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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팔 Dec 01. 2019

출판 노동의 값어치

연봉에 대하여

내가 자주 들어가는 사이트가 있다. 출판편집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인데 애초에는 출판인들의 이야기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였으나, 지금은 그냥 출판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사용하는 구인 사이트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이곳이 국내 유일한 ‘구인’ 경로가 되어버렸으니, ‘구직’을 희망하는 사람들 역시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들락날락 거리게 된다. 나 역시 이직 때 이곳을 하루에 수도 없이 접속했다. 아직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은 지금은 ‘구인/구직’ 코너보다도 ‘자유게시판’에 종종 들어가곤 하는데, 이곳은 그냥 출판동네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고민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광장 같은 곳이다. 문제는 광장에 청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지만. 

최근 몇 달 올라온 고민은 대충 이렇다. “출판업계 쪽에서 일하고 싶은 전문대생입니다. 도와주세요.” 출판계 입문을 희망하는 구직자들의 하소연이 가장 잦다. “판권 확인하시는데 보통 얼마나 걸리시나요?” 이런 업무 질문도 종종 올라온다. 하지만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이번 주 금요일 다들 쉬시나요?” 여기서 ‘이번 주 금요일’은 어린이날과 주말 사이에 낀 샌드위치 휴일을 말한다. 나라에서 특별히 정한 임시공휴일 말이다. 나라에서 쉬라고 한 날임에도 굳이 이런 곳에 질문을 올려 ‘진짜’ 쉴 수 있는 편집자를 묻는 이상한 동네가 바로 출판동네다. 그래서 이 바닥 사람들은 타인의 근무조건과 복지조건에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나는 힘들게 일하는 너는 쉬는구나, 나는 이것밖에 받지 못하는데 너는 그만큼이나 받는구나, 나는 고작 이만한 일을 하는데 너는 벌써 그렇게 큰 일을 하고 있구나. 

급여, 직급, 연차, 보상, 복지 등등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서의 ‘일’은 유독 출판노동자들에게 좀 더 막대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임시공휴일에 연차를 내어 회사를 나가지 않았던 나 역시도 누군가의 정당한 휴식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실눈을 뜨고 바라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유독 이 게시판에서 가장 활발한 논의(?)를 부추겼던 게시물이 하나 있었다. “구직중인 신입입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질문 드립니다.”(2016년 5월 3일) 질문의 요지는 이랬다. 

‘워낙 책 보는 걸 좋아해서’ 출판사 구직을 알아보던 중, ‘도대체 초봉으로 어느 정도 받고 들어가는 게 옳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처음 목표’로 ‘월급 실수령액 200 이상 받기’로 정했는데, 막상 알아보니 연봉 2000 이하인 곳이 수두룩하고 거기에 수습이다 뭐다 까이면 실제 들어오는 돈은 ‘한 120, 130 나올 텐데’ 이 돈으로 생활이 가능할 것인가, 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런 말도 적어놓았다. “돈에 커다란 가치를 두지는 않았는데 액수가 너무 적다(고 생각되다)보니 얼떨떨하고 한숨만 나오네요.” 일단 그의 조사는 정확했다. 바로 내가 그 조사의 표본일 테니까. 얼떨떨하고 한숨만 나올 그의 기분도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는 ‘실제 일하고 계신 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현업의 편집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지적한 바가 이곳의 현실이니 자신 없으면 떠나세요.” 

조금 무례하고 불친절한 응답이었지만 질문자의 고민에 가장 적절한 대답이었다. 응원과 격려 따위는 돈이라는 현실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에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한 것이리라. 물론 나도 그들의 직언에 한 마디를 보탰다. 

그렇게 댓글을 달고 사이트 창을 끄고 회사의 일로 복귀하며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이 바닥의 급여는 이토록 짤까. 출판노동자들은 저 출판 너머의 노동자들과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는 데도 왜 그들보다 적은 보수를 받아야 하는 걸까.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들은 이 땅에 출판산업이 태생한 시기부터 축적되고 형성된 근원적인 문제들일 확률이 높다. 나는 여기서 이른바 그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할 생각은 없다. 그럴 깜냥도 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좀 더 고민해보고 싶은 질문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받는 임금(이라 쓰고 ‘저임금’이라고 읽자)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그 임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개선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도대체 얼마를 받아야 만족할 것인가?


