향적으로 살아왔는지, 얼마나 획일화되어 맹목적으로 살아왔는지, 얼마나 내가 그저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했는지 등을 깨닫는다. 사랑은 우리에게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삶을 알게 해주는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이다.
- 정지우, <청춘인문학>, 222쪽



안타깝게도 내겐 사랑할 사람은 ‘아직까진’ 없지만 (여자 주인공이 아직 인생이란 내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사랑을 느낄 대상은 사람 말고도 꽤 많이 있다는 사실이며 (모태솔로의 더럽고 비겁한 변명이라고? 그 지적은 일정 부분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전적인 동의는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용의가 충분히 있다는 점이다. 이제, 날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사람만 있으면 된다. 바꿔 말하자면, 오타바이 열쇠를 주웠으니 이제 오타바이만 나타나면 된다는 소리! 나는 변하고 싶다. 그 빌어먹을 사랑으로 말이다.



벌써 12월이다. 마의 12월 25일이 오기 전에 뭔가 사건이 터졌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마지막. http://love111.tistory.co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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