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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래 Sep 26. 2019

내가 운전하지 않는 이유

전지적 초보 시점 : 도전하지 않는 삶에 대한 변명


나는 6년 무사고 경력의 운전자다.


문제는 6년간 운전을 세 번밖에 안 했다는 것이다.


처음 면허를 딸 때부터 초보 운전자의 호기로움 같은 건 없었다. 소위 말하는 '물면허' 취득이 가능했던 2013년, 기능시험코스는 '50미터 전진 후 좌회전 한 번'이 전부였지만, 나는 이 기능 시험을 심지어 한 번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유는 '(황색 실선)을 밟아서'.


방학시즌이었던 2월의 도봉면허시험장의 대기실에는 스무 살 언저리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약 50명 정도의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시험 대기실에서 난로를 쬐며 숨죽여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1번 수험자인 나의 첫 탈락의 모든 서사를 창문 너머로 지켜보았다.


 용감하게 핸들을 꺾어 좌회전을 하려는 순간, 나의 노란 엑센트는 장렬하게 왼쪽 금을 밟았고, 금을 밟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탈락 안내 멘트와 함께 삐용삐용 요란한 사이렌이 울렸다. 그렇게 나의 첫 기능시험은 2시간 같은 20초 만에 끝났다. 감독관이 올 때까지 내리지 못하고 차에서 기다리며 2번 수험자였던 동생이 짓고 있을 신난 표정을 상상했고, 그냥 차를 타고 집으로 가버릴까 생각했다. 당당하게 수험증에 합격도장을 받은 동생과 집에 걸어오며, 운전은 나의 길이 아닌가? 의심했다.


 행히도 심기일전하여 그 다음 주에 기능시험에 합격했고, 네 번의 도로주행을 나갔다. '아니 정말 이 상태로 도로에 나가도 된다고?' 싶을 정도의 연습을 마치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실전에 몸을 맡겼다만, 생각보다 서울시민운전자 분들은 친절했고, 나이가 지긋하신 강사님은 참을성이 뛰어났다. 100미터 앞에서 우회전하라는 말에 "여기서요?", "여기서요?"를 10미터마다 외쳤지만 "아니요 다음이요~", "아니요 다음이요~"라고 10미터마다 평정심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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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계속됐다. 네 번의 도로주행으로 A, B, C, D  코스를 한 번씩 주행하고 나서 그중의 한 코스를 '외워서' 시험 봐야 했고, 어떤 코스가 나올지는 랜덤이었다는 것이다. 내비게이션도 없고, 음성안내에 의지해서 코스를 완주해야 했다. 영화관에서 화장실 가려고 비상구로 잠깐 나왔다가도 다시 내가 나온 영화관을 못 찾아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방향치이자 길치인 나는, 그때 운전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마음을 의심을 확신으로 바꿨던 것 같다.


그래도 시작한 이상 포기할 순 없었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100번 시험 봐서 면허 취득한 여든 살 할머니가 갑자기 존경스러워졌고, 나는 고작 스물다섯이므로 나는 할 수 있고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스를 외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 같은 길치들을 위해 면허학원에는 각각의 코스 주행영상을 동영상으로 찍은 파일이 있었고, 나는 컴퓨터로 파일을 재생하고, 에이포 용지를 앞에 두고 "좌회전하다가, 하나 컴퓨터학원 건물이 오른쪽에 보이면 오른쪽으로 차선 변경, 다음 신호등에서 우회전, 신호 두 번 받을 때까지 직진하다가 kt 건물이 보이면 다시 왼쪽 깜빡이 켜고 차선 변경" 같은 메모를 하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돌렸다.

 

결과는 놀랍게도(?) 합격었다.


다행히 네 개의 코스 중 제일 쉬웠던 코스(직진 후 한 번 유턴, 다시 직진)가 출제되었다. 중간에 와이퍼 대신 방향등을 켰고, 도착해서 사이드 브레이크 잠그는 것을 까먹고 멀뚱멀뚱 감독관님을 바라봐서 약간의 감점이 있었지만, 기능 시험의 탈락 순간이 떠오르며 쾌재를 불렀다 오예 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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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집을 때마다 무지개색으로 반짝반짝 거리는 면허를 손에 쥐게 되고 나서도, 나는 섣불리 도로로 나지 못했다. 100명 중에 1명이 떨어진다는 기능시험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는 사실이, 도로주행 또한 매일 다니는 길도 몰라서 공부까지 해서 외워서 겨우 통과했다는 사실이 내가 이 면허를 가질만한 자격이 있을까? 끝없이 고민하게 했다. 고민하면 할수록 내가 다칠 가능성보다, 내가 누군가를 다치게 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이 두려운 이유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그것은 나도 믿지 못하는 나의 판단력과 순발력으로 인해 도로질서가 엉망이 되고, 사고를 일으키고, 상대방을 다치게 해서 책임져야 할 상황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킹으로 전재산을 털리는 것과 주식으로 전 재산을 날리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비극이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후자다. 내 선택으로 말미암지 않은 비극에 대해선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고, 원망할 대상이 있고, 구제의 희망이 있으나 내 선택으로 인한 비극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기 때문이다. 선택에 대한 책임, 책임에 대한 의무를 다하며  살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종종 선택은 틀렸고 그에 대한 책임은 점점 버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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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될수록  보수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유는, 가진 것을 지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잃었을 때의 책임도 오롯이 본인이 져야 한다는  또한 마찬가지. 돌부리에 넘어졌을 때 일으켜 줄 엄마도, 시험문제를 틀리면 정답을 가르쳐줄 선생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많은 어른들은 돌부리가 없는 흙길을 걸어가고, 틀릴 가능성이 은 매 쉬운 문제를 푼다.   

