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사세요?

소심한 일주택

by 산과물


어디에 살아야 하지




'무궁무진 포천'


어린 시절은 포천에서 지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중간에 서울과 그나마 가까운 의정부로 이사와 10년을 내리 의정부 사람 행세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사는 곳이 어디냐 묻는 친구들의 말에 겉으로는 의정부라 말하면서도 마음속 애매한 위치에 쉽게 이야기하지 못해 거짓말쟁이가 된 내가 생각난다. 부모님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인천에 한 공장에서 기술을 배워 땅덩어리 넓은 포천에 정착해 현재까지 공장을 운영하신다. 밤 낮 구분 없이 방 안으로 울려 퍼지는 공장 기계 소음은 불쾌함보다는 들리지 않으면 집안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어색하고 불안하게 느껴졌다. 의정부로 오게 된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군입대 전까지 놀기 좋아했던 사춘기 청소년 기간을 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군대를 가기 전 부모님과 다시 함께 지내자는 권유에 의해 포천으로 들어갔지만 포천을 벗어나고 싶은 나의 고민은 결혼을 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벗어나고 싶다


나는 전문대 3년을 포천에서 등하교했다. 그 당시엔 포천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큰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왕복 2시간 이상의 시간을 버스 안에 시간과 내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과 맞바꿨다고 생각해보니 그 긴 거리가 후회되기도 한다. 일찍이 독립을 해볼까 고민도 해봤지만 워낙 고민이 많은 성격 탓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고 부모님과 지냈던 짧은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동시에 가족이 함께하는 집의 느낌을 충족시켜드리고 싶은 마음도 아들로서 조금은 있었다.(충족된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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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입대


그렇게 또 10년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나는 결혼을 했다. 기간은 길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은 6년의 연애는 모두가 그렇듯 빠르게 흘러갔고 까마득히 관심 없던 집 값도 연애하는 동안 빠르게 올라갔다. 서울은 너무도 멀게 느껴졌고 포천에서 출퇴근을 했지만 스스로는 유년시절의 모든 시간을 보낸 의정부에서 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익숙함 때문인지 의정부에 신혼집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불장에서 시작했던 나의 내 집 마련 고군분투는 시작됐다. 모든 부동산 유튜브 채널을 구독했고 하루 종일 상승론자, 하락론자, 폭락론자 등 의견이 다른 자칭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다. 시장 상황을 이렇게까지 타이트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을까 할 정도로 지켜봤던 것 같다. 평상시엔 관심도 없던 내용이기에 이게 바로 세상을 사는 건가 싶었고 평생을 단독주택에서 지내신 부모님께선 요즘 시장을 알리가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부동산 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나라의 부름을 받고 원하든 원하지 않던 떠나야 하는 시기에 준비되지 않은 마음의 준비를 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2막은 2세가 아니야


실거주 일주택자가 되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아내와 나는 생애최초로 집이라는 걸 갖게 된 일주택자가 되었다. 흔히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갖게 되면 인생 2막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사이 존재하는 1.1막~1.9막을 까마득히 잊은 채 말이다. 그런 의미로 2막이 열리기 전 거치게 되는 1.5막은 결혼이 아니고 집이 생기고 난 뒤가 아닐까 싶다.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배운 적 없는 처음 겪는 문제들을 하루가 마다하고 처리해야 하고 여러 가지 계약서와 처리해야 할 서류들로 인해 매일이 전투하는 느낌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만큼 애증, 애정의 과정이 반복되지만 이 피할 수 없는 애증과 애정의 실거주 일주택자가 되기까지의 전투 일지를 작게나마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