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표준

발전의 양상은 변증법적이다

by 명진 이성숙

접속부사 ‘그렇지 않아도’와 ‘그러지 않아도’는 복수 표준어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맞춤법이 수차례 바뀌었는데 내가 따라가는 속도가 시원치 않아 요즘은 사전을 끼고 산다.


그런데 복수 표준이라니? 복수와 표준은 어색한 짝이다. 어떤 일에 준거가 둘이라는 것은 표준이 아니라 혼란이다. 혼란은 과도기를 뜻한다. 어휘의 변이가 ‘생성 - 성장 - 소멸’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니 작금의 상황은 ‘그렇지 않아도’가 발전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로 한반도가 시끄럽다. 조국의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운 것은 위정자의 복수 표준 때문일 터다. 정치의 기준은 백성에 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정치가는 모두 민본의 길을 걸었다. 세종과 성종이, 정도전과 황희, 백의종군을 택한 이순신이 걸어간 길이다.


그런데 당리와 개인의 영리를 기준 삼은 정치인이 있으니 조국의 정치는 표준이 둘이 되는 것이고 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조국의 정치 상황을 폄훼하여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나는 여전히 조국의 미래에 희망을 건다. 물론 민본과 개인의 영리는 상치한다. 복수 표준이 될 수 없다. 나는 성완종 리스트의 법적 추이에 대하여는 일말의 호기심도 없다. 나의 관심은 대한민국호의 이물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이다.


나는 김일성은 ‘빨간 돼지’인 줄만 알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건 물론이고 여당 험담도 조심스러웠던 청년기를 보냈다. 지금은 어떤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도가 넘는다 싶을 만큼 말이 많다. 정치적 금기어이던 뇌물수수가 국민적 담론이 되고 있다. 한편에서 복수 표준이 난무하지만 그 물살을 헤치고 우리 사회가 성장해 온 증거다.


4.19를 기점으로 한반도에 민주주의가 태동한 이래 우리는 끊임없이 진통을 겪어 왔다. 때론 안도했고 때론 위태로웠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발전을 이루었다. 발전이란 낡은 표준이 소멸하는 과정이요, 새로운 질서가 부여되는 과정이다. 현재는 두 가지가 모두 표준(?)으로 쓰이고 있으나 초조해하지 말자. 어느 시대나 발전의 양상은 변증법적이다. 나는 우리의 조국이 종국에 위대한 국가로 우뚝 설 것을 확신한다. (2015년도 캘리포니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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