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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진 이성숙 Jan 11. 2024

추사고택

충남 예산

 1. 추사고택


천안에서 자동차로 4,50분 정도 떨어진 예산. 예산 10경으로 일컫는 명소들이 있다. 추사고택은 예산 10경 중 하나다. 추사고택을 돌아본 후 수덕사와 예당호까지 다녀온다. 수덕사와 예당호는 사진만 남긴다.


추사고택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나고 자란 곳이다. 훗날 제주도에서의 오랜 유배 생활로 제주에도 추사 기념관이 있기는 하나 정치적 부침이 덜했던 그의 학문적 성장기를 감상하기에는 예산 고택이 좋다. 옛집 기둥에는 그의 시문과 추사의 친필 명문들이 해석과 함께 걸려 있다. 가슴속에 오천 권의 문자가 있어야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다고 했던 추사다. 그가 걸러낸 문장 하나하나가 울림을 주는 까닭이 여기에 있나 보다.


고택 기둥마다 걸려 있는 문장은, 깊은 학문의 결과 추사 자신에게 감흥을 주고 후세에게 마땅히 전하고픈 글귀들을 추사가 특유의 문체로 되살려 쓴 것들이다. 그는 “내 글씨는 비록 말할 것도 못 되지만, 나는 70 평생에 벼루 열두 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학자의 말이 이보다 더 겸손할 수가 있을까. 학자요 예술가였던 그의 열정이 읽힌다.


추사 생전의 육성을 들어본다. “비록 9999분에 이르렀다 해도 그 나머지 1분을 원만하게 성취하기가 가장 어렵다. 9999분은 거의 다 가능하겠지만, 이 1분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또 사람의 힘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과 상통하지 않은가. 내가 베껴 온 문장 하나를 옮긴다.    

  

 반일정좌반일독서(半日靜坐半日讀書: 한나절은 정좌하고 한나절은 책 읽고)/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고요히 앉았노라면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기 시작하는 듯하고)/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 신묘한 작용이 일어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열리는 듯하네)/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 아들딸, 손자의 모임이다)     


 어른의 말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현 세태다. 나는 마지막 구절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부부 아들딸 손자의 모임이 가장 훌륭하다는 글귀는 핵가족이 보편화한 현실에 경종이 될 만하다. 가족이란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전화 안부라도 자주 전해야겠다.


대청마루 기둥에 걸린 또 다른 문장 하나,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가장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현대에도 건강식으로 대표되는 찬거리다. 살아가는 데에 그리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음이다.


추사체 경지를 청경고아(淸勁高雅:맑고 굳세며 고상하고 아담함)하고 삼엄졸박(森嚴拙樸:무섭도록 엄숙하며 서툴고 순박함)하다고 한다. 털이 닳아빠진, 체험관에 전시되어 있는 몽당붓 앞에서 그를 추앙하지 않을 이가 없겠다. 체험관에는 그의 서체를 따라 써 볼 수 있도록 글본과 집필묵이 마련되어 있다.

숭엄한 고택 후원에는 보랏빛 상사화가 해마다 피어나 가고 없는 인걸을 기린다.      



일왕 연호로 새긴 김한신의 묘 유감


고택을 나서 왼쪽으로 걸으면 화순옹주 홍문이 있다. 홍문은 영조대왕의 둘째 따님이요, 추사의 증조할머니인 화순옹주가 남편 김한신이 39세로 세상을 떠난 후 14일을 굶어 남편의 뒤를 따라간 것을 기려 세운 열녀문이다. 조선왕조 유일의 열녀문이라 한다. 21세기를 사는 나로서는 홍안의 여인이 간 길이 무모해 보이지만 여인의 절개가 그토록 엄중했던 것이리라. 홍문을 지나면 백송 숲이 우거진다. 세한도에 영감을 주었을 백송,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글과 그림이 새겨진 돌비석들을 감상한다. 고요히 시상을 잡기에 좋은 장소다.


정갈하고 웅장한 추사고택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다. 아이들 교육에도 가족 나들이에도 권하고 싶은 곳이다. 다만 아쉬운 점 하나, 김한신의 묘비석 날짜가 일본식 연호로 새겨져 있다, 소화 12년 9월 일입. 소화는 히로히토 일왕의 연호로, 소화 12년은 1937년에 해당한다. 일제 때 묘석을 새긴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담장에도 그 수리연대가 일왕의 연호로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착잡한 심경이다. 관련 기관의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추사고택 전경


고택 정원에 핀 상사화相思花(봄). 한겨울이라 마른 흙만 잔뜩 굳어 있다.


고택 입구에 서 있는 세한도


고택 뒤로 돌아가면 백송공원이 있다.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 아들딸, 손자의 모임이다.



추사의 몽당붓


한여름엔 사람으로 왁자하던 곳이다.


수덕사 솟대길


예당호 가는 길에 만난 의좋은 형제 비석거리


의좋은 형제, 성만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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