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외
어찌 보면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서가에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독서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정수복, <책에 대하여 던지는 일곱 가지 질문>,177쪽
이강룡의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는 참 좋은 책이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글을 다뤄온 저자가 그간 자신이 쌓은 말과 번역에 대한 참 지식을 깨알 같이 엮었다. 허투루 흘릴 수 없는 소중한 가르침이 가득하다. 그는 맺음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 애정을 품고 오랜 세월 성실히 그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훌륭한 번역자가 된다.” “시신을 ‘죽은 모습’이라고 말하지 않고 ‘삶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표현”한 법의관들을 “사망자의 처지에서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밝히고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잘 옮”겼으므로 ‘훌륭한 번역자’라고 칭찬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가 남을 두고 한 칭찬처럼, 이강용 역시 출발어와 도착어 사이에서 쉬지 않고 공부하고 끈임 없이 의심하며 주저 없이 질문을 던진 훌륭한 번역자였음을 잘 알 수 있다.
피터 뉴마크는 <번역 교과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번역은 사랑과 비슷하다. 무엇이 사랑인지 아는 건 어렵다. 그러나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 아는 건 어렵지 않다. 좋은 필자, 공부하는 성실한 번역자가 되려면 적극적으로 뭔가 되려고 목표를 세우기보다 나쁜 걸 줄여 나가는 식으로 공부 태도를 정하는 편이 낫다.
- 이강룡,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141쪽
이 책은 좋은 글을 고르는 방법에서부터 역주와 해설을 달 때의 주의점에 이르기까지 번역자가 책을 번역해 출판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큰 관문들을 열거했다. 하지만 이런 지침들은 비단 번역자뿐만 아니라 편집자와 일반 독자에게도 굉장히 유익하고 중요한 정보들이다. 가령, 좋은 글을 고를 때 “다짐하거나 뻗대지 않고 묵묵히 근거를 마련하여 보여주는 그런 글”을 고르라는 지침이나, 비슷한 용어를 구별할 때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 이해하지 못한 거나 다름없다”는 지침은 굳이 출판계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글을 읽고 써야 하는 사람이라면 늘 머릿속에 넣어둬야 할 고마운 가르침이다. 이것들 말고도 많다. 편집자인 나 역시 당장 교정에 참고할 수 있는 요긴한 지식을 많이도 얻었다. 이제 나는 앞으로 ‘싱어송라이터’라는 말 대신 ‘가수 겸 작곡자’라는 말을 쓸 것이며, ‘나름’이라는 의존명사를 문장의 맨 앞 써야 할 경우 반드시 ‘그’라는 대명사를 함께 써줄 것이다.
귀에 더 익었다고 하여 의심하지 않고 써 버리는 건, 전문가로 올라서는 걸 포기하고 아마추어 번역자로 눌러앉겠다고 선언하는 꼴이다.
- 이강룡,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57쪽
사실 이 책과 함께 같이 구매한 책이 한 권 더 있는데, 마침 이강룡 선생이 이 책에서 극진한 대접을 해줘서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이수열 선생의 <우리말 바로 쓰기>가 그 책이다. 제목 그대로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읽을 요량이다. 이 책은 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훑어보곤 구매를 결정한 책인데, 이수열 선생의 서문과 1장을 조금만 읽었을 뿐인데도 한국어가 정말 어렵고 까다로운 언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적확한 단어 사용, 적절한 문장 구성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공부가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휘갈긴 글들 속에 얼마나 많은 오류와 무지가 적혀 있을까? 그런 부끄러움이 한국어 공부에 대한 다짐으로 이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 전에 이런 시도를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사무실에 있는 국어 규범에 관한 책만 해도 몇 권은 된다. 이제 이강룡 선생과 이수열 선생의 책까지 샀으니, 공부할 책이 10권 가깝게 모이게 되었다. 이걸 언제 다 볼 수 있을까?
지난주 토요일에는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가면 늘 하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일간지 코너에서 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의 주말 북섹션 코너를 보는 일이고 남은 하나는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서 새로 꽂힌 책들의 면면을 훑는 것이다. 도서관 신간 코너는 갓 출간된 따끈따끈한 (진짜) 신간도 있지만, 대개 도서관 이용자가 신청한 책들이 꽂혀 있다. 이용자들은 주로 신간을 신청하긴 하지만, 더러 구간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도서관 신간 코너에는 나온 지 좀 된 애매한 녀석들도 있다.
