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지팡이

찬란한 슬픔

노인과 지팡이


비틀린 고목의 뼈 한 마디에

저무는 생의 무게를 온전히 기댄다.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은 풍파를 견뎌온 낡은 훈장인가.

거친 숨은 마른 풀잎처럼 서걱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차갑게 식어가는 시간의 모서리를 밀어낸다.


푸르던 새벽이 눈가에 선한데

어느새 노을은 붉은 수의(壽衣)처럼 시린 등을 고요히 덮어온다.


어둠의 심연 저편에서 낮게 흔들리는 안식의 손짓,

“고단한 짐을 이제 그만 부려라”

바람의 목소리 귓가를 스쳐도

아직은, 이 찬란한 슬픔을 내려놓고 싶지 않다.


이 마른 가지 끝에 남은 그리움마저 다 타버리는 날,

그제야 비로소 지팡이를 꺾고 기꺼이 너라는 영원 속으로 쓰러지리라.


-------------에세이--------------

현장에서 어르신을 만날 때마다,

저는 “느림”을 새로 배웁니다.

젊을 때의 느림은 선택이었지만, 노년의 느림은 대개 몸이 먼저 결정합니다.

그 결정 앞에서 어르신들은 자주 미안해합니다. “내가 늦어서…” “내가 민폐라서…” 같은 말들이,

지팡이 끝처럼 바닥을 계속 두드립니다.


어느 날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어르신이 숨을 고르며 서 계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무심히 앞질러 갔고, 어르신의 눈은 바닥만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지팡이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지팡이는 체중을 받치는 막대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지탱하는 마지막 문장처럼 보였습니다.

손바닥의 굳은살은 “나는 여기까지 왔다”는 기록 같았고,

걸음마다 흔들리는 어깨는 “오늘도 버텼다”는 증명 같았습니다.


저는 노년을 ‘끝’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속도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느려진 걸음은 자주 삶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그 속도에 맞춰 잠깐만 기다려주면, 어르신들은 여전히 자존을 지키며 앞으로 갑니다.


그래서 이 시를 쓰며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늦는 사람을 재촉하지 말자.

느린 걸음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자. 지팡이의 속도는, 결국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속도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