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0 유럽여행기를 마치며
집에 와서 쓰는 여행기는 언어의 신선함이 떨어진다. 다니면서 쓰는 노력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에서는 다음 일정 챙기기에 바쁘고 종일 걸어 돌아다닌 후 숙소에 오면 몸은 쉬고 싶은 생각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좀 길고 소상한 얘기를 쓸 수 있었지만 많은 날들의 기록은 메모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엉성하다.
공부를 해가며 ‘그곳’을 봐야 한다는 걸 알지만, 여행 출발 전에는 일상에 쫓기느라, 여행 중에는 시간에 쫓기느라 나는 사실 준비 없이 다녔다. 현지에서 얻은 정보(호텔이나 여행자 센터 등에서)에 의지해 우선 ‘현장 확인’을 하는 것으로 내 여행 방식을 정했다.
그나마 이런 어설픈 여행기라도 쓸 수 있는 것은, 현장 발품팔이를 체력이 허락하는 데까지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열차 시간표를 확인하고 차표를 구매하는 일도 매번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무엇보다도 무거운 짐가방을 끌고 다니는 일은 고역이었다.
일과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면 그때부터 사진 정리와 장소 이름 메모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그러다 보면 새벽 1, 2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든다. 집으로 돌아와 여행기를 쓰는 동안 기억을 되살리기에 가장 공헌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진이다. 동선 별로 정리된 사진 파일을 말한다. 여행 초입, 별생각이 없던 나는 무조건 찍어대기만 했다. 그러나 포르투갈 스페인 일정과 지중해 크루즈 일정까지 마치고 나니 사진은 감당할 수 없이 많아졌다. 그제야 이렇게 사진을 쌓기만 해서는 나중에 의미 없는 그림책이 되고 말 것이라는 불안이 들었다.
크루즈 하선 후 프랑스 일정부터는 동선별로 파일을 따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정리된 ‘동선별 사진’은 여행기를 위한 온전한 자료가 되었다. 두 달 치 여행 사진이 모두 한 파일에 들어 있으면 사진을 고르고 찾느라 지금보다 몇 배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고, 지구력 떨어지는 나는 쓰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여행만 다녀오면 여행기 한 권쯤 뚝딱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여행기는 몸을 쓰는 수고와 머리를 쓰는 번잡함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인터넷 등에서 취할 수 있는 정보는 굳이 찾아 쓰지 않았다. 친절함이 떨어지는 글일 수 있지만, 이 여행기는 나의 관점과 감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이 나의 독자들이 원하는 게 아닐까 해서다. 어느 책에서든, 누구로부터든 들을 수 있는 얘기라면 굳이 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없겠기에 말이다. 오롯한 나의 느낌, 그것을 잘 구현하고 싶었는데, 부끄럽게도 크게 부족하다.
다음 기회에는 머무는 여행을 할 작정이다. 이번 여행은 집시여인처럼 많은 곳을 돌아다니기 원했었다. 다음엔 한 곳에서 그곳의 동식물, 곤충들, 사람의 섭생을 관찰하여 기록하고 싶다.
비밀인데^^, 여행을 고민하는 당신이라면 그저 툭툭 떨고 떠나라. 고민하느라 꾸물대면 안 될 이유는 쌓여만 간다. 서울의 골목길과 리스본의 골목, 호카곶과 정동진은 다른 듯 닮았고 닮은 듯 다르다. 여행을 통해서만 이런 동질감과 이질감을 감각할 수 있다. 여행은 세포를 각성시켜 현재를 더욱 뜨겁게 이끄는 일이다.
<6060 유럽 여행>은 내가 들렀던 도시 순서로 배열했지만, 그 도시 안에서는 내 방식대로 써갔다. 가령 프라하에 일주일을 있었지만 있는 동안 다녀온 곳이 시간 순서로 들어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그보다는 내가 알고 싶은 것 중심으로 주제별로 묶었다. 독자 여러분은 나의 루트보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에 관심 가져 주면 좋겠다. 또 하나, 쉥겐국가만 다녔다는 점도 일러둔다.
쉥겐국가란 1985년 6월 14일, 유럽 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도록 룩셈부르크 쉥겐에서 체결된 쉥겐조약에 가입한 국가들을 말한다. 이 국경 개방 조약에 현재까지 25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쉥겐국가 중 어느 나라를 통해 입국하든지, 최장 90일까지 쉥겐국가 내에서는 비자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물론 한국은 무비자 최대 수혜국이긴 하다)
그나마 안 쓰는 것보다 낫다는 믿음으로, 미흡한 채로 60에 떠나는 60일 유럽여행기를 마친다. 이 여행기는 시간을 두고 조금씩 더 보충되고 수정될 것이다. 기억이 희석되기 전에 서둘러 꺼내둬야 했다는 점을 독자 여러분이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읽는 이는 너무 많은 걸 얻으려 생각하지 말고, 준비 없이 떠난 길에서의 예기치 못했던 부대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던 여정, 그 속에서의 전진을 봐주기 바란다. 일상을 잠시 접기로 했던 용기에 대한 결실이라는 면에서 나는 이 여행기에 의미를 둔다.
많은 사람의 공감과 댓글, 질문을 환영한다. 내가 경험한 대로 성심껏 답해 드릴 것이다. 나의 동반자를 자처한다면 또한 환영이다. 여행은 어차피 낯선 것들과의 조우다. 인생이 매 순간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