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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팔 Nov 26. 2015

세상에서 가장 듣기 힘든 말

상사의 격려를 듣고 기분이 몹시 더러워진 이유







“인간은 행동은 약속할 수는 있으나, 감정을 약속할 수는 없다”라고 니체는 말했다.
- 김찬호, <모멸감>, 26쪽


삶의 얼굴은 다양하다.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가 나를 짓누를 때 삶의 얼굴을 흉포하고 냉정하다. 자비 없이 몰아붙인다. 하지만 환희와 쾌락의 순간이나 평화로운 안주의 시간에 삶은 평범한 주말의 해질 녘 같은 온화한 표정을 짓는다. 이 극단적인 두 표정 속에서 나는, 우리는 나약하고 애처롭다. 이 삶의 변덕 앞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면 마냥 울지도 못하고 마냥 웃지도 못하는 ‘웃픈’ 상황 속에서 휘청거리다 꽈당 넘어져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생의 위기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보잘 것 없는 곳에서 튀어나오곤 한다. 


침몰은 아주 작은 파공에서 시작된다. 


요즘 나의 상태를 의태어로 표현한다면 ‘휘청휘청’이라는 단어가 적절할 것이다. 누군가 지나가며 한 말이겠지만, 툭 하고 던지는 한 마디에 나는 마음이 철렁거린다. “그 보고서 00 씨가 작성했나요?” “00 씨 안 더워요? 옷이 너무 더워 보이는데?” 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나? 내가 뭘 잘못했나? 또 말실수를 했나? 오만 가지 잡상이 찰나의 순간 머리를 때리고 지나간다. 이는 분명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일 게다. 이런 때를 두고 “도둑이 제 발 저리다”라는 속담이 있는 걸까. 분명 과거의 어떤 내 잘못이 내 무의식에 남아 있어 누군가의 지적 아닌 지적이, 참견 아닌 참견이 거슬리고 못마땅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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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엉뚱하게도, 이런 울컥(?)은 삶의 일상적인 대사들에서도 종종 튀어나온다. 아침에 출근하자 어제 부서장님으로부터 정체불명의 메신저가 왔다.  



“요즘 힘들어 보이는데 별 일 없죠? 책장 너머로 매일매일 응원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 정리되면 맛있는 따로 한번 먹으러 가도록 합시다. 파이팅 하세요^^” 



나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쿨하게 대답하면 될 것을 나는 몇 초 동안 적당한 답변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나는 나의 상사가 선의와 진심이 가득한 말을 해준 것이라고 믿는다. ‘파이팅 하세요^^’라는 말의 진의가 ‘요즘 날마다  칼퇴근하던데 두고 보겠어!’라는 반협박으로 들린다면, 그것은 나의 지나친 공상에 의한 허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뜬금없이 날아온, 내가 입사한 지 처음으로 받은 부서장님의 이 메신저를 보고, 매우 기분이 더러워졌다. ‘불쾌하다’라는 같은 뜻을 지닌, 좀 더 교양적인 한자어로 표현하기엔 당시의 내 기분은 훨씬 더 거칠고 지저분했다.



점심시간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xx 씨 요즘 왜 이렇게 말이 없어? 어디 힘들어?” 나의 바로 위 상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분명 관심과 배려의 표현이었겠지만, 역시 공상에 휩싸인 나는 그 관심의 표현이 무척 껄끄럽게 느껴졌다. 내 기분을 순식간에 침몰시키는 주변의 이런 ‘말’들은 휘청거리는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왜 나는 누군가의 호의를 받고서,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서도 불쾌함을 넘어 더러움을 느끼는가? 이번엔 비난도 욕설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언어를 듣고서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몹시 부끄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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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모가 났을까?


이런 감정의 굴곡의 원인을 나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진단했다. 누군가에 대한 참견은, 격려는, 관심은 상대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성실한 관찰의 끝에는 당연하게도 관찰에 대한 약간의 결과가 도출된다. 그 결과란 우리가 ‘평가’라고 부르는, 조금 딱딱하고 기분 나쁜 단어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이, 나의 상사들이 나를 관찰하고 어떤 평가에 이르러 ‘내가 요즘 힘들어 보인다’는 관찰 결과를 내놓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고, 누군가 나를 관찰하고 평가했다는 사실이 몹시도 불쾌했던 것이다. 나의 본심이 들켰다는 사실이―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무척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더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옹졸한 ‘피관찰자’는 마음을 추스르고 마음의 빗장을 더 굳게 잠근다. 누구도 나를 관찰할 수 없도록, 나의 본심이 들키지 않도록. 그래서 기분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내면의 어둠 속으로 몸을 웅크린다. 그리고 이런 결심도 한다. 적어도 나는 남에게 쓸 데 없는 참견도 격려도 늘어놓지 말자고. 이렇게 또 나는 삶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난다.




3


즉, 우리가 자기 자신의 ‘진정한 자아’에 집중할수록,
자신에 대해 ‘진실’해질수록 어떤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정지우, <삶으로부터의 혁명>, 270쪽






<사진 출처>

1. http://times.postech.ac.kr/news/articleView.html?idxno=4678

2. http://egloos.zum.com/thekod/v/2550126

3. http://yoony2.egloos.com/m/1283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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