이날 내 간택(?)을 받은 책은 총 세 권.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정당의 발견>과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 그리고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정복당한 자의 시선>이라는 책들이다. 앞의 두 권은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들어봤던 제목이어서, 나머지 한 권은 제목이 하도 독특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문제의식이 흥미로워 집어 들었다. 그중 우치다의 <하류지향>을 대출해서 집에 왔다. 내가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고, 또 곧 읽을 몇 권의 책들—김동춘의 <대한민국은 왜?>, 엄기호의 <단속사회>, 정지우의 <분노사회>, 제현주의 <내리막 길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등과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참, <정당의 발견>도 마찬가지(하지만 읽어야 할 책이 워날 많아서 이 책을 빌리지 않았다).
엄기호의 <단속사회>는 지금 열심히 읽고 있는 책인데, 실제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약 한 달 전인데, 급하게(?) 읽어야 할 책이 도중에 생겨 잠시 읽기를 중단했던 책이다. 그리고 얼마 전 다시 읽기 시작하다가 어쩌다 또 ‘잠시 멈춤’ 상태에 있다(게으름의 소치다). 아무튼 엄기호의 책은 천천히 하나씩 다 읽어볼 요량이다. 한국사회를 ‘곁을 없애고 편을 가르는’ 사회라고 진단한 저자의 말을 곰곰 뜯어볼 생각이다. 그와 비슷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젊은 작가 정지우의 <분노사회>는 그다음 읽을 책이다. 이 책 역시 중간까지 읽다가 다른 급한 책이 있어서 읽기를 중단한 상태.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지난 2월에 읽은 김찬호의 <모멸감>과 함께 이 세 권의 책은 병든 한국사회의 민낯을 각자의 시선으로 해부하고 있는데, 그것의 대안 역시 저자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문제와 대안을 서술하고 있을지 몹시 기대된다. 세 권의 저술을 비교해 리뷰하는 것도 재밌는 일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 전에 김동춘 선생의 <대한민국은 왜?>를 제일 먼저 읽어야 한다. 당장 다음 주 일요일 독서모임 때 이 책을 다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위 나의 ‘한국사회 비평 읽기’ 프로젝트의 첫 책으로 지난 100년 한국사회를 형성한 근현대사적 조건(역사)을 해부한 <대한민국은 왜?>를 배치하는 것이 더 적절해보이기 때문이다. 특정 문제의 역사적 기원을 찾아 그것이 현재에 이른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론 아니겠는가? 엄기호와 정지우는 그다음에 읽어도 늦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런 한국사회의 결과물이자 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하류지향’에 관해서는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을 읽어보면 될 것이다. 이 부분은 장강명의 <표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니 그 책도 함께 다루면 좋을 것 같다.
‘하류’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하는 제현주의 <내리막길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역시 밀접하게 연관된 책이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환경과 조건 안에서 ‘일’하고 젊은이들의 방황과 부유를 젊은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냈다. 정리하면, 나의 ‘한국사회 비평 읽기’ 프로젝트에 포함된 책은 (현재로선) <대한민국은 왜?>, <단속사회>, <분노사회>, <하류지향>, <내리막길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정당의 발견>, <모멸감> 등이다. 물론 더 추가될 수도 있다. 이 책들만으로 감히 한국사회를 비평하고 해석하고 문제의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나 개인의 목록이니 누구도 내게 잘못된 일이니 그만두라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도서관에서 <하류지향>을 빌리는 김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장강명의 <호모 도미난스>도 함께 빌렸다. ‘호모도미난스’는 작가의 말에 의하면, ‘정복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다음 인류라고 하는데, 정치가 실종되고 세대가 해제되고 있다는 이 시점에 굳이 ‘정복’이라는 단어를 신인류의 키워드로 삼은 점이 조금 촌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믿고 보는 작가이므로, 그의 전작 <표백>에 얻어맞은 여파가 워낙 컸기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당장 읽기 시작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에 잠깐 읽은 것까지 약 70쪽 정도 읽었는데, 역시 재밌다. 다만,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삼은 공상소설에다 ‘정신조종능력’이라는 조금 허황된 설정까지 있어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처절한 현실을 이야기한 전작보단 조금 밀리는 감이 없지 않다. 그래도 재밌다.
이렇게 죽 써 놓고 보니 읽겠다고만 하고 읽지 않은 채 여기저기 벌려놓은 책들이 참 많다. 화장실 문 앞에 몇 권, 책상 위에 몇 권, 가방 안에 몇 권, 침대 머리맡에 몇 권. 빌려놓고 읽지 않은 책, 사 놓고 읽지 않은 책의 무게로 죄의 값을 치러야 한다면 분명 나는 중형일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나의 죄목(?)을 적어놓으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자백'이지만, 적어도 나는 나의 이 고백을 돌이켜 훑어보며 못 읽은 책들을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방치된 책들이 얼른 내 손에 돌아오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