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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팔 Mar 04. 2016

‘강남좌파’의 자녀들은
‘강남우파’가 될까요?

우리 지환이도 강남에서 살게 하고 싶다! 세련된 이미지와 멋진 학벌을 갖추어주고 싶다! 미래의 장차관이 될 인물들과 죽마고우로 지내게 해주고 싶다!
- 정아은, <잠실동 사람들> 91쪽






손아람의 <디 마이너스>에서 주인공의 친구 진우는 이런 공식을 메모했다.


진보적 부모 → 진보적 자녀: 가능

진보적 부모 → 보수적 자녀: 불가능
보수적 부모 → 진보적 자녀: 가능
보수적 부모 → 보수적 자녀: 가능


진우는 공대생이다. 이 공식은 해당 소설의 극중 인물들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한 표로 활용되었는데, 이를 현실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진우는 진보적 부모 아래에서 진보적 자녀는 나올 수 있어도 보수적 자녀는 나올 수 없다고 천명했다. 진보와 보수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따라 그의 전제는 이론의 여지가 있겠으나, 여기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치적 경향성의 잣대로 진보와 보수를 단순하게 나눠 생각하자.






‘강남’과 ‘좌파’라는 매우 이질적인 두 단어를 합친 ‘강남좌파’라는 단어는 강남으로 상징되는 부유한 지역에 살고 있음에도 (따라서 그만큼의 부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현 정권에 아부하지 않고 올곧은 목소리를 내는 진보적인 인사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보다는, 입으로는 보수 정권을 비판하고 분배와 복지를 부르짖지만 실상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산을 축적해 기득권 계층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내부의 적’으로 비난받고 있다. 전자와 후자는 외형상으로는 그 내용이 같으나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가 자신의 부를 내려놓을 수 있는 '소신'이라면, 후자는 전형적인 '언행불일치'의 모습이다. 


비판자들의 눈에 비친 ‘강남좌파’란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가 이제는 그 투쟁의 전리품(안정된 직장으로부터 나오는 소득자산과 강남을 근거로 한 부동산 자산 등)을 양손 가득 거머쥔 채 강남이란 기득권들의 공유지에서 적당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그런 그들이 정치적으로는 진보를 지향하고 있으니, 여전히 야지에서 미완의 민주주의를 위해 집권 세력과 싸우고 있는 이들로서는 박탈감과 소외감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강남좌파'라는 단어는 강준만 교수가 처음 제안한 말이라고, '네이버 사전'이 말한다.





그런데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과거의 투쟁 전력만 싹 빼놓는다면, 혹은 여기저기 단발성으로 기고한 ‘진보’를 코스프레한 각종 칼럼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개발의 논리를 앞세워 독재 정권에 기생해 성장의 과실을 포식한 갑부와 재벌, 즉 기득권 세력과 형태적으로 매우 유사한 그 ‘강남좌파’들의 자녀들은 과연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갖게 될까? 겉으로는 진보를 운운하면서도 안에서는 열심히 부를 축적하며 안정적으로 기득권 세력에 진입한 부모들로부터 보고 배우고 키워진 자녀들이 생각하기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이념'과 '주의'라는 정치적 유산은 제거된 채 부라는 자산만을 물려받게 될 그들은 부모들이 그토록 언짢게 여겼던 역설적인 ‘오명’을 버리고 온전한 자기완결적 단어(가령 강남우파?)를 가질 수 있을까.





집이 강남이거나 근처에 원룸 혹은 오피스텔을 얻을 수 있는 경제력이 되는 사원들은 여유롭게 출근했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원거리 거주자들과 달리 야근이나 회식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이 훨씬 더 쉽게 업무능력도 향상되었으며 직장 내 인간관계도 매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 강성민 외, <이따위 불평등>,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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