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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팔 Nov 18. 2015

#4 힙합 아이돌?
‘예술가’와 ‘갑부래퍼’ 사이에서

<Okey Dokey> by 지코(ZICO)

신곡 <말해 Yes or No> 가 담긴 지코의 새 앨범 커버. 표정이 악동 같다.


*이 글은 지코 등 아이돌그룹 멤버와는 아무런 관계도, 인연도 없는 평범한 20대 남자가 쓴 글이며, 오로지 노랫말과 일부 인터넷 자료에 의거해 작성된 글임을 밝힙니다.






1.


내가 언제부터 랩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신기한 일이다. 아마 마음속으로 ‘좋다!’라는 감동을 받으며 들은 내 인생 최초의 랩은 <거리의 시인들>의 매우 괴기스럽고 과격한 랩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귀에 울려 퍼지고 있는 랩은 따로 있으니 바로 신인그룹 ‘아이콘’의 신곡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얼쑤 덩기덕 쿵 더러러러러! 



비아이의 간질간질한 목소리에 푹 빠졌다. 나도 모르게 입으로 흥얼흥얼 <이리 오너라>의 후크를 무한 반복한다. 노래가 마음이 드니 가사를 살펴본다. 그런데 가사도 훌륭하다. 신인의 패기가 돋보이는 몹시 과격한 가사! 난 빤한 주례사보다 거친 가사가 좋다.  



이 구역을 뺏어

짜치는 놈들은 숨어 의자를 제껴

판때기는 내 꺼고 여기 분위기는 얘 꺼

이의 있는 사람들은 이제 집 갈 시간 됐어

집중 우리들이 나대는 지금

Fixin 너네들의 잘못된 리듬

심쿵 온몸이 춤추는 기분

5세대 YG we gon go get em



데뷔와 동시에 순위권을 올킬하고 있는 신인 같지 않은 자신들의 괴력을 자찬한 가사. 그러나 사실 내가 입덕한 힙합 아이돌그룹은 따로 있다. 바로 방탄소년단. 얼마 전에 나온 <쩔어>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대로 재생하는 것은 기본이고 방탄소년단의 웬만한 랩은 가사만 보면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 그런데 아이콘이나 방탄소년단 등 소위 힙합을 표방한 아이돌그룹들의 랩 가사를 보면 굉장히 공격적이고 진취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위에 인용한 가사는 애교 수준.


나오자마자 스타가 된 아이돌그룹 아이콘. 하긴 이들을 신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2.


공격적, 진취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면 지코의 랩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날 우연히 지코의 신곡 <Okey Dokey>를 들었는데 어느새 내 모바일 멜론 ‘자주 듣는 음악 1위’에 올라 있었다. ‘뭐지, 이 미친 중독성은!’ 하고 놀랄 찰나, 나는 이미 “Okey dokey yo!”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난 이미 지코의 노예가...) 그런데 내가 이 노래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중독성 강한 후크도 한몫했지만, 곡의 노랫말 전반에 흐르는 강렬한, 심지어는 지나치게 과시적인 자존감 때문이었다. 일단 가사를 보자.



행선지를 묻지마 따라오기엔 벅차

넌 내가 될 수 없어 계속 빨빨거려봤자

내 수저가 금수저로 보이면 병원 가봐


(중략)


아무 부끄럼 없이 나의 자질을 보여줬지

스타 지망생들의 top model

보고 배워라 나의 working


지코의 는 랩 경연 오디션 '쇼미 더 머니 시즌4'에서 처음 선보였다.



지코는 입에 착 감기는 적절한 단어를 사용해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인기와 어린 시절 이룩한 화려한 성공을 매력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수많은 아이돌 지망생들의 본보기(?)가 될 만한 매우 당차고 뻔뻔한 모습이다. 이런 극단적인 자기과시는 후속곡 <말해 Yes or No>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난 유명하지 도쿄 뉴욕 파리에서도

numero uno rhyme professional

bitch I set a trend 물론 패션도

제일 많이 버는 놈 that's no question yo

u know I got a lotta ice like an eskimo

30대 래퍼 but do it like 10

철부지였던 20대부터 big money I get that

언제나 뱉지 난 sick rap

ZICOPENOMECO 큰 돈을 벌어 우린 계속해서

Young fuckin hustlers let’s get it OH!



매력적이다. 소위 자신의 ‘잘 나감’을 겸손과 사양이라는 기만적 언변으로 포장하지 않고,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대중에게 드러내고 있다. 아티스트라면 의당 거부하고 외면해야 할 세속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부와 명예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욕심과 열망을 보여준다. 산중호걸이 따로 없다. 솔직히 이런 지코의 잘난 척이 짜증 나고 셈나기도 하지만, 뭔가 사회의 위선을 까발리는 것 같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랩의 지향은 비단 지코의 노래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빅뱅, BTS, 아이콘, 블락비, 매드타운 등등 힙합과 랩이라는 장르를 표방하는 거의 모든 아이돌그룹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이런 자기과시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게 힙합과 랩이라는 음악 장르의 본성인 걸까?




