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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Aug 22. 2019

어느새 어른이 되고 만 내게 다시 온<어린 왕자>

이제서야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지다.

<엄마가 먼저 읽는 초등 고전 명작>이라 이름을 붙여 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그림책에 의지하던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점차 두꺼운 글책을 보면서도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추천해서 읽는 책이나 언젠가는 읽겠지 하고 사둔 고전 명작들을 읽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어린 왕자를 포함하여 15소년 표류기, 걸리버 여행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 그것이다. 어릴 적 한 번쯤은 우리를 거쳐갔던 이야기이다. 내가 이 책을 이야기라 한 이유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책의 이야기들이 어릴 적 만화영화나 짧은 단편집으로 엮어진 책, 혹은 교과서를 통해 잠깐 접한 내용이 그 이야기의 전부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좋은 책을 읽히고 싶다. 그리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 여전히 나의 작은 소망이다. 하지만 그림책보다 훨씬 두껍고 글이 많은 책들은 살짝 훑어보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렵다. 그래서 시작했다. 엄마인 내가 먼저 읽자. 아이와 함께 읽자. 그렇게 읽어나간 고전 명작들은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 또 다른 설렘과 감동을 입혀주고 있다. 그러니 꼭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읽었다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어른이 돼버린 나의 삶에 새로운 풍동이 되어 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 첫 시작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이다. 이 책은 작년에 아이와 함께 약 열흘에 걸쳐 잠자리에 읽어간 책이다. 27 꼭지로 나누어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하룻밤에 2~3개의 꼭지를 읽어주면 그림책 2~3권 읽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이렇게 열흘 동안 읽은 <어린 왕자>는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아이의 애착 책이 되었다.      


2015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를 함께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영화관의 컴컴함과 큰 소리를 극도로 싫어했다. 애니메이션을 배경으로 한 책이 있지 않을까? 아이와 함께 서점에 들렀다. 여섯 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나온 그림책이 있겠지 하는 기대로 찾아보았지만 만날 수 없었고, 결국 아이는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어린 왕자>중 인디고에서 나온 <어린 왕자>를 골랐다. 물론 이 책은 2~3년 동안 책장에 꽂혀 있기만 했다. 그렇게 책장에 잠들어 있던 책을 작년 우연히 발견하고 함께 읽게 되었다. 지금 우리 집 책장에는 다양한 디자인, 크기, 그림을 가진 여러 출판사의 <어린 왕자>가 살고 있다.       



'어린 왕자'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는가? 최근에 어린 왕자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여기저기에서 많이 인용되고 각색되어 온 이야기 몇 가지는 기억할 것이다. 모자 모양을 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기억한다면 다행이겠지만, 대부분은 여우와 어린 왕자와 나눈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실은 나도 그랬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아이가 되는 거고, 나는 너에게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여우가 되는 거지"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아."     


"네 장미꽃이 그렇게 소중해진 건 네가 장미꽃에 공들인 시간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많은 행성을 지나 일곱 번째 별인 지구에 도착한다. 그리고 사막에서 뱀과 꽃잎이 세 개뿐인 보잘것없는 꽃과 메아리, 장미꽃 무리를 만나고서야 여우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여우와의 만남은 지구에 도착하기 전 지나온 여섯 개의 행성과 지구에서의 여러 만남을 거쳐서야 나온다. 내 기억 속의 어린 왕자와 다시 읽은 어린 왕자의 이야기는 많이 달랐다. 나에게 새롭게 각인된 이야기는 더 이상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에 머물지 않는다.     


순진하기만 한 어린 왕자의 눈으로 보였던 어린 왕자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사막에 떨어진 비행기 조종사가 어른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혼자 행성에 살면서도 자신의 권위가 존중되기를 바라는 첫 번째 별의 왕. 두 번째 별의 허영심 가득한 사람.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세 번째 별의 술 취한 사람. 별들을 소유해 부자가 되겠다고 바쁘고 운동 부족인 네 번째 별의 사업가. 해마다 점점 빨리 도는 다섯 번째 아주 작은 별에서 가로등 불을 켜고 끄는 명령에 충실한 사람. 책상을 떠나지 않고 탐험가의 조사에만 의지해 지리책을 만들고 있는 여섯 번째 별의 지리학자. 


