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제가 2015년부터 멘토링을 하고 있는 소셜멘토링 잇다 플랫폼에서 작성한 답변을 소개합니다. 잇다 에서 주로 받는 질문은 진로탐색이나 취업 위주인데, 이번 질문자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고 디자인을 처음 접하고 더 자세히 알기 위한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디자인에 발을 담근지 오래되어버린 제가 비전공자에게 디자인을 쉽게 설명해보는 것이 의미있기도 했고, 저 또한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중간 점검을 하게 되는 좋은 경험이었어서 브런치에 멘티의 질문과제 답변을 편집하여 옮겨봅니다.
"김성미 멘토님 안녕하세요, 저는 XX대학교 심리학과에 재학중인 XXX라고 합니다!저는 이번 학기에 디자인과 관련된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분야였지만 듣다 보니 점점 이해가 되면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고, 궁금증도 함께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현직 디자이너분의 의견을 듣고 싶어 이렇게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전문적인 질문은 아니지만 답변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멘토님이 생각하시는 디자이너란 무엇인지, 그리고 좋은 디자이너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또한 디자이너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버(server)인지, 아니면 창작을 하는 제작자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교수님께서 디자인은 창작의 일종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서비스에 가깝다고 하셨는데, 이에 동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전적 정의보다도 현직자분의 생각이 궁금하여 이렇게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안녕하세요 XXX님 반갑습니다. 잇다에서 보통 들어본 질문과 달리 아주 신선하고 좋은 질문이라 인상깊었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UX디자인 분야에서도 심리학 전공 출신과 함께 일하다보니 더욱 반갑네요.질문에 하나씩 답변드려볼게요.
1.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디자이너는 여러 정의가 있지만, 저는 디자이너는 사람 중심의 문제를 해결하며, 이를 시각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연 설명을 하면 1) 디자인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향합니다. 디자인의 대상이 기업이 될 수도 있고 동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끝을 맺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입니다. 2) 디자이너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누군가의 어려움(needs, painpoint)을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여 돕고자 합니다. 의상디자이너는 입는 사람의 개성을 표현하는걸 돕고자 의상을 디자인하고, 영상디자이너는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영상을 디자인합니다. 3) 디자이너는 시각적인 요소를 사용합니다. 법조인은 법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기술자는 진보된 기술과 기기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합니다. 디자이너의 표현방법은 시각물(포스터, 스케치, 그래프, 폰트, 사진) 뿐만아니라 프로토타입(모형, 샘플)으로 무형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문제를 해결합니다.
2.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좋은 디자인은 문제를 겪는 타깃에 공감하는 것, 문제를 명확히 인지하는 것, 그리고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깃에 공감하지 못하면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없습니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휠체어 비탈길을 설치했는데, 정작 너무 가파라서 위험하거나 회전할 수 없어 결국 사용하지 않게되는 것 같은 예시가 타깃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 디자인입니다. 이런 문제를 위해 디자이너들은 직접 사용자가 되어 체험해보거나 사용자를 긴밀히 관찰하는 방법 등을 사용합니다. (User Research)
문제를 명확히 인지하지 않으면 엉뚱한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물부족국가에서 여성들이 물을 길러 2시간씩 걸어서 물을 길러오는걸 보고 수도시설을 설치했는데, 잘 이용하지 않아서 알고보니 물길러가는 시간은 며느리들의 유일한 휴식시간이었죠.
종합적인 사고(systems thinking)을 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단편적이게 됩니다. 평소 잘 쓰이지 않는 개인차량을 활용하여 라이드를 제공하는 우버라는 서비스가 나왔는데, 택시기사들의 반발로 여러 국가에서 잘 자리잡지 못했었죠. 이는 운송기기에 대한 종합적인 맥락과 이해관계자에 대한 종합적 고려가 부족했던 사례입니다.
3. 디자이너는 서비스제공자인가 창작자인가
제가 미술대학에 있을 때 가장 크게 느낀 차이점입니다. 순수예술(회화,공예, 조각 등)과 디자인을 가장 단순하게 비교하면,순수예술은 작가의 의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작가의 창의성,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잘 담겨서 대중에게 전달되었다면 그건 잘된 작품입니다. 작품을 전할 특정 대상이 정해져있기도 하지만 크게 중요하지않습니다. 반면 디자인은 디자이너 개인의 작품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디자인된 결과물을 사용할 사용자나 타깃이 만족했는지, 문제가 해결되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자의 마인드로 디자인을 하면 타깃에 대한 공감과 문제해결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예쁘고 감각적인 웹사이트를 만들었더라도 사이트 방문자가 이용에 불편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죠.
창작능력을 발휘하여 작품성을 인정받는 디자이너들이 있습니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 시각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산업디자이너 카림 라시드 같은 디자이너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그 스타일을 디자인에 잘 녹여내었습니다.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전통적 영역의 디자인 분야(패션, 제품, 시각, 건축, 영상 등)에서 주로 가능합니다.
최근에 생긴 디자인 영역(UX, 리서치, 전략, 디자인씽킹 등)에서는 디자이너들의 예술적 창의성보다는 문제해결능력에서의 창의성을 더 요구합니다. 사용자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종합적인 사고를 하며 문제해결을 위한 연결고리를 찾아냅니다. 다른 분야에서의 해결방식을 여기에 대입해본다거나, 먼 단서를 찾아 문제로 연결시킵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셨나요? 우영우가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는 중 고래가 찾아오며 영감을 얻고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문제해결에서의 창의성과 비슷합니다. 우영우는 천재성으로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만, 디자이너가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방법은 인류학적 조사기법, 사람에 대한 공감, 디자인씽킹, 시스템씽킹과 같은 스킬을 사용할 수 있고, 해결은 디자인으로 합니다. 문제해결의 결과물은 서비스일 수도 있고, 제품일 수도 있고, 인쇄물일 수도 있습니다.
답변이 되었을까요? 디자인에 더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또 질문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그 동안 답변했던 글 중 일부는 공개콘텐츠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 https://www.itdaa.net/mentors/12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