3.


'랩=흑인'이라는 매우 무식하고 몰상식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오랜 시간 백인들로부터 핍박받고 차별받아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한 채 말 그대로 노예처럼 살아왔던 흑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불우와 오욕의 역사를 보상받기 위해 그리고 해방된 현재의 모습을 찬미하기 위해 속사포 같은 랩으로 백인 중심이 기성 제도를 비꼬면서 탄생한 음악 장르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오히려 백인보다 우월해진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오른 자신들의 모습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랩이라는 음악 장르가 차용된 것을 아닐까 생각했다. 즉, 랩은 지극히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맥락 속에서 발달되고 전승된 음악 장르인 것이다. 물론 여기까진 랩과 힙합 그리고 흑인들에 대한 나의 막연한 추측이다.


그래서 좀 더 찾아봤다. 네이버는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의 기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뉴욕 할렘가에 거주하는 흑인이나 스페인계 청소년들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문화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
- 네이버 지식백과


This is Hiphop. 힙합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엉덩이(hip)를 흔들다(hop)'라는 뜻이다.


그리고 랩은 그 새로운 문화 ‘힙합’이라는 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서, 랩이라는 호칭은 1980년대 초에 생겼다고 한다. “일상생활의 이야기나 느낀 생각을 리듬에 맞추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그 표현 방식”이며, 흑인 음악가 퀸시 존스는 “현대 흑인음악에 있어서 가장 혁명적인 표현방식”이라고 랩을 평가했다. 이런 힙합과 랩의 역사는 나의 막연했던 추측과 어느 정도는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를 지코가 부른(혹은 지코를 비롯한 힙합 아이돌그룹이 부른) 랩 가사의 다소 과한 자기과시와 연결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흑인 못지않은 설움과 비애를 품으며 연습실 바닥에서 궁핍과 가난의 시련을 견딘 아이돌 연습생들 혹은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소위 ‘언더’에서 컵라면과 떡볶이로 배고픔을 달래며 꿋꿋하게 펀치라인을 쓰고 노래를 해온 언더 래퍼들이, 바야흐로 슈퍼스타가 된 지금 그간 쌓였던 한을 풀기 위해 그리고 그동안 자신들을 괄시하고 무시하고 등한시했던 이들을 모욕하고자 피지배 계급으로서의 ‘흑인’의 마음으로 속사포처럼 울분을 토해낸다!


빅뱅의 연습생 시절.



요즘 누가 제일 핫해 요즘 누가 곡 잘써

요즘 누가 제일 스타일 있어 요즘 누가 페이 세게 받아

아주 좋은 질문이야 brother 답은 차트에 나와있어

뭐 마땅히 비유할 대상이 없어 난 요즘 펀치라인 안 써 


이렇게 '핫'해진 지코는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인기와 부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그다지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일각의 아니꼬운 시선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negative 한 너의 시선에선

아마 내 호의호식은 허례허식이지

어린 놈이 싹수없이 다 해 처먹으니까

시기 받기 좋을 시기지 ya dick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리낌이 없다. 어쩌면 이런 당당함이 이들 아이돌의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다음은 지코의 <Okey Dokey>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돈과 명예중 하날 골라

한 치 고민 없이 난 몽땅

쓸어 담아갈 거야 엄마야


나보다도 어린 친구들이, 그것도 잘 생기고 몸매까지 이쁜 아이들이 이런 거만한 태도로(그것이 작위적이든 본성이든 간에) 자신들의 '잘 나감'과 '부'를 자찬하는 모습을 보면, 베알이 꼴리고 괜히 비아냥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그런 노래들이 소위 소녀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몇 주 동안 음원차트의 상위권에 머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적개심마저 가슴 속에서 타오른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4.


약 한 달 전 <나 혼자 산다>에 dok2라는 래퍼가 출연했다. 부모와 함께 살아도 어색하지 않은 어린 나이의 힙합 래퍼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혼자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와 그날그날 기분 따라 골라 탄다는 고급 외제차들을 소개했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사람이(물론 그 가수의 팬일 확률이 높겠지만) 이 어린 래퍼의 조금 과해 보이는 부에 대해 질투를 보이거나 비아냥대는 것이 아니라 소위 ‘갑부래퍼’라는 수식을 붙이며 그의 위대성을 찬미하고 덕질을 했다는 점이다(물론 전부는 아니다). 