이 여섯 별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내 삶에 속한 나의 생활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괜스레 웃음이 났다. 어린 왕자의 눈에 비친 어른의 세상은 풍자 그 자체였다. 10년째 같은 회사를 다니며 쳇바퀴 돌 듯 정해진 일을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나를 어린 왕자는 다섯 번째 별에서 만난 가로등지기에 빗대어 놀리고 있었다. 왜 내가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가 궁금하다면 꼭 다시 <어린 왕자>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책을 지금 우리 아이가 이해하고 읽기에는 어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살 우리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지금 읽은 어린 왕자의 내용이 그대로 기억 속에 남아 어른이 된 때 다시 어린 왕자를 만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꼭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읽어볼 수 있기를 바라며 남편과 함께 어린 왕자를 필사했다.     


생텍쥐페리는 '레옹 베르트에게'라는 헌사를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을 어른들에게 바친 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사과를 구한다.'     

애초에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해 쓰인 동화라고 말한다. '어른들의 예전 모습인 아이들에게 이 책을 바치고자 한다. 어른들은 원래 모두 아이들이었다.'라고 하며 '어린아이였던 레옹 베르트에게'라고 헌사를 다시 쓰고 있다.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는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1929년 소설 <남방 우편기>로 데뷔한 작가이며 12살부터 비행기에 오른 비행사이기도 하다. 작가였던 생텍쥐페리에게 비행은 사색과 모험의 연장이었고, 비행 중의 경험과 동료들과의 우정은 많은 작품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진짜 비행 중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해 5일간을 걸어가다 극적으로 구조되기도 했다. 1943년 미국으로 망명했을 당시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어 있던 프랑스에 남아 있던 친구 레옹 베르트를 위로하기 위해 <어린 왕자>를 지필 했다. 레옹 베르트는 나치 독일이 학대하던 유태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어린 왕자>는 그가 실종되기 1년 전에 지필 되었고, 그가 실종된 후 레옹 베르트는 1944년 생텍쥐페리에 대한 기억과 그와 나눈 편지들을 모아 <생텍쥐페리와의 추억>이라는 책을 펴낸다. 그만큼 생텍쥐페리와 레옹 베르트와의 우정은 인종이나 지리적인 거리를 뛰어넘는 참다운 인간애의 발로였다고 보고 있다.     


두 번째, 세 번째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써가며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 그리고 그와의 우정을 보여준 레옹 베르트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아니 <어린 왕자>가 내 삶에 더 깊게 관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들과 연관된 또 다른 책들을 찾아 읽고, 어린 왕자를 토대로 각색된 수많은 책들을 이어서 보게 되었다. 특히 프롬비에서 출간 된 <지금도 어린, 어린왕자>를 읽고 있는 지금, 며칠 전 아이와 다투며 아이가 했던 어른에게 느끼는 부당함과 원망가득한 목소리가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 것 같다. 내가 무슨 잘못을 이 순진한 아이에게 했는지 말이다.

  

책으로 나와 함께 <어린 왕자>를 읽고 애니메이션으로 어린 왕자를 보고, 이동 중 오디오북으로 어린 왕자를 듣는 우리 아들은 그마다 해석되고 있는 차이를 조금씩 느끼고 있다. 물론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이야기하는 어린 왕자의 세상 풍자까지는 다가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어느새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진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였던 나와 어른이 된 나를 연결해 준 <어린 왕자>를 꼭 다시 읽어보기를 바란다.  


<참고도서>     

1. <어린 왕자> 앙투안 마리 로제 드 생텍쥐페리, 김화영 역, 문학동네

2.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저, 김미영 역, 인디고(글담)

3. <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저, 베스트트랜스 역, 더클래식

4. <지금도 어린, 어린왕자> 어린왕자 저, 이영아 그림, 프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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