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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웅 Jul 25. 2024

사소해서 부끄러운 단상 1


오늘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정경을 보며 쓸 수 있었고, 그래서 좀 더 오래 쓸 수 있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구름은 매일 아름답고 비현실적이다. 그렇다면 비현실적이라는 말은 얼마간 아름다움의 유의어일까? 현실을 초과하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일까? 그런 생각도 잠깐 하면서 구름 사진을 매일 찍는다. 찍지 않으려고 해도, 휴대폰을 꺼내 들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게 만드는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구름들. 그 곁에 머무는 느낌이 포근했다.



시집 해설 원고를 쓰고 있다. 1월에 이미 시집의 전체 원고가 있는 상태였다. 해설만 받으면 되는 단계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던 좋은 시인이라 쓰고 싶었지만, 논문을 써야 하는 학기라 거절 차원에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드렸었다. 7월에나 쓸 수 있다고. 그런데 흔쾌히 기다려주시겠다는 연락이 왔다. 출판사 사장님께서도 시인님께서도 기다리고 싶다는 말. 조금 놀라웠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아는 평론가들은 다들 잘 쓴다. 나만의 특색 그런 게 있을까? 나여야만 하는 지면, 그런 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나를 기다려준다는 마음이 자주 의기소침해졌던 1월부터 7월까지를 붙들어주었다. 고마운데, 고맙다고 직접 말하지는 못했다. 이전에도 꼭 나의 해설을 싣고 싶다고 말해주는 시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 그렇게까지 잘 쓰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가, 생각해보면 누구보다 열심히 쓰기는 한다고... 속으로 생각도 했다. 그냥 고맙다고 하고 넘겼던가.


어렵게 쓴 초고를 들여다볼수록 여러 마음이 차곡차곡 포개어진다. 같은 글을 봐도 어떤 날에는 이런 쓰레기도 실어주다니 싶어서 창피하다가 어떤 날에는 이런 아름다운 문장도 쓸 수 있다니 황홀하고 황송해진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다. 매끄러운 아름다움 말고 많이들 걸려 넘어지는, 넘어진 김에 좀 쉬었다 갈 수도 있는 울퉁불퉁하고 모난 아름다운 문장 말이다. 책임지는 아름다움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대책 없이 아름다운 문장이라도 자꾸 써진다면 고마울 것 같다. 글의 마지막에 “빛이 있다”라고 썼는데 그렇게 쓰고 나니 진짜 빛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늘 불안해하는 오지 않은 미지의 시간에도 빛이 머물러 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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