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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래 Mar 22. 2021

울고 있는 사진을 올릴 수는 없잖아

사실 이건 비밀인데 나 별로 안 행복해

 서른이 넘어가면 적당히 멀고 적당히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이 생겨난다. 한 때는 평생 인연이 될 것처럼 매일같이 만나 붓고 마시던 사이였으나, 이제는 일 년에 한두 번 생일이나 경조사 때 연락하는 그런 사이 말이다.


 외부활동, 동아리, 공모전, 스터디 모임 등등 내게도 한 때는 그런 열정 넘치는 카톡방이 잔뜩 있었으나 대부분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은 그나마 있는 대학 동기, 회사동기 카톡방에도 파리가 날린다. 나는 이들을 구남친처럼 구지인이라고 부른다.


 정말 오랜만에 구지인들을 만날 때면 으레 주고받는 말이 있다.


 너 인스타 보니깐 좋아 보이더라!

1 나는 이 말이 ‘네가 요즘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네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네 모습은 잘 봤고, 그런대로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하다고 생각해!’라고 들린다. 왜냐면  나는 그런 목적으로 사진을 올렸기 때문이다.


 “아냐, 현생은 거지 같아! 울고 있는 사진을 올릴 순 없잖아!”라고 괜히 너스레를 떨지만, 그들에게 나의 불행을 들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심사숙고 끝에 좋은 곳, 멋진 옷, 예쁜 것으로 피드를 채우길 잘했다 생각한다.     

출처 : Unsplsh @georgiadelotz

 아이러니하게 싸이월드와 같은 예전 SNS를 지배했던 감정은 다크함이었고, 당시의 나는 불행함과 슬픔, 고독과 외로움으로부터 우월감을 느꼈다.


 눈물 셀카는 찍어 올리지 않았지만, 남들과 다른(줄 알았던) 나만의 성숙한 감성을 담아 글씨 위에 떨어진 눈물자국 사진 몇 개는 올렸던 것 같다. ‘변화는 있지만, 변함은 없기를...’ 이런 말도 안 되는 문구 위에 말이다.


 그 마음이 과장되긴 했으나 적어도 가짜는 아니었으며, 진짜를 드러내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너무 드러내서 문제였지)

나 좋아하지마..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사람은 누구나 자기 과시의 욕구가 있다. 다만, 어렸을 땐 나만의 유니크한 감성을 전시하곤 했는데, 이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에 나를 투영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남들과 같아야, 남들이 부러워해야, 남들과 함께여야 살기 편한 세상이라는 걸 터득한 건 잘못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요즘 가끔씩 내 SNS에 있는 사진이 몸서리치게 싫어질 때가 있다. 평소 잘 가지도 않는 레스토랑에서 잔뜩 찍은 스테이크 사진이 싫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 가깝게 붙어 찍은 셀카도 싫다.      


  잔뜩 몸집을 키워 내 마음의 가난함을 가까스로 가려낸 순간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실패와 불행, 얘기해봐야 가십과 동정의 대상이 될 법한 그런 것들.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로 애써 치장한다고 해도, 그런 것들은 끝내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린 모양이다. 서른 셋이 되어서야.


 몰랐다면 모를까 알아버린 이상, 이제는 내가 나를 가여워하고, 보듬어주고, 그럼에도 이겨낼 용기를 조금씩 가져보려고 한다. 남들의 일상을 질투하지 않는 연습, 나의 일상을 억지로 행복한 척하는지 않는 연습도 함께.


출처 : http://www.mediad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313


 심리학적 현상인 ‘가면 증후군’이란, 자신의 성공이 노력이 아니라 순전히 운으로 얻어졌다 생각하고 지금껏 주변 사람들을 속여 왔다고 생각하면서 불안해하는 심리이다. 타인에게 높은 수준의 기대를 받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높은 사람들이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겪을 충격을 사전에 완화하려는 방어기제의 일환이라고 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가면이 나인지, 내가 가면인지 모르는 상태가 되기 전에, 나는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솔직해져야 한다.  그렇다고 울고 있는 사진을 올릴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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