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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Nov 08. 2020

다시 태어나도 막내로

언니야, 읽고 있니?

2녀 중 둘째. 나는 막내다. 막내로 살며 받은 특혜들을 열거하자면 이 글은 팔만대장경 급으로 길어진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엄마는 ‘엄마가 선생님인데 애들은 왜 저럴까?’ 같은 말을 듣지 않으려 기를 쓰고 우리 자매의 교육에 매진했다. 특히 그 열정은 첫째였던 언니에게 당연히 먼저 집중되었고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엄마는 다소 지친 경향을 보였다. 첫째에게 집중되는 관심 탓에 소외감을 느끼는 막내들도 많다곤 하지만 엄마의 열의가 다소 부담스러웠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핵 이득’이었다.

(엄마의 변을 추가하자면 자유분방한 내 성격 탓에 나는 시켜도 안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와 아빠가 기억하기론 엄마가 분명 먼저 지쳐있었다.)



언니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밤 12시까지 고사리손으로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숙제를 하는가 하면 열 손가락이 부족할 만큼 많은 학원을 다녔다. 당시로선 이름도 생소한 컬러 믹스 학원(색 점토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드는 학원이었는데 점토를 쪼물쪼물하면 두뇌 발달에 특효라는 이유에서 다녔다), 색종이 접기 학원, 성악 과외, 플루트 레슨까지 안 다닌 학원이 없었다. 나의 키는 167cm, 언니의 키는 158cm. 언니는 어린 시절 잠도 못 자고 열혈엄마의 착하고 말 잘 듣는 딸이 되어주었다.



착한 딸 이야기가 나왔으니 첨언하자면 언니는 나와 달리 한 번도 부모님의 말씀에 토를 다는 법이 없었다. 엄마가 요구하는 무리한 교육량도 묵묵히 해냈고 전공 선택도, 유학도, 대학원 진학도, 취업도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따랐다. 집중되는 기대에 실망을 안기지 않으려는 언니의 노력이 나에게는 애처로워 보였지만 정작 본인은 내성이 생겨서인지 힘든 기색이 없었다.



언니가 부모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켰으니 나는 내 맘대로가 가능했다. 돈 되는 전공을 강조하셨던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꿈을 먹고사는 전공을 선택했다. 외국에서 공부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엄마의 조언도 가볍게 무시. 그리곤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공도 살리지 않고 외국으로 드나드는 승무원이란 직업을 선택했다. 몸 약한 막내딸이 힘들까 걱정에서였는데 막내딸은 결국 직업 선택도 마음대로, 그만두는 것도 마음대로였다. 청개구리 막내였고 내가 선택한 길이니 힘들긴 해도 마음은 가벼웠다.



언니는 똑똑이었다. 일단 배운 것이 많으니 자연스레 아는 것이 많았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 경험이 만들어준 교훈 덕이 가장 컸다. 언니는 첫째이니 뭐가 되었든 나보다 먼저 접하게 된다. 새로운 경험 속에서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 몸소 부딪히게 된다는 뜻. 언니가 1위부터 꼴찌까지 똑 부러지게 순위를 매겨놓았던 덕분에, 물건을 사는 작은 문제들부터 진로를 정하는 큰 문제까지 나는 별 고민 없이 여러 가지 선택지들 중 빠르게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언니가 비포장도로를 곱디곱게 갈고닦아 놓으면 나는 그 위를 사뿐사뿐 걸으며 풍경까지 감상한 격이다.



우리 자매는 최근까지 거의 10년 가까이 함께 살다 각자의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살림을 나눴다. 함께 살던 시절 언니는,

‘막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막내라서 좋겠다’

같은 말들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첫째의 책임감을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을 해야 할 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위로라도 해주면 좋았을 것을. 평생 언니 덕분에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나는 하필 그때도 막내의 진가를 발휘했었더랬다.

‘응, 나는 막내라서 좋아. 다시 태어나도 막내로 태어나고 싶어.’

결혼 전 언니와 함께한 오사카여행



나는 언니 덕분에 편했고 지금도 언니의 따라쟁이 동생이다. 고민도 없는 편이고 걱정도 길게 하지 않는다. 욕심도 없다. 반대로 언니는 매 순간이 어려운 선택과 결심의 연속이었다. 따라쟁이 동생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이 꽤나 무거웠을 거다. 그랬기에 늘 고민하고 걱정했다.



그래서 언니는 내공이 강하다. 묵직하고 한 방이 있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도 적고 난관에 봉착했을 때 해결하려는 의지력도 강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일희일비하지 않는 침착함도 갖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생겼을 때 참아내는 인내심까지.



나는 막내의 특혜를 받고 자랐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막내로 태어나고 싶다. 그런데 그때도 언니가 나의 언니여야만 할 것 같다.

좋다, 다음 생에도 나의 언니로 오라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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