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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팔 Dec 18. 2015

나쁜 놈이 더 잘 산다

문을 열 땐 반드시 옆 차의 운전자를 주의할 것



본인은 이 글에서 정부에 대한 정치적 입장 혹은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으나, 다만 '나쁜 놈'의 전형을 예시로 들고 싶어, 본 사진을 인용했습니다. 잇힝. 





"아줌마!"


남자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튀어나왔다, 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는 잽싸게 튀어나왔다. 남자가 소리친 '아줌마'는 나의 엄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내가 고민할 틈도 없이 남자는 씩씩 거리면서 짜증을 내뱉는다. 아이, 씨. 장소는 수영장 주차장이었다. 엄니와 나는 주말마다 수영장에 가는데,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차를 주차하고 내리던 차였다. 조수석에 앉은 엄니는 별다른 경각심 없이 문을 열었고 하필 옆에 주차된 차의 운전석 문을 살짝 건드린 것이다. 이것을 '문콕'이라고 하나? 아무튼 이 찰나의 접촉(?)이 이날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다. 옆 차의 운전자는 그 미세한 느낌을 어떻게 감지했는지, 엄니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정말 튀어나오듯 차에서 내려 이렇게 외친 것이다. “아줌마!”


그 이후의 상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기분이 상해질 것 같으니. 사단이 종료될 때까지는 약 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먼저 잘못을 한 어머니는 고개를 숙여 잘못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인 그 남자는 그런 엄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가만히 있어봐라' 언성을 높이며 차의 문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리고 분명 아줌마가 잘못한 게 맞죠, 라며 재차 확인을 하며 어린 제자를 혼내듯이 다그쳤다. 다행히 기스는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아주 살짝 건드렸기 때문에. 그 남자가 엄마에게 귀찮다는 듯이 ‘그냥 가세요’라고 말을 하자, 나는 나도 모르게 너털웃음이 나왔다. 남자는 나를 노려봤다.






아무튼 대충 수습을 하고, 그 문제의 차를 뒤로 하고 어머니와 나는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탈의실에서 그 남자를 잠깐 마주쳤다. 그나 우리나 수영을 하러 왔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속으로 뭔가 초조함을 느꼈다. 시선을 회피하고 묵묵히 옷을 갈아입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풀장에 들어가면 발가벗고 수영모에 수경만 차고 있으니 서로 알아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그날 수영은 물 건너 갔다.


아마 그 남자는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라면 아까 그렇게 생난리를 떨지 않았을 테니까. 상대방의 고객 숙인 사과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뻔뻔하고 당당할 테니까. 아무튼, 그 이후로도 찜찜했다. 혹시 그 남자가 우리 차에 해코지를 하고 가면 어떡하지? 나중에 뺑소니로 신고하면 어떡하지? 뭔가 거대한 악에 코가 낀듯한 불쾌하고 불편한 기분. 만나도 저런 더러운 녀석을 만났구나. 새삼, 세상의 바람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사건의 발단은 엄니와 나 모자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것이 과연 이렇게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고 겁에 질리게 만들 정도로 큰 잘못일지는 모르겠다. 저렇게 뻔뻔하고 큰소리를 치며 대들 수도 없는, 즉 제대로 나쁘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애매한 입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세상은, 나쁜 놈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적이다. 






당연히, 나쁜 놈들은 나처럼 이런 쓸데없는 고민은 하지도 않을 것이다. 뻔뻔함과 무례함, 고성방가와 폭력과 위협으로 얼마든지 위기를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들은 굳이 그런 '거친 방법'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거칠어질 수 있다는 위협적인 태도를 패스브 스킬처럼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므로, 길거리에서 불필요한 송사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얼마나 편한가.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잘 산다. 사회라는 정글을 해쳐나가기에 훌륭한 나이프와 도끼를 들고 있는 그들에게 세상은 쉽다.  


그럼 나 같이 애매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내가 최근 독립을 생각하며 자립하겠다고 다짐했으니 참으로 가소로운 노릇이다. 제 밥그릇도 챙기지 못하면서, 가족도 지키지 못하면서 혼자 살겠다니. 무술을 연마할까? 아님 유단자 친구라도 사귀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런 고민 끝에서도 끝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악인을 두려워한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세상과 맞서느니 그냥 집에서 숨만 쉬겠다는 것. 아예 사람을 만나지 말자. 괜히 부닥쳐서 흠집 날 일을 만들지 말자. 그냥 숨만 쉬고 살자. 이렇게 사람은 초라해지고 궁색해진다. 



마침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여기 등장하는 세 인물은 누가 봐도 '나쁜 놈'들이지만, 영화는 그 '나쁨'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김흥수 주연.




사진 자료.

메인타이틀: http://inuit.co.kr/2188

1. http://tsori.net/4562

2. 영화 <나쁜 놈이 더 잘 잔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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