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키7> 과 영화 <미키17>
*이 글에는 소설 <미키 7>과 영화 <미키 17>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미키 7>을 덮고나서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책을 통해 내가 찾은 답은 '기억'이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싫어하고, 어두운 조명은 좋아하고, 이불은 두꺼워야 잠을 잘 잔다'는 이런 나에 대한 정보들은 내가 경험했기에 아는 것들이다. 그렇게 기억이 축적되고 그것들이 모여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게 해주니까.
그렇다면 두번째 문제.
미키7은 미키1이라고 볼 수 있을까.
원앤온리였던 미키 반스라는 인물과,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 7은 같은 사람인가.
고심한 끝에 내가 내린 답은 ‘둘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만, 전제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 미키기 단 한명만 존재했을 때 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키 8이 프린트 되기 전에, 홀로 존재했던 미키 7을 생각해보면 그때 그는 미키1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미키8이 생기면서 부터다. 미키7과 미키8이 같은 시공간에 서면서 생기게 된 그 문제.
그가 나라고 생각하는 이상, 사람들이 그를 나라고 생각하는 이상, 그는 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고, 그럼 그는 나야.
(소설 - 미키 7)
미키 7과 미키 8은 과거의 기억들을 공유한다. 미키 7이 어릴적 갖고 있던 가족, 친구와의 기억을 미키 8은 똑같이 알고 있다.
나샤가 그(자신)의 여자친구라는 것도, 그녀와의 추억도 모두 그들의 머릿속에 동일하게 존재한다. 그들은 이미 ‘미키 반스‘다운 것들을 내재화하고 있다.
여기서 세번째 문제가 나간다.
그럼 이 둘은 같은 사람인가?
나의 답은 '아니다'이다.
미키 7이 업로드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면, 미키 8은 그에 대해선 알 수 없게 되고 그 기점부터 둘은 다른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될 수 있기에 둘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미키7과 미키8의 태도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묘사하는 부분이 종종 나온다.
다만, 완벽하게 서로의 성향이 다르다기 보다는 애매하게 겹친 부분도 존재하는데 영화에서는 더 극대화스러운 표현을 하기 위함이었는지
미키 17 = 다소 소심
미키 18 = 훨씬 다혈질
이라는 캐릭터성을 부여했다. 덕분에 로버트 패틴슨의 상극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도 더해졌다.
이 즈음에서,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어느 순간부터 미키 7 (미키 17)을 ‘더’ 응원했는가?
내가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소설에서 미키7과 미키8을 완전히 다른 개인으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와 맞닿아있다.
미키 8과의 작은 갈등이 생길 때부터, 나는 둘 중 한명만 살 수 있다면 ‘미키7‘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미 그때부터 둘을 동일한 미키 반스라고 바라보지 못하게 된 셈이다. 나에게 미키 반스는 미키 7이었다.
미키 반스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역사와 삶을 이야기해준 화자는 ‘미키7‘이었기에, 후반부에 생겨난 미키 8은 이미 타자화된 존재였다.
사실 이러한 관점이 굳어지게 된 것은, 소설가가 선택한 화자의 시점도 한 몫을 한다고 본다.
소설은 제3자의 관점이 아닌, 미키 7의 관점으로 쓰여졌다. 자연스레 그의 돋보기로 미키 8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가 나샤와 관계를 가지고 난 뒤에 느끼는 미키 7의 혼란과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전가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미키 8이 생겨난 시점부터는 미키 8의 관점으로 소설이 쓰여졌다면 그 때도 나는 여전히 미키 7을 응원하고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소설의 결말에서 미키 8이 아니라 미키 7이 죽었다면, 어떻게 주인공을 죽일 수 있냐면서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티모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미키 17이 아니라 미키 18이 대신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
마지막에 폭탄이 눌러져야 한다면, 미키 17이 아니라 미키 18이었으면 한다는 생각.
미키 반스와는 동일하지만, 서로는 같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미키 17과 미키 18을 두고 ’둘 중 죽어야 한다면, 누구의 죽음이 더 합당할까’를 놓고 저울질 하고 있었다.
누구의 관점에서, 누구의 맥락에서,
누구의 기억에 더 머물러 있었는가.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던 질문과 대답이었는데, 질문을 확장하면 확장할수록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졌다.
사실 나는 미키 7과 미키 8을 그렇게까지 구분짓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둘이 함께하면 안된다-는 프레임에 맞추려다보니, 둘 중 누군가에게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합당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소설에서 미키 반스의 (지구에 있었을 때) 직업은 ‘역사학자‘였다.
진화의 과정, 문명의 도래, 민족과 국가의 탄생, 수없이 반복된 전쟁...
지구의 모든 역사를 빠삭하게 인지했을 미키이기에, 그는 익스펜더블이 된다는 게 한편으로 어떤 역설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이 확장될수록 인류애를 떨어뜨렸던 역사적인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영화에서는 그 사건들을 굳이 대놓고 보여주지 않아도, 관객들이 감을 잡을 수 있게 여러 장치들을 추가해두었다.
우월한 유전자를 생산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힌 기득권층, 나샤의 이를 언급하며 입으로 로프를 물게 하는 것에도 모자라 (당연하게도) 크리퍼를 외계인이라고 착각하는 마인드까지.
사실 고백하자면, 나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크리퍼를 ‘적’이라고 정의하고 읽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름이 주는 어감 때문이었다. 크리피한 느낌.
그런데 뒤로 갈수록 이름은 둘째치고, 그들이 어떻게든 인간을 먼저 죽이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몰려왔다. 미키 7이 그들 덕분에 살 수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를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이 인간을 침략하면 큰일인데- 라는 생각에 빠질 찰나 영화 후반부, 나샤가 마셜의 면전에 대고 팩트폭행을 한 덕분에 클리셰처럼 떠올랐던 인간 vs 크리퍼의 대결구도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바보야. 크리퍼 입장에서는 우리가 외계인이겠지. 걔네가 외계인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결말은 소설보다는 영화를 더 마음에 들어했던 1인으로서, 익스펜더블의 운명에서 벗어난 미키반스가 이제는 사랑하는 이들과 늙어가는 삶을 함께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