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의 사진과 함께 읽는 이야기
글과 사진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이야기.
미술관에는 그림도 있고 사진도 있다. 사진은 그림에 비하여 순간으로 대상을 표현한다. 다만 그 찰나를 포착하려면 기다려야 한다. 빛이 순간을 장악하고 사물의 영혼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순간, 셔트를 누른다. 해서, 사진은 빛에 기댄 예술이다. 반면에 빛은 또 사진 덕분에 살아남는다. 저물어가고 사라질 빛을 사각의 틀 안으로 부여잡아 영원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사진이기 때문이다.
미술관 옆 도서관 세 번째 이야기는 사진이 붙들어 맨 빛을 더듬어 사라져 버린 ‘기억’을 불러내고 그 덕분에 부활하는 ‘기록’을 읽고자 한다. 또한 수많은 빛들이 모여 장구한 역사가 되는 현장을 사진과 책이 각각의 장르에서 같은 주제로 변주한 장면들을 넘겨본다.
소금창고의 염부꾼〉 젤라틴 실버 프린트, 11 ×14인치, 2002년작. /한미 사진미술관 제공
2008년 송파구에 있는 한미 사진미술관에서 강운구의 사진전 ‘저녁에’(Embracing evening)가 열렸는데 그중 안면도 염전에서 촬영한 [소금창고의 염부꾼]을 주제로 한 세 컷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염부꾼이란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예전에,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고던 사람’이다. 지금이 아닌, 예전에. 그렇다, 염부꾼은 이제 옛사람이다. 물을 끓여 증발시킬 만큼 뜨거운 빛 아래에서 평생을 일하는 동안 그의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 흑백 사진에서 셔츠는 백이요 얼굴은 흑이다. 강운구는 같은 장면을 세 번 나누어 찍었다. 천장 높은 소금 창고를 찍은 후 늙은 인부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가 더 다가가 얼굴을 정면으로 크게 찍었다. 그의 얼굴은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다시 읽힌다. 또한 그의 알 듯 모를 듯 한 얼굴을 들여다 본 후 소금 창고는 전과 달리 읽힌다.
강운구가 카메라를 당겨 피사체에 다가가듯 책 4권을 함께 읽는다. 그런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을 흘려 보낸다. 이번엔 책을 내려 놓고 멀리서 풍경을 조망하듯 사진을 살핀다. 사진과 글이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을 어떻게 기록하는지, 기록으로 인간은 무엇을 하려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늠하는 시간이다.
사진출처 : 강운구의 [마을 삼부작] 중에서 수분리
함께 읽는 첫 번째 책 [마을 삼부작]은 강운구의 사진집이다. 강운구는 전통가옥을 촬영하고자 강원도 원성군 황골의 초가마을,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의 너와집 마을,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의 건새집을 찾았는데 지금은 이 세 마을이 모두 사라지고 사진으로만 남았다. 작가는 ‘시간과 겨루기에 슬프지 않은 것은 없다’고 했지만 마을은 시간 때문에 사라진 게 아니다. 개발과 근대화, 산업화 때문이다. 단지 집, 강, 오솔길, 산등성이만 사라진 게 아니다. 터전이 옮겨지자 집의 모습이 바뀌고 삶의 형태도 추구하는 가치도 달라졌다. 사람의 관계가 달라지고 자연과의 관계도 변했다. 강운구는 이를 두고 ‘나는 발견할 수 있었고 그들은 부수었다’고 했다. 염부꾼과 세 마을은 그저 옛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오랜 세월 구축한 문화가 있다. 편리하고 새로운 것에 밀려 서서히 사라지는 것과 부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단절이다. 사진은 이 단절과 상실을 처절하게 고발하는 동시에 애잔하게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