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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얼굴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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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식 Sep 16. 2024

다시 피어나는 불꽃


7 :  다시 피어나는 불꽃  -- 


그녀가 점점 잊혀갈 무렵  친구가 날 불렀다.  

수진이가 날 만나자고 연락해달라고  했다 한다. 


졸업을 위해 한참 시험공부와 작품전시회로 바쁘게 보내고 있을 때였다. 

학교로 찾아오겠다고 한다.  


학교 앞  호프집에서 만났다. 그녀의 얼굴은 아직 대학생 때 보다 원숙해지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서로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술잔만 들이켰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도 오래 헤어져 있으면 

낯설어지는가 보다.


날 만나자고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대로 모르는 사람 들처럼 그렇게 헤어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녀가 먼저 내게 말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응 바쁘게 지냈지. 직장생활은 재미있어? 잠시 대화가 다시 멈춘다. 


그렇게 참고 억누르며 지낸 세월들이 쌓이고 모아져서 이제는 속에 들어있는 깊은 사랑의 감정들까지도 감출 수 있게 되었나 보다.


할 수만 있면 는 두  감추며 고 었다.  어차피 동성동본이라 결혼할 수도 없는 처지 아닌가.


마음속의 추억으로만 간직하려고 했다. 그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알고 싶었던 게 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어차피 우린 결혼할 수도 없는데 우리 만남이 무슨 소용이야!”


이젠 잊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아픈 사랑은 하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거라고 한다. 

그래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아마 수진이가 나를 찾아온 것은 그래도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다른 사람과 정식으로 사귀기 전 그래도 묻고 싶은 어떤 게 있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만나 오면서 정도 들고 사랑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냥 모른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른 사람을 사귀기에는  마음이 허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현실이 더 가까이 있다,

아! 그래서 나를 멀리 했구나! 사랑에만 눈이 어두운 나보다는 더 현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와 달리 여자는 결혼 적정한 나이가 있고 집안에서도 압력이 있기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래도 난 수진이만 괜찮다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서라도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었다.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 가정을 갖지 못한다 하더라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우리 도망가서 살래?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면 어떨까? 


그 순간 나에게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동성동본도 없고 결혼해서 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의중을 물어보려고 말을 꺼냈다. 


“ 미국 가면 결혼해서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 미국에 함께 갈까? 

먼저 유학 가서 초청할게!


술이 들어가서인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체 , 그냥 말이 나갔다. 

그녀도 에 했는지 두서없이 물었다.   그게 가능한 거야?  


미국 가면 결혼해서 께 살 수 있는 거야? 고 묻는다 


응 , 미국에서 입학허가서 받고 학교 다니면서 학생신분으로 초청하면 된데 --.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미소를 띠며   화색이 도는 것을 느꼈다.  그게 가능할까?  

 

어떤 방법이 있는지 없는지 보다도 내가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다. 


근데 세진 씨! 왜 저번 제대 후에 집에 찾아갔을 때 모른 체했어?  

난 기대하고 찾아갔거든!


집에  찾아갔을 때 만나려고  나오지 않아서 이제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어! 이젠 모든 것을 포기했다

고 생각했어!

 

아니 그렇게 오래 만나고서도 나의 마음을 모르다니 너무 서운 했다.  

그녀가 돌아가는 길을 눈을 뗄 수 없어 바라다보는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하겠지! 

골목 아래 끝까지 네가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너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도 알지 못하겠지!.  

 

나가서 부르고 싶었. 나가서 보고 싶었다.  나는 그녀를 잊지 못했다. 아니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온 젊음을 그녀에게 바쳤기 때문이다.




나의 청춘, 젊음을 그녀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쁨도 아픔도 시련도 좌절도 모두 그녀와 함께한 세월들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내 어깨에  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그동안의 멀어졌던 간격이 한순간에 다 풀어지는 것 같았다. 


꺼져 던 불씨가 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유학 가는 게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활비도 있어야 하고 등록금 등

토플점수 도 잘 나와야 하고 입학 허가도 받아야 한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리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나지 않다.  


아마 술에 취한 것도 한 가지 이유이다. 

 

어깨에 기댄 채 물었다. 너 나 배반하지 않을 거지?  나 버리지 않을 거지? 정말이지? 

