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얼굴 0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식 Sep 10. 2024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동성동본


6: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우린 동성동본


그렇게 우리의 가을은 지나갔다. 그녀는   도서관에도 나오지 않았다.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다.

위로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로 위로가 될지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나도 힘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싫었다.  학교 안에 있는  명곡 감상실로 갔다.

 

가끔 이 음악 감상실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잠을 자고는  했다.

 등높은 의자에 푹신한 소파에 앉으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곤했다.

보통은  4-5 곡 정도 들으면 잠이  들지만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수진이와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녀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14번 을 듣고 있을 즈음 옆자리에 누가 앉는 소리가 들렸다.


수진이였다. 내가 도서관에서 보이지 않으니 내가 올만한 장소를 찿아다녔다고 한다.


나 : 수진아 미안해!

수진 : 미안해하지 마! 내가 좋아서 그런 건데 뭐!


나 :  너를 너무 보고 싶고  그래.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수진: 이제 그만 만나면 안 될까?


나 : 난 너뿐이야. 난 너 없으면 못 살 거 같아. 근데 어떻게 헤어져!


그녀는  나를 조용히 바라보더니 그녀의 가녀린 팔로 나를 껴안았다.  


그러면서 우리가 동성동본인 것은 아느냐 물었다.


나는 밀양박씨인데 수진이 너도 박 씨 ,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거였다.

 동성동본은 결혼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동사무소에 가서 알아보았더니 호적 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혼인 관계가 안되니 아이들도 호적에 올릴수없다는설명과함께---


아니 한국에 김, 이, 박, 씨 빼면 얼마나 되겠느냐고 물어보았지만 그것이 법이라고 하는

대답만 돌아왔다.


동거동본에다 아직 군대도 안 갔다 온 학생인데 어떻게 믿고 살 수 있을까?

나 스스로 능력 없음에 암담한 마음이었다.

.

사방이 다 벽으로 나를 둘러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이후  그녀는 일부러 나를  만나는 것을 피 하는 것 같았다.

나를 위해서도 그게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  많은 마음고생을 한 것 같다.


어느 날  도서관에 들려 편지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말로 하기가 너무 힘들었던 가보다.


세진 씨,  세진 씨를 정말 사랑했어요. 그동안 너무 행복했어

그런데  우리 이제 그만 마음 아픈 사랑은 그만하기로 해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길 바라. ---




얼마 후  입영 통지서를 받았다.  대한민국남자 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입영 하라는

통지서였다.


수진 이에게 연락하려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학교 의상과 앞에서 기다려보았으나

만날 수 없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단지 추억뿐. 축제날 빨간색 자동차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 있었다.

사진을 보며 수진을 생각했다.


그 사진을 보며 웃고 있는 수진이 모습이 너무 아련하고 예뻤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논산으로 갔다.

이제 2년 4개월간 군대 생활을 해야 했다.

힘든 신병 훈련소에서  그녀의 사진을 보며  힘든 생활을 이겨내고 있었다.


훈련소 마지막날 파티가 있었다.

사회에서 가수를 했다는 친구가 나와 노래를 불렀다.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너무 구슬프게 부르는 노랫소리에 모두들 눈물을 흘린다.


정말 그랬다. 그동안 그녀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훈련소의 어려움을 버텨낸 것을 생각하며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2달 후 자대 배치를 받았다. 전방에 위치한 야전 공병단이었다.


6개월 후 그녀가 전방에 있는 나를 보기 위해  면회를 왔다. 너무 반가웠다. 먼 길이라 자주 오라고도

할 수 없었다.

이제 1년 후부터는 외박 나갈 수 있으니 내가 찾아가겠다고 하였다.


그 후 휴가를 받아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갔지만 그녀는 나를 피하는 눈치였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 상냥하게 대하지만 진심이 보이지 않았다.

많이 변해버린 것 같았다.



현실을 바라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군대 제대하려면 아직 1년, 대학졸업하려면

다시 2년, 적어도 3 년  졸업한다 하더라도, 우린  호적도 올릴 수 없는 동성동본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보고 싶었다고 날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건 나의 욕심일 뿐이었다. 그 후로도 어찌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그녀의 행동에도 이해도 되었지만 섭섭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현실을 잊어보려는 수진이의 몸부림 아니었을까?


미안한 마음에 돌아서고야 말았다. 그녀도 더 이상 면회를 오지 않았다.

이제 병장을 달고  제대 전 마지막  휴가를 받았다. 다시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졸업을 해서 부산에 내려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나를 반겼지만 예전 같지는 않았다.  회사 생활 할만해?

 응 재미있어.!  이젠 회사에 남자들도 많은데 다른 남자도 한번 만나고 해 보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응! 그렇게 해보려고!  서로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도 했다. 몇 번 만났다고도 한다.


 누군지 알고 싶었다. 치과 의사라고 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이미 마음이

 떠난 것 같았다.  직업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나는 너무 작고 초라해 보였다.


나를 기다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제대를 하고 집에서 복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부천에 있는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어머니가 그녀를 반겼다. 예전에  친구로 몇 번 집에 찾아온 적이 있어 어머니라고

부르며  반가워했다.


난 그녀에게 너무 서운 했다. 군대에 있을 동안 면회도 오지 않았던 그녀가 서운 했다.


휴가를 나와있을 동안에도 멀리 하려고 했던 것도 서운 했다.  

아마 내가 군대가 있는 동안 새로운 애인이 생겨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난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가서 보고 싶었지만 웬일인지 자존심인지

나갈 수가 없었다.


군에 있을 때 멀리 하려고 했던 그녀를 생각하면서 화가 나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나오지 않자 그녀가 돌아가는 인기척이 났다.

너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가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돌아가는 그녀를 창문으로 내다보았다. 내려가는 길목의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부르지 못했다.

후에 부르지 못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러 우린 이루어질 수 

 사랑우리슬프하지이제는 견디참아내야 만 다. 

잊을 수 있을까?


군대 생활 하면서 결심을 한 게 있었다. 이제 그녀도 잊고 공부에만 전념하자고

다짐했다.

복학한 후에 매일 도서관에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애써 잊어보려고 수진이 연락다. 

이전 05화 불타는 정열 그 이후 남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