이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부귀는 소박한 나머지 궁핍하기까지 한 나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떠올리면 무척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들’의 세계는 짧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아득히 먼 다른 세계의 풍경처럼 보인다. 그리고 찬미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자신들의 이런 부와 명예를 당당하게 대중에게 공개하고 음악으로 찬미하고 있다. 지코는 이미 <Okey Dokey>에서 ‘돈과 명예’를 ‘몽땅 쓸어 담아갈’ 것이라고 당당하게 외치지 않았던가.


두 차 모두 dok2의 소유.

     

you know hoo sure 배부르고 등 따신 예술가로 거듭나기
-지코, <Okey Dokey>


그런데 지코의 <Okey Dokey>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지코가 말하는 소위 '배부르고 등 따신 예술가'론(?)이다. 이 개념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혹은 없다고 믿어온) 예술과 상업의 매우 성공적인 만남을 그리고 있는데, 이는 현업의 아이돌들이 품고 있는 환상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준다.


즉, dok2처럼 언더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명성을 쌓아 어느 날 대박을 터뜨려 음원차트를 올킬하고 그에 따른 대중의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며 신비롭고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는 것. 그리고 그 인기에 어울리는 어마무시한 부를 거머쥐어 지난날의 설움을 딛고 명실상부 '배부르고 등 따신 예술가'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코가 말하는 ‘스타 지망생들의 top model’이리라.


아래는 지코의 <말해 Yes or No> 가사 중 일부.



어쩌면 나의 증명이 어설픈 희망을 줬겠지

죄다 가면 쓰고 dancing 탈 아이돌을 잘못 해석했지

중고딩 때 말곤 중고거래 한 적 없어

네 연봉은 내 한 달치 생활 유지비 정도

난 예의상 내 차 키를 보이는 데 못 놔둬

고생 끝이다 동욱아 돈 버는 일만 남았어


지코도 본인 스스로 자신의 삶이 (물론 아직 24세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친구지만) 뭇 연습생, 그리고 어린 친구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어설픈 희망이 될 정도로 이미 본인은 따라잡을 수 없는 위치에 올랐음을 잘 알고 있다. '연봉'과 '차 키'는 이런 성공한 아티스트의 가치를 대변하는 부와 명예의 상징이며, 수많은 어린 친구들이 그 상징에 매혹되어 가수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지코 같은 가수 혹은 예술가가 되는 것은 '고생'을 끝내고 '돈 버는 일'만 남은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인생일 테니까. 게다가 그 길은 스트레스가 가득한 대기업에 입사해 고액 연봉의 노동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삶을 기획할 수 있는 길 같아 보인다.


이제 지코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신예 프로듀서 중 한 명이자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모순이 생긴다. ‘배부르고 등 따신’이라는 워딩으로 표현되는 어떤 ‘삶의 조건’은 예술의 필요조건이지 결과 값이 아니다. 즉 먹을 것, 입을 것, 잘 것 등 생계를 걱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좋은 예술, 독창적인 시도 등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지, 예술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배가 부르고 등이 따듯한 삶의 조건을 예술을 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예술의 보상쯤으로, 그것도 어마 무지하게 큰 보상으로 여기고 있다. 내가 거부감을 느끼는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다.



5.


사실 그들이 자신들의 끼와 재능으로, 그리고 적절한 운과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거머쥔 이런 엄청난 부와 명예는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터부시 할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그것이 아무리 극단적으로 어느  한쪽에 몰려 있다고 하더라고, 그런 양극화조차 ‘노력에 의한 합당한 보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현 체제의 룰이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거부감을 느끼는 부분은 그런 부의 쏠림 현상이 아니라, ‘배부르고 등 따신 예술가로 거듭나’ 예술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예술을 하며 살아간다는 식으로 어설픈 예술가론을 들이대는 이중적인 모습 때문이다. 내가 너무 까칠한가?


솔직히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정점에 서 있는 소위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소속의 아이돌 가수가 본인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표현하는 것이 무척 가증스럽게 들린다(이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많으나 잠시 제껴두겠다). 몇 달 전에 GD가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JTBC의 <뉴스룸>의 한 코너였는데, 게스트 GD는 여전히 소년다운 순수함과 겸손함을 설핏 보여주며 훌륭한 아티스트임을 확인시켜줬다. 그는 “당신이 다른 아이돌그룹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라는 손석희의 질문에 배시시 웃으며, 하지만 매우 당당하고 확고한 목소리로 “저는 제 곡을 제가 쓰죠.”라고 답했다. 즉 기획사에 의해 대량 생산된 아이돌그룹 중 하나가 아니라, 예술을 기획하는 아티스트라는 점을 당당하게 밝힌 것이다.


