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래 Mar 18. 2021

내 두 손 안의 금붕어

어른의 전유물

  어린 시절 화장실 문 너머로 본 엄마 아빠는 늘 두 손 가득 물을 받아 그 물로 어푸어푸 세수를 하곤 했다. 나는 아무리 두 손을 모아 물을 받으려 해도 손이 작아 도무지 물이 담아지지 않았다. 개미 눈물만큼 모인 그 물마저 야무지게 모으는 힘도 없어서 손과 손 사이, 손가락 사이로 쪼르륵 빠져나가곤 했다. 그러니까 물을 모아서 세수를 하는 게 아니라, 손에 묻어있는 물로 세수를 한 셈이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몸이 자라면서 손도 커지고, 손가락끼리 모으는 힘도 강해진 나는 엄마 아빠처럼 두 손 가득 물을 담아 세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던 커피를 처음 마셔보았을 때보다 두 손에 물을 5초 이상 담고 있을 수 있게 된 순간이 더 생생하게 기억난다.


출처 : MBC 드라마 파스타

 드라마 ‘파스타’에서 두 주인공은 실수로 봉지째 길바닥에 떨어트린 관상용 금붕어를 살리면서 처음 만난다. 공효진은 두 손을 모으고, 이선균은 공효진의 두 손에 생숫물과 금붕어를 담는다. 손 사이로 물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그래서 금붕어가 숨을 잃지 않도록 둘은 노심초사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덕분에 금붕어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뻐끔뻐끔 잘 살아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금붕어 하나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좀비 같은 표정으로 월급을 모아, 일 년에 한두 번 그것을 탕진하며 버티는 것이 어른의 삶의 전부라면 조금 서글프지 않겠는가. 어쨌든 두 손으로 금붕어 한 마리는 내가 살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아는 것도, 기꺼이 금붕어를 살리기 위해 두 손을 내미는 것도 괜찮은 어른의 자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렸을 때 봤던 예능 중에 네다섯 살쯤 되는 아이들이 단어를 설명하면 어른들이 맞추는 예능이 있었다. “엄마랑 이걸 하면 만세를 해야 해요” 정답은 ‘목욕’, “이건 딱 내 손가락만 해요” 정답은 ‘콧구멍’ 같은 식이었다. 어느 날 “이걸 처음 혼자 했을 때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어요”라는 문제가 나온 적이 있고, 나는 ‘두 손에 물을 담을 수 있게 되었을 때’라고 속으로 정답을 외쳤었다.


 두 손에 물만 가득 담을 줄 알아도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나는 꽤 많은 것을 해낸 어른이 되었다. ‘안 되는 것보다 되는 것’이 많아지는 시기의 궁금증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다시 가질 순 없겠지만, 그때보다 내 두 손으로 더 많은 것을 세상에 베풀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행에 대처하는 30대의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