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비밀
글과 사진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이야기. -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이야기나무 2015]
미술관에는 그림도 있고 사진도 있다. 사진은 그림에 비하여 순간으로 대상을 표현한다. 다만 그 찰나를 포착하려면 기다려야 한다. 빛이 순간을 장악하고 사물의 영혼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순간, 셔트를 누른다. 해서, 사진은 빛에 기댄 예술이다. 반면에 빛은 또 사진 덕분에 살아남는다. 저물어가고 사라질 빛을 사각의 틀 안으로 부여잡아 영원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사진이기 때문이다.
미술관 옆 도서관 세 번째 이야기는 사진이 붙들어 맨 빛을 더듬어 사라져 버린 ‘기억’을 불러내고 그 덕분에 부활하는 ‘기록’을 읽고자 한다. 또한 수많은 빛들이 모여 장구한 역사가 되는 현장을 사진과 책이 각각의 장르에서 같은 주제로 변주한 장면들을 넘겨본다.
미술과 옆 도서관 네 번째 이야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과 기록”
강운구가 카메라를 당겨 피사체에 다가가듯 책 4권을 함께 읽는다. 그런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을 흘려 보낸다. 이번엔 책을 내려 놓고 멀리서 풍경을 조망하듯 사진을 살핀다. 사진과 글이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을 어떻게 기록하는지, 기록으로 인간은 무엇을 하려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늠하는 시간이다.
두 번째 함께 읽는 책은 [괴짜 탐정의 사건노트]
여러 세기를 통해 구축된 문화가 일시에 사라진 사회, 소통이 원할 할 리 없다. 함께하는 기억이 부족하다. 그저 개별적인 인간들이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결과물만 사라진 게 아니다. 공유기억이 우리 개인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 상실은 우리의 자아감을 파괴하며 나아가 과거와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는다. 세 마을의 주거형태가 각기 다른 까닭은 개별적인 자연조건에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그 곳에 알맞은 재료를 선택하고 집의 모양을 궁리한 결과물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저마다 처한 상황에서 살아남고자 배운 바를 공유하며 이를 토대로 기억을 전승시켜 문화를 구축했다. 전통문화의 소멸은 생존의 불능을 의미한다.
일본의 추리소설[괴짜 탐정의 사건노트]에는 전승의 기억이 없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를 사납게 말한다. 폭설로 유명한 일본의 어느 마을, 눈이 많이 내린 다음날 아침 대나무 밭에서 아이가 실종됐다. 사람들은 살인사건이라고 하지만 탐정은 자연재해란다. 탐정의 추리는 이랬다. 눈이 내리자 대나무가 눈에 무게를 못 이겨 휘어졌고 그 위로 또 눈이 쌓였다. 다음날 해가 나자 눈이 녹기 시작할 무렵 아이가 대나무 밭에 놀러 나왔다. 탄성으로 휘어져 있던 대나무가 제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 아이가 대나무를 밟았다. 활처럼 휘어졌다 다시 펴지는 대나무에 실려 아이는 건너편 계곡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탐정의 추리처럼 아이 시체가 대나무 숲 건너편 계곡에서 발견되었다. 예로부터 마을에는 눈이 많이 온 다음날 대나무밭에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이 나타나니 절대 대숲에 가지 말라는 전설이 있었다. 몸무게가 작은 아이들이 대나무와 함께 날아 오르기 십상이니 어른들은 무시무시한 괴물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 것이다. 도시가 개발되고 민담을 들려줄 이가 사라지자 사람이 죽었다. 문화는 공유기억이요 반드시 전승시켜야 할 생존임을 이보다 더 세게 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