 

입사 일 년 만에 퇴사를 결정한 지인이 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결혼만 하지 않았어도 한 달만에 그만뒀을 것이라 했다. 한 달이면 끝났을 결정을 일 년이나 망설이게 하는 것. 도전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릴 것들의 소중함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어른다운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입사 초기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할 수 있는 재밌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으나, 햇수로 7년 차에 접어든 이제는 '어떻게 회사를 재밌게 오래 다닐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한 번의 거름 없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반으로 줄거나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평범한 어른의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가진 것들에 대한 만족과 오직 그것을 지키기 위한 방법에 대한 고민. 그 무한한 사이클에 갇혀버린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도전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왔고, '네 꿈에 너를 맡겨!' '세상에 너를 소리쳐!'와 같은 청춘 낭만이 가득한 포스터를 보고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하다못해 운전을 하는 데에도 수만 가지 걱정에 가로 잡혀 무엇하나 쉽게 시작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 많은 도전을 하며 살아왔 지난날의 내가 점점 생경하게 느껴지고, 운전조차 시작하지 못하는 오늘의 내가 남은 날의 모든 나를 통틀어 가장 도전적인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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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살 때인가 일곱 살 때인가, 아빠가 나보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았을 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근데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떡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빠는 비행기를 타다가 죽을 확률보다 차를 타다가 죽을 확률이 더 높다며, 너는 왜 그렇게 겁이 많냐며 답답해했다고 하고, 엄마는 왜 우리 애 기를 죽이고 그러냐며 다퉜다고 한다. 아빠는 비행기는커녕, 자동차 운전조차 못하는 지금의 나를 훨씬 더 답답해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시절 아빠 말대로 자동차를 타다가 (그래서는 안되지만) 죽거나 누군가를 죽일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전에 성공했다!'와 같은 훈훈한 결말로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 날이 올까? 운전을 못하면 생활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버려서, 필요가 염려를 이기는 순간이 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극복될 문제라고 생각하기로 다. 내 인생의 대부분의 결정들은 최후의 최후의 순간까지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이루어졌고, 미루고 미루는 순간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걱정과 고민, 그리고 최악을 가정하고 대비하는 버릇 덕분에 큰 후회 없이 마무리된 경우가 많았으므로, 이번에도 섣불리 도전하지 않는 내가 쿨 해 보이고 멋져 보이지 않다는 이유로 도전하지는 않기로 음 먹는다.


 하지만, 적어도 신중한 고민 끝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줄 아는 어른이고 싶다. 필요가 염려를 이겨 운전대를 잡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나의 선천적인 결함(제로에 수렴하는 방향감각과 공간, 거리 지각 능력 등)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숱한 연습주행을 마친 이후일 것이다. 도로주행 시험을 보기 위해 영상을 수없이 돌려보며 길을 외우고, 차가 없는 구간에서 차선을 변경하기 위해 근처의 건물을 외웠던 그때만큼, 아니 그 보다 더 걱정하고, 염려하고, 공부할 것이다. 임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방어적이고 안전한 운전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다행히 몇 해 전, 도로교통법이 개정되어 기능시험이 다시 예전 수준으로 어려워졌다. 주행거리는 50미터에서 300미터로 늘어나고, 경사로, 직각주차, 가속, 좌우회전 교차로 추가 등 7개의 항목이 늘어났다고 한다. 적어도 카트라이더 하는 마음으로 첫 도로주행을 나가지 않으려면, 그 정도 사전검증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난이도의 기능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면 (있었을까?) 지금쯤 자신감 있는 드라이버가 되어있지 않을까? (아닐 것 같다) 어쨌거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스스로를 너무 믿어서 조금 덜 믿어야 할 것 같은 사람에게도 꼭 필요했던 조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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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운전 안 해?"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무서워서"라고 대답한다. 이 글이 거의 바로 뒤이어 이어지는 "뭐가 무섭냐?"는 그들의 두 번째로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었기를 바란다. 변명에 그치는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고,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는 다짐에 그칠 수도 있다만, 그저 오늘은 운전하지 못하는, 아니 운전하지 않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운전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고. 내게 모든 도전은 정도의 차이일 뿐, 두려움 그 자체라고. 다만, 모든 망설임에는 나름의 이유와 고민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태워줘서 늘 고맙다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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