그녀의 어깨를 꽉 껴안은 채로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와 함께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 : 오늘 늦었는데 저녁 부산 내려갈 거야 아님 언니 집으로 갈래? 

수진  : 아니 아무 데도 안 갈 거야! 너랑 함께 있을 거야!

니 :아무래도 너 취한 것 같아. 다음에 맨 정신으로 만나자. 

수진 : 아니 난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아.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나쁜 넘.


택시를 불러서 언니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아무래도 술김에 말한 것 같아서 맨 정신일 때 대답을 듣고 싶었다. 


며칠 후  다시 만나서 나의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졸업 후에 회사에 취직해서 먼저 유학 갈 돈을 마련 한 다음,  유학 갈 준비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매주 주말이면 서울로 와 나를 만났다. 

졸업과 취직 준비로 바쁜 나는 지방으로 내려갈 시간이 없는 나를 배려한 것이다. 


아직은 돈이 없었기에 그녀가 모든 데이트 비용을 감당했다. 

현실은 암담했지만  만나는 동안은 행복했다.

옛날로 다시 돌아간듯했다. 




졸업을 앞둔 시기에 대기업 직원 모집 시험이 있었다.

3번에 걸친 심사 끝에 다행히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모든 선남선녀들이 회사 안에 모여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상무이사님이 나를 불렀다. 

“자네 혹시 선 한번 볼 텐가. 예쁜 조카가 있는데! 


거절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냥 만날까 , 만나고 나서 거절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으나  지금 거절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아~ 예! 저는 부모님들이 어릴 적부터 점지해 둔 처자가 있습니다. 배반하면 집안싸움 납니다. ㅎㅎㅎ

무사히 부모 핑계를 대고 모면할 수 있었다. 


아마 이루어졌다면 승진이 빨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데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어느 날 같은  회사의 사장님 비서가 쪽지를 주고 간다. 한번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입사 안내할 때 한번 본 적이 있는지라. 반갑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녀가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토플 준비에 더 바빴다. 사람들은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았다. 


똑똑하고 열성적이고 여성에게 눈길조차도 주지 않는 내가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런 나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보는 여사원들도 있었다. 


괜히 앞에서는 상냥한 듯 말하면서는 뒤로는 뒷담화 하는 여사원 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2년이 다 되어갈 즈음   이제 어느 정도 자금도 만들고 토플도 치르고 미국 엘에이에 있는 대학의  

입학 허가서도 받았다.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토요일 오후 부산 터미널에 도착하니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매주 토요일 한 번은 부산, 한 번은 서울 터미널에서 만나서 주말을 함께 보내고 일요일 저녁 

헤어질 무렵이면 아쉬움이 남아 다음 주말을 기다리고는  했다.


연휴가 겹칠 때는 산에 등반을 가기도 했다.




우리의 밝은  앞날이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 우리의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드디어 미국에 가야 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회사도 그만두고 미국 갈 준비만 하고 있었다. 


미국을 가기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수 있고 행운의 여신이 다가올 거라 믿고 있었다. 

미지의 세게로 향하는 마음은  두려움 도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하고 그동안 수진이와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

다는 것도 두려웠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학비 문제였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자마자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어디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여러 가지 걱정 들로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우린 함께 밤을 새우며 마음 한편에서는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서로를 위로해주었다.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미래를 바라보며 

심란한 마음을 뒤에 두고 있었다.


서로를 믿지만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것  ,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 만하는 우리

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날밤 우린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뜨거운 밤을 보냈다. 서로를  놓칠 것 같아 꿈에서

도 껴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 


잘 있어!. 잘 가!라는 말로 서로를 떠나보내지만 믿을 수 있는 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약속뿐이었다. 

 

서로를 연결해주고 있는 사랑의 끈 이외엔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이제는 떠나야 한다. 

공항의 날씨는 우리의 미래를 보듯이 을씨년스러웠다.

먹구름이 가뜩 낀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짐을 체크인하고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웃으며 나를 배웅하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불안한  그 얼굴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비행기 트랙에 올라갔다.


자리에 앉은 후 공항 쪽을 바라보았다. 흐린 날씨가 더욱  어두워졌다.

우리의 앞날을 예고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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