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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래 Feb 05. 2024

[리뷰] 이대로 마흔이 될 순 없어 - 유지혜 저

이대로 마흔이 되면 뭐 어때서!


 몇 해 전, 에세이 쓰기 수업에서 '소재 정하기'를 주제로 이야기하다가 (정확히는 '팔리는 소재') 강사님께 들었던 말이 있다.


육아는 추천하지 않아요. 엄마들이 육아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거든요!


 그 당시 아이가 없던 나는 '오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의 감상이었지만, 두 돌남짓의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의 현시점에서 돌아보건대, 누를 수 있을 만큼의 '좋아요'를 누르고 싶은 명언이 틀림없다.



 누군가 '양가감정이란 뭘까?'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이를 낳아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이는 너무너무 소중하고, 존재만으로 기쁨 그 자체이자, '나는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환희 그 자체다. 하지만 동시에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할 정도로 극대노의 시간을 겪게 되기도 하고, 30여 년간 '나'로서 살아온 시간을 부정당하며 끝을 모르게 침잠하는 시간을 겪기도 한다.


 많은 여성들이 겪는 '산후우울증'은 원인불명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실체와 이유가 명확한 편이다. 내가 겪어야 할 상실의 대상(젊음, 커리어, 머리카락, 관절 등..)은 확실한데, 그에 비해 내가 얻을 것(혹은 얻을지도 모르는 것)의 정체는 미지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앞둔 내 심정이 그랬다. '나도 곧 마흔인데, 불안한데, 읽어보고 싶은데'라는 마음과 '아, 됐어. 이대로 마흔이 되면 뭐. 이거 읽을 시간에 10분이라도 더 자자'하는 마음이 정확히 50:50으로 나를 괴롭혔다. (아직 책을 안 읽었으므로) 책을 읽고 얻을 것은 불분명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못 자는(혹은 못 노는) 것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우여곡절 끝에 책을 읽고 나서도 같은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난 저자처럼 이렇게 열심히 못 살아. 난 안될 거야'하는 마음과, '나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저자는 100개를 했지만 그중 1개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이 반반치킨처럼 공존한다. 그럼에도 심판이 '둘 중에 입장을 딱 정하라'라고 한다면, 못 이기는 척 엉덩이를 삐죽삐죽 움직여 후자의 편에 설 것이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만으로 이 책을 읽을만한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아이를 낳기 이전의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한 꽤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법과 과정을 제시한다. 마치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느낌인데, 오은영 선생님의 명언 "다 울었으면, 이제 할 일을 하자"의 느낌이랄까. 내가 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저자의 경험에 근거하여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데 그것만으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저자는 '조금 덜 울 수 있는' 솔루션을 제시해주고 있고, 나는 또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네 선생님 (훌쩍)
"내가 사용한 육아 우울 퇴치 방법은 세 가지다. 우선 육아 외에 성취감 드는 활동을 한다 육아는 '업무강도'에 비해 성취감과 보람이 놀라우리만치 적다. (...) 반드시 정신 건강을 위한 샘물 같은 무엇을 찾아야 했다. (...) 다음으로 지원군을 확보한다. (...) 마지막으로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음을 상기한다." - 본문 중에서 -
"직장 업무와 육아, 집안일로 정신없어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발전하고 싶은 워킹맘이 많다. (...) 육아와 일, 공부까지 해내기에 시간과 에너지는 충분하지 않다. 우선 공간을 확보한다. 집 안이 잘 보이는 곳에 공부 전용 공간을 마련한다. (...) 그다음에는 시간을 확보한다. 공부 시간은 이른 새벽을 추천한다(...) 나는 귀가와 동시에 취침 준비 모드로 행동한다. (...) 침대에 눕는 목표 시간은 9시로 하되, 아이와 책을 읽더라도 10시를 넘기지 않고 잠든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공부의 텐션을 유지한다. (...)" -본문 중에서-


 이렇듯 '무조건 새벽 네시반에 일어나서 공부하세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 '어떻게 하면 일어날 수 있는지'의 방법론을 꽤나 자세하고 와닿게 설명해 준다.


 사실 미라클 모닝이든 갓생이든, 우리 모두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현실에 옮기기 어려운 것들이 많지 않은가. 아주 사소한 넛지(Nudge,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를 제시해 줌으로써 약한 의지를 보강하는 수단을 다양하게 소개해준다. 나는 실제로 잠들기 전, 다음날 입을 옷, 속옷, 양말, 시계를 현관 앞 방에 두고, 워치 충전기 위치까지 근처로 바꾸고 나니 수영장에 가는 시간이 10분이 단축되기도 했다.



 약대 출신의 저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근무하다가, 최근에는 제약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와중에 9년 반에 걸쳐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소위 말하는 '고스펙' 능력자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회사원인 내게 드는 기시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저자 역시 '초보엄마'로서의 시행착오를 겪었고, 육아기에 말로 다 못할 우울감을 겪었고, 조금이라도 편해 보이는 남편을 단연코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일과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 시간관리를 분 단위로 하는 등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다. 현재의 적당히 균형 있는 삶을 위해, 모든 것에 효율적이지만 정성스러운 에너지를 쏟아야 했던 것이다. 보이는 것과 달리, '원래 잘하는 건 원래 없었다'는 사실이 의외로 위로가 되고, '어쩌면 나도 조금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도 한 줌 생겼다. 선배 워킹맘으로서 겪은 길이 희미하나마 가이드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공식적으로 이 책의 타깃 독자는 '30대 워킹맘'인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은 '직장인을 위한 자기 계발서'에 준하는 정보와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한 팁, 시간관리 능력, '부캐' 만들기 스킬,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자기 계발 등 워킹맘이 아니라 just 워커(who is not a mom) 혹은 just 맘(who is not working)을 위한 정보도 가득하다.


 그래서 사실 내게 와닿는 부분은 밑줄을 그어가며 여러 번 읽기도 했지만, 박사학위 취득 과정 등은 '직장에서의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해야겠다' 정도로 생각하며 가볍게 읽으며 넘겼다. 원래 책이란 몇 년 전에 와닿았던 부분이 지금은 시시하게 느껴지도 하고, 그때는 관심 없던 부분이 먼 훗날 새삼 와닿기도 한다. 몇 해가 지나 다시 책을 꺼내볼 때는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하루가 길고도 고되지만, 그만큼 알차고 밀도 있다는 뜻이다. 회사로 치면 보통 하나도 맡기 힘든 프로젝트를 세 개쯤 짊어지고 가는 PM정도의 느낌인데, 그래서 이도저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느낌과 죄책감과 싸우다 보면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놓아버리는 여유와 쉼도 필요하지만, 결국 소진된 자신을 채우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효율적인 마인드셋과 요령이 필수다. 공감과 위로, 그리고 현실적인 대안과 미래지향적인 인사이트가 동시에 필요한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이 책을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 굳이 슈퍼우먼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슈퍼우먼의 삶과 비결이 궁금한 보통맘

 - 슈퍼우먼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됐다' 싶을 정도의 일가정양립/성장희망하는 워킹맘

 - 인생을 치열하게 살고 싶고, 직장 내에서의 성장경로와 방법을 고민하는 30대 직장인


※ 본 리뷰는 '책세상'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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