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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Nov 09. 2020

아무짝에 쓸모없는 배우자상

남편의 재발견



결혼 전 나의 배우자상은 대략 이랬다.



가부장적이면 안된다. 나의 아버지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이셨다. 평상시엔 유머러스하시고 따뜻한 분이시지만 중요한 순간엔 ‘내 말이 법이요’ 스타일이랄까. 나의 의견은 말대답이었고 나의 생각은 머릿속을 나가기도 전에 차단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유년시절은 답답했다. 나는 ‘네 말도 일리가 있어.’라고 말해주는 남자를 원했다.



이런 면에서 남편은 아버지와 사뭇 달랐다. 물론 남편은 본인의 사고방식에 엄청난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라 남편을 설득하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과 노력,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아버지가 ‘내 말이 법이요’ 스타일이라면 남편은 뭐랄까. ‘토론을 시작하지’ 스타일! 한 번에 수긍해주는 법이 없다. 그래도 남편은 내 말을 기꺼이 들어주는 사람이고 먼저 미안하다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성격에 관한 추상적 기준이 보수성이었다면 조금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에서 딩크는 사절이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딩크 부부를 존중한다) 나는 비혼 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결혼이 필수라 여기지도 않았다. 혼자 먹고살 만큼 돈을 벌고, 내가 번 돈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생활이 좋았다. 매년 휴가 계획을 세워 홀로 여행도 떠났고 책도 보고 싶은 만큼 사 읽었다. 나를 위한 선물도 종종 했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하기는 어려우리. 싱글 생활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기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싱글 때 누리던 것들을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을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싱글 시절에도 육아는 가치로워 보였고 실제 육아를 하고 있는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 육아의 보람은 싱글 때 누리던 행복과 종류는 다르지만 크기는 훨씬 컸다. 이런 면에서 나와 남편은 완전히 마음이 통했다.

그래도 조금은 그리운 싱글시절



크게 두 가지가 가장 중요했지만 그 외에도 식당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라든지, 마마보이는 안된다든지,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든지, 내지는 특권의식이 없어야 한다든지 등의 기준들은 많았다. 모든 면에서 퍼즐처럼 딱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내 기준에 백 프로 맞는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 내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그리고 고작 1년 살아보며 조심스레 내리는 결론은 ‘기준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음!’ 탕탕탕!!! 연애시절 좋았던 면이 알고 보니 마냥 좋아할 것이 아니라 느껴질 때도 있고, 반대로 전혀 몰랐던 아름다운 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먼저 자리 잡고 있던 콩깍지는 벗겨지고 또 다른 콩깍지가 등장. 콩깍지가 아주 열일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남편은 예의가 바른 사람 중에도 아주 바른 사람이라 좋았다. 그런데 함께 지내며 남편의 예의 바름 속에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일단 사람을 믿고 보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의심이 앞서는 스타일. 나의 성격이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니 남편의 성격도 무조건 나쁘다 할 수 없다. 하지만 남편의 의심 탓에 말로 다 못 할 억울한 일들이 많았기에 남편의 예의바름이 가끔 못마땅할 때가 있다.



반대의 예를 들자면 연애시절 없던 헌신하는 모습을 발견한다거나, 장난스러운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 남편은 나 못지않게 ‘난 소중해! 난 나를 사랑해!’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가족이 되니 헌신의 아이콘이 된다. 남편의 슬로건이 ‘내 가족은 소중해. 난 내 가족을 사랑해!’로 바뀐 걸까. 그리고 연애시절 남편은 묵직한 이미지를 고수했다면 지금은 나를 웃겨주는 남편이다. 자기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남편, 무표정보다 웃는 표정을 더 많이 보여주는 남편이 낯설지만 기분 좋은 변화로 다가온다.



시어머니는 결혼 전 이런 말씀을 나에게 종종 하셨다.

‘지금은 콩깍지가 씌어서 그래. 나중엔 지금 괜찮은 것도 안 괜찮을 거야.’

나보다 남편과 훨씬 오래 사셨으니 내가 모르는 남편의 모습들을 속속들이 아실 터. 내가 남편에 대한 하트 뿅뿅 발언을 할 때마다 어머님께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대답을 해주셨다. 또 다른 말씀으론

‘우리 00 이가 정이 많고 따뜻해. 순수하고.’

연애 땐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라 믿기 어려웠지만 살아보니 정말 그렇다.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좋은 면들도 더 많을 거라는 뜻. 그야말로 남편의 재발견이다.



어머님의 말씀에는 많은 복선이 깔려있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는 조금씩 알게 된다.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결론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다가올 결말을 모르니 지금은 일단 행복한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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