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의 다른이름
전화는 벨이 울리기 전에 이미 마음을 두드린다.
“괜찮아.” 그 말이 가장 먼저 나오면 나는 안다.
괜찮지 않은 것이 말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수화기 너머 숨은 한 박자 늦게 도착하고
웃음은 한 박자 먼저 떠난다.
안부는 짧고 침묵은 길다.
전화 한 통은 정보가 아니라 존재 확인.
“살아 있어.” “여기 있어.” 그 말이 말 대신 울린다.
----------에세이------------
복지 현장에서 “전화 한 통만 해도 살겠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처음엔 과장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드려보면, 그 말이 왜 생명처럼 붙어 있는지 금방 알게 됩니다.
어느 날 한 어르신께 안부 전화를 드렸습니다.
대답은 짧았습니다.
“괜찮아.” 그리고 곧바로 덧붙이셨죠. “바쁘지? 끊어도 돼.” 그 짧은 문장 안엔 두 겹이 겹쳐 있었습니다.
‘나는 괜찮다’와 ‘너는 부담 갖지 마라.’ 어르신들의 배려는 자주 자기 마음을 뒤로 미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괜찮다’는 말이 때로 가장 큰 신호가 됩니다.
저는 일부러 질문을 하나 더 했습니다. “오늘은 뭐 하셨어요?” 그러자 목소리가 아주 조금 풀렸습니다.
“그냥 TV 좀 보고… 점심은 대충.” ‘대충’이 반복될수록 하루의 공백이 커진다는 걸, 저는 현장에서 여러 번 보았습니다.
식사와 물도 괜찮다, 아픈 데도 괜찮다, 외로운 것도 괜찮다…
그렇게 ‘괜찮다’가 늘어나면 정작 마음은 아무에게도 확인받지 못한 채 남습니다.
통화를 마치려는데 어르신이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네 목소리 들으니까 좀 낫다.” 그 한마디가 제 마음을 세게 건드렸습니다.
전화가 특별한 기술이라서가 아니라, 전화가 ‘누군가 나를 떠올렸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은 생각보다 큰 일입니다.
하루가 길어질수록, 침묵이 방을 채울수록,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더 귀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통화의 목표를 바꿨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급함보다 먼저, “오늘도 잘 버티셨어요”를 전하는 쪽으로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두세 마디면 충분합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오늘 날씨는 어땠어요?” “내일 또 전화드려도 될까요?”
이 글에 담긴 장면은
특정 개인이 드러나지 않도록 구성과 표현을 바꾸고,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덜어냈습니다.
그럼에도 남는 것은 하나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건 거창한 위로보다, 이름을 불러주는 한 번의 확인이라는 것.
오늘,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짧게라도 전화해 보세요.
“괜찮으세요?”보다 “지금 목소리 듣고 싶어서요.”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숨구멍이 되어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