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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Nov 03. 2020

외향적이지만 내성적입니다

유느님은 되고 나는 안 되나요?


어린 시절 나는 까불이 막내였다. 성격이 명랑하고 애교도 많아 어딜 가든 사랑을 듬뿍 받았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수 십 페이지는 거뜬히 장식하실 외할아버지께서는 나를 ‘촉새’라고 부르셨다. 경상도에서 촉새는 마냥 나쁜 뜻이 아니다. 그만큼 말을 야무지게 잘해서 귀엽다는 뜻. 외할아버지께서는 손녀가 커서 대단한 변호사가 될 거라고 장담하셨다. 애정이 과하셨던 듯하다.

촉새. 가상의 새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존재하는 새였다니.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엄마는 ‘00 이는 어릴 때 어땠나요?’라는 남편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아직도 나의 외향적 성격 덕분에 생긴 에피소드들만 줄줄이 나열하신다. 나는 교육열에 불탔던 엄마에게 떠밀려 전교회장, 반장을 줄줄이 역임하셨더랬다. 어딜 가서나 당당하고 인기 많았던 막내딸의 모습은 엄마의 자랑이었을 거다.



성인이 된 나는 예외 없이 대부분의 상황에서 잘 적응했다. 특히 승무원으로 일하며 나이가 지긋하신 사무장님들, 까탈스러운 선배들, 풋풋한 막내들, 외국인 승무원들까지 모두 두루두루 잘 지냈다. 손님들의 요구사항에도 잘 맞춰주어 센스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완전히 친밀하지 않은 동료들도 모임이 있을 때면 빼놓지 않고 나를 불렀는데 모나지 않고 잘 어울린다는 이유였다. 어딜 가나 나에 대한 평가에서 ‘외향적’이라는 수식어는 빠지질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주 내성적인 사람. 연락하고 지내는 수 백명의 지인들 중 친밀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아주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친구 A와의 만남은 대개 이렇게 시작된다.



A: 나 근처인데 오늘 집에 있어?

나: 응! (집순이는 항상 집에 있기 때문에 ‘응’ 외의 대답은 드물다)

A: 0000에서 맥주 한 잔 해!



친구 A는 승무원 시절 동고동락한 동기다. 친구의 시원시원하고 내숭 없는 성격 덕에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우리 집은 공덕, 친구 A의 집은 마포구청. A는 나의 집 사랑을 알기에 멀리 나오라는 법이 없다. 나에게 이태원은 대전, 강남은 부산이다. 0000은 집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야외 테이블이 있는 맥주집인데 강아지를 데려갈 수 있기에 애용하는 곳이다. 크지도 않은 0000에서 우리는 먹태, 치킨 윙, 해물떡볶이, 피자까지 메뉴판에 있는 모든 메뉴를 시킬 기세로 끊임없이 맥주를 마신다. 그리곤 깔끔하게 12시 전 굿바이! 체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 12시가 넘으면 다음날 화장이 안 먹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모임도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적절히 대화에 끼었고 웃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 켠에는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침대에 눕고 싶은 욕망이 나에게 소곤소곤 집으로 돌아가라 꼬드겼다. 진돗개도 아니고 귀소본능이라니.



나는 집 밖으로 일주일을 나가지 않아도 별로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다. 코로나 중 육아로 거의 반년이 넘게 멀리 외출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폭발할 정도라면 나는 조금 답답하다 정도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만나는 것을 즐기진 않는다. 중요치 않은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정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는 나 혼자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내가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적게 해서인지 스스로는 말수가 적다고 생각한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하는 건 싫지만 집에서 혼자 춤추고 노래하는 건 좋다. 여행, 술집, 밥집, 쇼핑 모두 혼자 가는 게 편하다. 나의 취미는 집 꾸미기, 글쓰기, 독서, TV 시청, 산책이 전부. 물론 내성적인 사람의 전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성격도 아니고 취미로 유튜브 방송을 하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면 외향적이라기보단 내성적이지 않은가.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고 그러니 당연히 나서는 것도 별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대표니, 장이니 하는 것들을 뽑을 때면 적극 나서지 않는 나를 아주 의아하게 여긴다. 헛똑똑이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따라붙기 시작한다. 억울한 게 평소 내성적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외향적인 사람들에겐 ‘반전이다, 매력 있다, 이런 면모가 숨어있었네!’ 하는 칭찬이 따라붙는데 왜 반대의 경우엔 ‘헛똑똑이네.’란 비아냥거림이 따라붙을까. 이런 성격도, 저런 성격도 있는 것 아닌가.



최근 나에게 또 외향적이라는 사람에게 ‘제가 생각보단 내성적이에요.’라고 말했더니 ‘스스로를 너무 모르네!’ 한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타인이라니. 뭐, 남편도 내가 내성적이라고 하면 코웃음 치긴 하더라. 한 잔 하러 나오라는 지인에게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하니 ‘00이 답지 않게 왜 그러냐!’ 고도한다. 타인이 보는 나 답기 위해 컨디션을 무시하고 나갔어야 했나 보다.



[놀면 뭐하니] 란 프로그램을 애청한다. 한 번은 출연자들의 MBTI 검사를 주제로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유재석 씨의 검사 결과 중 가장 공감 갔던 내용. ‘사람 만나는 거 좋은데 싫음, 막상 만나면 잘 놂’

어! 이거 난데?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이 정도면 유재석 씨를 좋아하는 듯. 연예인이 잘 안 맞다는 유재석 씨의 말을 자막이 희화화 한다. 다른 사람에겐 천직으로 보일 정도로 잘하고 있으니 농담으로 들릴 수도. 하지만 스스로는 잘 안 맞다고 하는데? 나는 진심 같아서 별로 웃기진 않았다.

좋아해도, 잘 해도, 안 맞을 순 있다.



외향적이지만 내성적인 성격. 그런 성격이 어딨냐고? 아무도 안 믿어 줄 땐 권위자의 사례를 빌려오라고 했다. 유느님도 그렇다니 저도 그렇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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