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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Oct 31. 2020

나의 꽤 괜찮은 남편

나도 괜찮은 아내인가요?



남편과 결혼한 지 어느덧 1주년. 1년 동안의 우여곡절을 되돌아본다.



남편은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남편은 굉장히 섬세한 사람, 나는 정 반대의 굵직굵직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혼 초반은 endless 말싸움의 연속이었다. 남편은 말, 행동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는 사람이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면 남편이 나의 말 꼬투리를 잡아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한다고 생각했다. 뭐가 저렇게 할 말이 많을까 싶었다. 빨리 아기를 가진 탓에 고된 육아로 인한 컨디션 난조가 이어졌고 그래서인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명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지쳐 포기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때 남편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남편의 자세한 속사정을 알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사람이니 서로에게 느끼는 바는 다르지만, 느끼는 답답한 감정은 비슷했으리라.



우리의 차이점은 다양한 줄기에서 비롯되는데, 가장 큰 줄기는 아마도 가정환경일 거다.



결혼 전 먼저 결혼한 ‘인생선배’들의 조언을 들을 때면 비슷한 경제 수준, 교육 수준이 얼마나 중요한지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게 된다. 비슷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서러움에 대해 얼마나 질리게 들었던지. 그리고 결혼식을 올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결정적인 요소는 가정의 ‘분위기’. 생각해보면 남편의 가정과 나의 가정은 객관적인 수치로 따지면 비슷했을지 몰라도 분위기에 있어서는 확연히 달랐다.



시부모님은 굉장히 섬세하신 분들이시다. 행여 며느리의 감정이 상할까 단어 하나를 선택하실 때도 조심하시는 것이 느껴진다. 혹시 그날의 만남에서 내가 기분이 상할 일이 있었다고 생각되면 남편에게 나의 기분이 어떤지 확인하시는 듯했다. 대화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시고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대응해주신다. 결혼 초기 시댁과의 만남이 있을 때면 성향에 맞지 않게 신경 쓰지 않던 일까지 신경 써야는 것이 적응하기 힘든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1년을 함께하니 가장 감사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나의 부모님은 굵직굵직. 말보다 행동에 가치를 두시는 분들이시다. 말에서의 따뜻함보다는 행동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분들. 다만 시부모님들과 달리 대화에 적극적이지 않으시니 속마음을 알 수 없어 남편으로서는 눈치 보느라 적응이 힘들었을 터. 처음 우리 집에 다녀간 남편의 ‘신기한 경험’이라는 표현이 틀리지 않았을 거다.



나무의 몸통에서부터 갈라지니 생활 속에 마주하는 작은 가지들에 바람 잘 날 없는 건 당연지사다. 남편과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이도 싸웠다.



질리게 싸워서일까, 내가 코로나를 피해 친정에 두 달 정도 머무르며 떨어져 있는 시간이 생겨서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육아로 힘들고 지쳐있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서로에게 측은지심, 애틋한 마음이 생긴 이유가 가장 클 거다. 남편은 젊은 시절의 근력운동으로 만든 탄탄한 근육과 체력을 잃었고 나는 출산으로 칙칙한 피부, 틀어진 골반을 얻었다. 슬픈 이유지만 덕분에 우리의 싸움 횟수는 점점 적어졌고 다행히 싸우더라도 크게 번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남편은 좋은 면들이 훨씬 많다. 남편은 출산 후 본인의 커리어를 뒤로하고 100일 동안 육아를 전적으로 도왔다. 감정의 수렁에 빠질 일들이 많았지만 남편이 옆에 있어주어 산후우울증 만큼은 면할 수 있었다. 딸에게 지극정성인 아빠이기도 하다. 임신 중 서투른 처사로 나를 서운하게 한 일이 많았던지라 아이를 사랑하는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그야말로 딸바보가 되었다. 표현이 적고 무뚝뚝한 나에 비해 다정다감한 말로 내 기분을 살피는 남편이기도 하다. 나와 비슷한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 남편의 다정함과 침착함은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큰 이유 중 하나다.

남편의 가장 큰 장점은 순수함이다. 때론 낭만과 추억에 젖어 혼자만의 별로 떠나기도 하지만 눈이 크고 맑은 사람이다. sound body and sound mind, 그 귀한 것을 품었으니 자네 앞으로도 그 순수함만은 변치 말아라.

딸바보 남편



남편도 나도 결혼 전 몇 차례의 연애를 거쳐 지금의 서로를 배우자로 맞이했다. 길었던 연애도 많았지만 나는 만난 지 세 달만에 결혼하자는 남편과 살고 있다. 짝은 따로 있다는 말이 맞는 걸까. 조금 더 서로를 알고 결혼했더라면 덜 싸웠으려나. 아니다. 어쩌면 결혼 전에 어긋나 서로 남이 되었을지 모른다. 연애 과정에서 했을 싸움을 뒤늦게 하는 것일 뿐 언젠가는 거쳐야 할 과정이었을 거다.



다시 결혼 선배 등장. 첫 1년은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다는 말에 그 법칙을 보란 듯이 깨고 싶었지만 나는 법칙에 신빙성만 더하는 통계자료가 되고 말았다. 1년이 지난 지금 ‘힘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2년이 지난 나는 어쩌면 ‘힘들고 나쁘다.’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은 꽤 괜찮은 남편과 살고 있는데, 남편아 나는 괜찮은 아내인 거니?





낭만파 남편의 프로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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