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쇼가 모자 갈등을 다루는 방법
시간이 꽤 지났다. 4월 25일 토요일 밤 유재석과 김구라가 출연하는 <동상이몽>이 첫 방영되었다. ‘같은 상황, 다른 생각’이라는 사자성어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인식 차이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날 방송의 첫 주인공은 훈남 외모의 훤칠한 고등학생 아들과 화끈한 성격의 엄마였다. 쟁점은 아들의 이성교제. '광주 이승기'라는 병명이 붙을 정도로 잘생긴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아들의 공부와 장래를 걱정한 엄마는 자녀의 (무분별한) 연애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아들과 여자를 만나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는 어머니의 대립은 아무리 주말 예능의 웃음기를 가득 묻혔다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성관계라는 것이 인간관계의 일부이고 어쩌면 가장 숭고하고 발달된 인간관계의 한 유형일 수도 있을 텐데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그것을 억제하고 단속하는 부모 세대의 편협함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내가 가장 안타깝고 슬펐던 것은 아들이 부모의 통제가 숨 막힐 듯 괴롭고 불편하다고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아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와 훈화를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걱정과 염려가 아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모는 열렬히 자녀가 바른 길(‘바른 길’에 대한 정의는 모두 다를 것이다)을 걷기를 기도하지만 그 ‘가르침’과 ‘훈화’는 아들의 귓등에도 닿지 못하고 번번이 짜증과 분노가 뒤섞인 불편함으로 아들에게 전달되는 것이었다.
이건 뭐 엉뚱한 곳에 가서 지하수를 파기 위해 쉴 새 없이 삽질을 하는 형국이었다. 그럴수록 아들은 엄마의 잔소리를 지겹다고 무시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들은 엄마의 말은 모두 고집스럽고 편향적이며, 심지어 들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이후엔 부모가 아무리 합리적,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가르치려 해도 아들에겐 모두 가치 없는 잡소리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지’ 않음에도 무언가를 ‘배우는’ 관계이다. 그것은 정확히 ‘삶에 대한 배움’이다. 진정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일방향적으로 살아왔는지, 얼마나 획일화되어 맹목적으로 살아왔는지, 얼마나 내가 그저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했는지 등을 깨닫는다. 사랑은 우리에게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삶을 알게 해주는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이다.
- 정지우, <청춘인문학>, 222쪽
나는 TV를 보며 속으로 "어쩌면 저렇게 요령부득일까, 아들에 대한 걱정은 알겠지만 꼭 저런 식으로 윽박지르듯 말해야 할까. 좀 더 세련되게 꾸중할 수는 없는 걸까."라고 안타까워했다. 아들도 자신의 논리가 있고, 엄마도 자신의 논리가 있다. 엄마는 자신의 마음을 못 알아주는 아들이 야속하고 밉다. 아들은 너무도 당연한 것을 모조건 안 된다고 소리치는 엄마가 이상하고 싫다. 중간에서 아빠는 중립이 아닌 방치를 택한다. 지금 이 상황에선 “아들의 논리, 엄마의 논리 중 무엇이 맞나요?”라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비를 가리려는 칼질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일단은 서로 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논리를 상대의 논리와 잘 버무려 적절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세상 경험이 적고 나이가 어린 자녀 입장에선 ‘잘 듣고 잘 말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여기선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한다. 자녀의 이야기를 듣고 냉정하게 분석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순간의 염려와 걱정 그리고 분노와 짜증에 정신이 팔려 귀를 닫고 소리쳐선 안 된다.
집에 들어가면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부모님이 당장은 서운해하시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그런 독립된 자세가 옳습니다. 그런 독립은 빠를수록 좋고, 부모님의 섭섭함도 빨리 지나갈수록 서로에게 좋습니다.
- 김두식, <욕망해도 괜찮아>, 297쪽
이날 방송은 아들과 엄마의 어색한 화해와 포옹으로 마무리되었다. 평가단의 표를 더 많이 얻은 아들은 그동안의 엄마의 잔소리가 모두 ‘헛소리’였음을 확인하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승자의 웃음이었다. 방송 내내 ‘속이 터지겠다’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던 엄마는 못다 한 말을 가슴에 잔뜩 구겨 넣고 어색하게 웃으며 퇴장했다. 이날의 진정한 승자는 <동상이몽>인 것 같다. 잘생긴 고등학생의 풋풋한 애정행각과 그것을 몰래 지켜보며 속 타는 부모의 어설픈 미행을 코믹하게 카메라에 담았으며 종국엔 모자의 갈등 해결이라는 가식적인 휴머니즘까지 확보했으니까. 유재석과 김구라는 득의양양하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