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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래 Dec 03. 2018

우리는 다시 그 곳에 갈 수 있을까?

이상하고 아름다운 로마에서의 하루


스위스에서의 하루를 제외하곤 내리 비가 왔다.


여행을 못가는 이유는 대학생때는 돈이 없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시간이 없어서라고 했던가. 왜인지 돈도 없고, 시간은 더 없는 직장인에게 더더욱 황금같은 5월 연휴, 회사에서 눈칫밥 먹어가며 귀이한 시간 내서 겨우 밟은 유럽땅인데, 야속하게 날은 춥고 비는 계속 내렸다.


무슨 부르크 바르크 뮈르크로 끝나는 독일의 소도시들은 스산하고 무섭기까지 했다. 숙소가 있는 뮌헨행 기차를 기다리며 오들오들 떨며 소시지를 먹고, 난방이 잘 되는 기차에서는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시고 기절할만큼 피로에 지쳐가던 중이었다.


앞으로 50년정도 회고해야하는 소중한 여행을 오한과 소시지만으로 가득 채울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른 저녁 숙소로 돌아와서 야후날씨 앱을 켜고, 근교 도시 중 날씨가 맑은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 군데가 눈에 들어왔다.


'로마'


그렇게 우리는 열심히 세워놓았던 남은 계획을 뒤로하고, 꽤나 고급이었던 숙소에 캐리어를 숙박시키고, 망치가방에 이틀치 짐만 챙겨서 로마로 향했다. 예정에 없던 비행기와 숙소를 끊었다. 유심카드도 없고, 계획도 없었지만, 왜인지 묘하게 이렇게 해야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33년동안 계획과 계획과 계획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던 남편의 동공은 무척이나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맞는걸까? 거의 길거리에 버리는 돈이 둘이 합해 백만원은 될텐데? 가서는 어떡해? 이탈리아는 네이버가 되나? 로마는 유로를 쓰나?' 눈망울은 적어도 수십가지 질문들로 가득했고 사실 나역시 당당하게 '걱정마 나만 믿어! 내가 가봤는데 (7년전에) 다닐만했어!'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무모하게 시작한 로마에서의 하루는 이상했지만, 아니 이상하게도 완벽했다.


기대했던 따스한 햇살과 '유럽유럽'한 분위기, 처음으로 꺼내입은 하늘하늘 봄 가디건, 가는곳마다 눈물을 흘리며 먹었던 피자와 젤라또, 입이 떡 벌어지는 유적. 물론 좋았다.


러나 더욱 이 난데없는 여정을 완벽하게 만든 건,


이렇게 온 이상 뽕을 뽑아야한다며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돌아다니다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훔쳐 신은 남편의 양말,

뜨거운 초여름날씨에 더 뜨거운 커피를 시켜놓고 발바닥을 주무르며 꾸벅꾸벅 졸았던 노천카페,

유난히 맛있던 콜로세움 앞 자판기의 미국 콜라,

넋놓고 와인을 마시다 기차를  놓칠 뻔 해서 전속력으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경보했던 어느 돌길,

별안간 숙소비 5만원이 아깝다고 6시간을 공항 노숙을 불사했던 알 수 없는 패기 때문이었다. 그 이상하고 불편했지만 완벽하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 때문이었다.


우리는 다시 그 곳에 갈 수 있을까?


아마 또 언젠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22살 베낭을 메고 혼자 그 곳에 처음 갔던 나는 트레비분수에 동전을 던졌고, 그 덕분인지 29살에 다시 그곳에 갈 수 있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인생의 짝궁과 함께. 이번에도 동전을 있는 힘껏 던지고 왔으니 또 모를 일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한다. 
리는 다시 그 곳에 갈 수 있을지 몰라도, 모든 상황이 그곳을 가르키기에 그 곳에 닿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


하필 여행 내내 날씨는 좋지 않았고, 귀국까지는 이틀정도가 남아있었으며, 로마로 가는 직항이 있었고, 그 날의 야후날씨는 '내일 로마가 맑을 것이니라'라고 말해주던 그런 상황.


꽉 차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은 하루밖에 남지 않아서 최선을 다해 모든 풍경과 순간을 눈에 꾹꾹 눌러 담을 수 밖에 없었고, 그 곳을 다시 찾을 확률보다는 그렇지 못할 확률이 더 높은 상황에서 처절함에 가까웠던 간절함. 그리고 그 간절함이 만들어낸 우스꽝스럽고 바보같지만 더없이 유쾌한 선택과 그로 인해 얻게된 농도 짙은 추억들.


물론 여행내내 날씨가 완벽했다면 더욱 완벽한 여행으로 기억되었을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이 제법 있다.

러나, 흩어져가는 시간을 손에 잡을 수 있을 것처럼 온 몸의 감각을 곤두세워, 우리가 지금 여기있을 수 있음에 눈물나게 감사했던 그 날 하루가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오늘처럼 물에 젖은 솜처럼 추욱 가라앉는 날, 어제 세상을 떠난 이가 그토록 바라던 하루였으리라는 명언보다도 나를 다시 일으키는 건, 또 언젠가 내가 그렇게 마주할지도 모르는 그런 행운에 대한 기대인지도 모르겠다. 로마의 햇살같은 날이 살다보면 하루쯤 더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 햇살을 받으러 가려면 내 마음도 몸도 바로 세워 놓아야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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