아이돌 출신 가수 중 자신의 이름을 단독으로 타이틀로 걸어 앨범을 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지코 역시 TV에 비치는 보이 그룹의 앳된 미소년보다는 곡을 만들고 녹음하는 프로듀서로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할 것이다. 그의 노랫말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자기과시적 자존감은 아마 이런 지향의 한 경향일 것이다. 그가 속해있는 그룹 블락비의 노래 역시 그룹의 리더인 지코가 전부 작곡하고 작사했다. <Her>과 <잭팟> 등 블락비의 노래는 아이돌의 노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 면에서 뛰어나다. 정말 좋은 노래들이다(아이돌그룹이 부르는 노래 중 정말 한 번 듣기 아까운 명곡이 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지코의 음악은 뛰어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GD나 지코, dok2 등 소위 힙합과 랩을 메인으로 삼아 노래를 부르는 아이돌들의 재능과 능력을 인정한다. 아니 거기에 열광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 수많은 오디션을 거치고 대중의 평가를 받으며, 충분한 검증을 받았다는 점 역시 존중한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의 노래에다 비평이랍시고 주제 넘는 소리를 하는 것도 그들의 노래를 평소에 즐겨듣고(정말 많이 듣는다) 또 아이돌 자체에 대해서도 깊은 호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부르고 등따 신 예술가'가 아니라, '배부르고 등 따신 갑부'가 된 자신의 모습을 무작정 과시하고 자랑하고, 그렇지 않은 소위 '찌질한' 이들을 조롱만 하다 랩을 끝나면 당황스럽다. 그건 힙합이 아니잖는가. 나르시시트의 넑두리에 불과한 것이다.



6.


사회를 향한 비판과 억울함에 대한 호소의 음악적 수단으로 탄생하고 발전한 것이 힙합이라는 장르이다. 기성세대가 말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뻔뻔하고 당당하게 노래하는 것이 랩이라는 음악이다. 따라서 일부 힙합그룹 간의 소위 랩 디스전이나 일부 아이돌들 간의 조소와 비꼼이 깃든 랩 역시 그런 힙합과 랩의 전통을 계승한 문화의 한 일부라는 것도 잘 안다. 그리고 제한된 조건 안에서 상대를 향한 좀 더 참신한 공격, 좀 더 과감한 반박, 좀 더 유머러스한 비꼼이 랩이라는 음악 장르의 완벽성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도 잘 안다. 하지만 지코의 <Okey Dokey>의 일부 가사와 그를 포함한 일부 래퍼들의 부에 대한 집착이, 도가 지나친 자기과시가 조금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늘의 자기과시와 타인에 대한 멸시, 부에 대한 집착 등으로 점철된 일부 랩의 모습은 약자가 강자를 향해 발화했던 순수한 랩의 정신을 역행하는 다소 기형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것을 예술의 하나라고 인식하고 자찬하고 있다면 무척 심각한 오해요 오역이 아닐 수 없다. 랩과 힙합은 약자가 강자를 향해, 소수가 다수를 향해,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진 자를 향해 쏘아붙일 때 더 멋지고 통쾌하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가진 이들이 별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또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자위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랩이라는 이름표를 조용히 내려놔야 하는 것이 아닐까?



When I was young

지금보다 더 11years old 그때쯤

50 음악을 접하고 귀가 트여

나의 첫 작업 물을 Recorded

겁 없이 전진했고

처음과 달라진 방향에

방황하기도 했어

타협없던 어린 맘에 금이 가

돈이 다 가 아닌데

난 여유따위 없어서 뭐든지 다 했어

Now 난 여기 왔지

놓쳐버린 나를 찾기 위해

너랑 얘기 할 시간이 없어

난 필요해 Paper


위 랩은 지코가 자신의 무명 시절을 노래한 가사다. 돈과 음악 사이에서 갈등했던 언더 시절의 고뇌가 묻어 있다.



다 돈 벌러 나왔잖아

유명해지려 나왔잖아

모든 Rappers wanna be like

Jigga Nas Biggie Pac

미치광이들 크게 Screamin now

다 비켜봐 에오

손가락질은 마 에오

너도 똑같아아아 에오

혼자 다른 척 마

척할 거면 먼저 DO DO DO


뒤이은 가사에선 돈과 예술 사이의 고민 속에서 종종 빠지게 되는 함정, 즉 나는 돈과는 타협하지 않고 나만의 음악을 할 것이라는 자기기만, 그리고 상업음악만 하는 아티스트는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편협함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담겨 있다. 그리고 자신은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한다. 지코는 아직 성장 중인 것 같다. 과격한 가사와 흥겨운 비트를 주무기로 한 이 악동은 여전히 ‘예술가’와 ‘갑부래퍼’ 사이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찾아 고민하고 행동하고 있다. 다만, 내가 우려한 그 ‘배부르고 등 따신 예술가’가 되지는 않기를, 2015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지코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스물아홉 살 직장인 청년은 바랄 뿐이다.


지코는 앞으로 어떤 뮤지션, 아티스트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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