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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희 Sep 08. 2015

인생의 어느 시기를 살고 있습니까?

머리말 : 책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

북 큐레이션의 시대, 당신은 인생의 어느 시기를 살고 있습니까?   


요즘처럼 스마트폰으로 영화도 보고 물건도 사고 친구와 이야기도 하고 은행 일도 보는 세상에 ‘누가 책을 볼까 그러니 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루에 여러 번 합니다. 제 직업 때문이겠지요.

전 도서관, 서점 등 책이 있는 공간에서 독자에게 책을 골라줍니다. 도서관 설립시 위치, 성격, 이용자 분석을 통해 분류법을 고안하고 책을 선정하는 일도 하지만 아주 드문 경우이고요 대개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책과 책 읽기에 관련된 강의를 합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매일 책을 읽으며 보낸 세월이 길어지다 보니 저절로 이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생겼다고 독서량이 줄지는 않습니다. 월드컵 시즌이 끝나도 조기축구회 사람들은 여전히 축구를 차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신문기사를 봐도 그렇고 제 집의 두 아들을 봐도 그렇고 책 대신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립니다. 독서량이 대폭 줄고 책 판매량이 사상 최악이라고 하는 말이 호들갑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서울 도서관이 주관하는 휴먼라이브러리에 사람책(북큐레이터)으로 선정된 후 지금까지 제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다름 아닌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거든요. 특히 요즘 더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책을 주로 읽으세요?” 하고 묻고 그와 비슷한 장르나 관련 주제에 관한 책을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원하는 답은 그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 보았지요.   


“무슨 일이신데요?”  

질문을 바꾸자 갑자기 그분들의 이야기도 길어졌습니다.   



“막둥이를 봐서 늦은 나이에 다시 육아를 시작했는데 동갑내기 남편은 은퇴에 관한 책을 보더라고요, 저 혼자 아이를 낳은 것 같고  첫아이 때와는 달라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세상이 바뀐 듯 한데 저만 옛날로 돌아간 듯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학교에 새로 전학을 온 아이가 있어요. 시골에서 살다 왔는데 우리 반의 아이들과 정서도 많이 다르고 학원도 다닌 적이 없어 교과진도도 많이 다르고 적응을 잘 못하는데 도와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럴 때 도움이 되는 책이 있을까요?”  

“인생의 B플랜을 준비 중인데요, 시골로 가고 싶은데 막상 가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귀농에 관한 책은 많이 나와 있는데 시골에 가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어떤 생활이 가능한지에 관한 책을 못 찾겠어요.”  

“며느리가 일을 해, 내 주변에는 집에 있는 며느리도 많더만 괜히 일 나가서 지 몸 힘들고 얘들은 눈칫밥 먹고 바쁘니깐 외식하고 돈은 더 많이 들어. 며느리를 집에 앉히고 싶은데 직장 다니지 않아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많다고 얘기해주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도서관에 이용자분들 와서 무슨 책을 읽으면 좋겠느냐고 물을 때 어떻게 답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괜히 알려주었다가 책이 맘에 안 들면 어떡하나 생각도 들고 안 알려주면 책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할까 두렵고 이래 저래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는 게 무서워요.”   

“조카가 고2인데 대학을 안 가겠다고 해요. 엄마 아빠는 난리 났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게임만 한다고 해요. 그나마 엄마가 책이라도 읽자고 했더니 그건 하겠다고 한다는데 어떤 책이 좋을까요? 어떻게 시작할까요?”  

책 문의인지 인생 상담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쉽게 답을 할 내용도 아닙니다. 간혹 길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대개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지라 속 시원하게 들어드리거나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기 일쑤입니다. 물음을 받고 답을 하지 못하는 세월이 길어지자 점점 제 안에서 질문이 커져갔습니다. 늦게 나마 답을 하려 합니다.   



인천의 계양도서관, 은평구립도서관 북큐레이터 양성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전국의 책방과 도서관에서 만난 분들이 ‘책을 잘 권해주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에 겁 없이 씁니다. 새로울 것도 없고 어려운 철학서도 아닙니다. 그저 “아 내가 이런 시기를 살고 있구나, 어떤 책들이 도움이 될까? 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떤 책을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 펴 읽으면 그만입니다. 처음부터 읽을 필요도 없고 그저 여기 저기 필요한 대목을 들춰봐도 충분할 것입니다.     


“어떤 책을 읽을까”는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까?”입니다. 책이 사람의 이야기니 말입니다. 삶을 찬찬히 돌아보고 살아온 날들에 대해, 함께 산 사람들에 대해 오래 오래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다른 이가 쓴 책을 읽지 않아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말하는 낮지만 분명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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