사실 내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신입’ 구직자의 한탄 게시물이 아니라 ‘2013 출판사 직급 및 분야별 연봉 大 공개!!’라는 게시물에 적힌 다음의 문장 때문이다. 

“지식산업에서 만족할 만한 보수를 받는 날이 언제쯤 도래할까요?” 

정연한 수치와 객관적인 통계로 출판노동자들의 열악한 저임금 실태를 표로 제시한 뒤 ‘출판계가 이렇게 힘들다’, ‘출판노동자들은 오직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한 이 게시물의 정체성은 분명했다.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만족할 만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실현 가능한 슬로건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는 없겠으나 아무튼 이 게시물의 당위는 분명해 보인다. 나 역시 그런 날이 얼른 도래하길 염원하지만, 나는 나를 포함한 출판노동자를 지지해주는 이 게시물의 어조가 약간 거북스럽게 느껴졌다. 그것은 ‘지식산업’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지식산업이란 무엇일까? 무형에서 유형의 가치를 끌어내는 일? 작가와 예술가, 화가가 어울려 콜라보를 구현하는 산업? 손이 아닌 머리로, 발이 아닌 입으로 ‘일’을 꾸리고 해결하는 분야? 아무튼 글쓴이는 (감사하게도) 출판산업을 ‘지식산업’의 범주 안에 넣어줬다. 아무튼 나의 첫번째 반감은 이것이다. 조금 거칠게 말해서, 지식산업에 속한 출판노동자는 저임금을 감당하면 안 되고 지식산업에 속하지 않는 직종의 사람은 저임금을 감당해도 되는 것인가? 지식산업은 다른 산업보다 우월한 직종인가? 물론 글쓴이는 ‘만족할 만한 급여’라고 선을 그었다. 억대 연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최저 급여를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다시 저 위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를 받아야 만족할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은 노동자마다 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 ‘다름’이 이 질문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저마다 써야할 돈의 규모도, 만족할 수 있는 돈의 액수도 모두 다르다. 우리는 그렇게도 돈을 중요하게 여기고 연봉이 너무나도 낮다고 불만을 쏟아냈지만, 정작 그 돈이 어느 공간에서 어떻게 쓰일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보지 않았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런 고민은 사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없이는 우리는 계속해서 먹고살기 바쁠 것이다. 회사에 미래를 저당잡힌 채 노동력을 착취당할 것이다. 

월급. 많이 받으면 좋다. 나도 많이 받고 싶다. 1년 만에 모인 동창회에 가서 너는 얼마 받냐, 네 연봉은 얼마냐, 따위의 질문이 나올 때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말해보고 싶다. 엄니 휴대폰에 내 이름은 '잘될 아들'로 저장되어 있다. 파주라는 외지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유명하지도 않은 작은 출판사에 다니는 아들은 아직 잘 되지 않은 아들이라는 뜻이다. 어느날 파격적으로 월급이 오른다면, 사장님이 벼락을 맞고 정신이 이상해져 전 직원의 연봉을 300% 인상해준다면 아마 나는 그간의 수모와 멸시를 털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서로의 월급과 연봉에 대해 쉬쉬하고 심지어 어떤 회사에서는 서로의 연봉계약서를 보여주는 행위는 사규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엄포를 놓기도 하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은 그저 누가 더 많은 연봉을 받는지 질투하고 나는 대체 왜 이 월급 밖에 받지 못하는지 자조하며 고립되어 간다. 저마다의 분노 속에 고립된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돈의 액수에 대해 고민할 겨를 없이 업계 표준, 출판계 평균 연봉 등등 유혹적인 워딩에 이끌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남의 연봉을 할짝거리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렇다. 나는 이 짧은 문장을 쓰기 위해 이리도 오래 돌아왔다. 


우리는 우리가 받을 노동의 값어치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을 위해선 노동자들이 서로의 고민과 사정과 처우와 이야기를 공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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