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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Aug 30. 2019

조잘조잘 초록 지붕 집의 <빨강머리 앤>을 만나다

엄마도 소녀였단다.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으로 만났던 빨강머리 앤의 주제가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했던 빨강머리 앤을 다시 만난 건 올해 초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나온 오디오북을 통해서다. 사실 그 이전에 인디고에서 나온 빨강머리 앤을 사두고도 장식으로 책장에 꽂아두었다. 50부작이나 되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났던 빨강머리 앤이지만, 처음 책을 받아 들고는 두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다른 많은 책들에 밀려, 두께감에 밀려 못 읽던 책을 오디오북으로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반가웠다.   


이미 운동을 할 때나 출, 퇴근할 때, 아이들과 잠이 들 때 오디오북을 자주 애용했던 터라 조금 더 비싼 가격을 두고 덜컥 사서 시도 때도 없이 들었다. 길을 걷고 있으면 내 옆에서 함께 걸으며, 운전을 하고 있으면 보조석에 앉아서, 일을 할 때도 귓가에서 앤은 나에게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아니 혼자 잘도 떠들었다. 어쩜 이토록 말이 많은 아이가 있을까? 아마 앤을 맡아 기른 마릴라도 똑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연극배우가 읽어주는 빨강머리 앤이어서인지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겠지 했다. 하지만 다시 읽은 인디고의 <빨간 머리 앤> 속의 앤도 마찬가지였다. 따옴표가 시작을 하면 끝이 나오지 않고, 이리도 따옴표가 많은 책도 적을 거다.   

  

운전하는 내내 오디오북으로 빨강머리 앤을 듣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조잘대는 앤의 목소리를 이제 그만 듣고 싶다고 했다. 나를 에이번리의 초록지붕 집으로 이끌어 이렇게 사랑스러운 앤을 만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시간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남편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얼마 후 TV프로에서 누군가 “여자들에게 빨강머리 앤은 남자들의 슬램덩크죠.”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내가 왜 그토록 빨강머리 앤에 빠져 있는지를 이해하겠다 했다. 그리고는 이내 미안하다는 말까지 들을 수 있었다.     


나는 항상 나를 설명할 때 감성보단 이성이 앞선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표현 하나하나도 정감이 없고 메마르다. 하지만 빨강머리 앤은 나와는 정 반대로 감성이 풍부 그 자체였다. 모든 것 하나하나가 앤의 감성을 어루만지는 듯한 표현들을 만날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며 다시 돌아가 읽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표현들 말이다.     


“잠깐만 만져봐도 돼요, 아주머니? 자수정은 착한 제비꽃의 영혼이라는 생각 안 드세요?”     


진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보고는 자신의 기대했던 상상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울어버렸다는 앤이 마릴라 아주머니의 자수정 브로치를 보고 한 말이다. 자수정을 보고 ‘착한 제비꽃의 영혼’이라고 말하는 앤의 표현에 메마른 나의 감성지수는 쑥 끌어올려졌다. 어릴 적 읽었던 삼십 장 남짓 하게 문고판으로 나온 책으로는 절대 와 닿을 수 없는 그런 표현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꼭 전체를 다 읽지 못하더라도 단 10장을 읽더라도 꼭 전체 번역본을 읽어보라고 말이다.     


어떤 슬픈 상황도 웃음을 나게 만드는 앤의 처절한 슬픔의 표현과 어떤 소소한 상황도 사막 한가운데서 거대한 폭포수를 만난 듯 한 리액션들이 빨강머리 앤에 푹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나도 이런 앤의 감정 표현의 반의 반, 아니 그 반에 반만이라도 닮았다면 아들에게서 ‘엄마는 피도 눈물도 없지?’라는 말은 듣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앤이 하는 내 수준에서는 아름답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가슴 찡한 표현들에 더 매료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작가, 에이번리라는 마을의 초록지붕 집에 사는 앤을 만들어낸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2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조부모와 함께 자랐다고 한다. 소설 속의 배경이 되는 에이번리는 몽고메리의 고향인 캐나다의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캐번디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빨강머리 앤은 몽고메리의 어린 시절 상상력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선생님이 된 그녀의 경험이 앤에게 그대로 투영된 것이라 한다. 그랬기에 그토록 생생하게 옆에서 조잘대는 듯 한 앤을 그려낸 것이 아닐까?     


<빨강머리 앤>은 몽고메리의 데뷔작으로 출판사로부터 5번이나 거절된 작품이라고 한다. 6번째로 보낸 출판사에서 출간이 결정되어 처음 출간되었는데, 그 당시 출판사로부터 작은 인세를 받고 5년간 쓰는 후속 작으로 쓰는 책을 모두 출간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한다. 그때의 이야기를 쓴 몽고메리의 일기에는 이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반박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을 출간해 주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말이다. 이런 대작을 만들어 낸 소설가도 처음에는 나와 같은 여느 초보 작가들과 같은 마음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나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었다.     


여러 버전으로 <빨강머리 앤>을 만난 나는 완전 앤의 캐릭터에 푹 빠졌다. 그리곤 빨강머리 앤을 주제로 한 문구류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앤의 캐릭터를 만날 때면 어쩐지 어릴 적 내 친구가 공책에 그려준 그림을 오래 간직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일찍 얼리버드로 서울숲 갤러리아포레에서 전시되고 있는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의 표도 예매해 두었다. 추석이 오기 전, 아이들이 등교하자마자 바로 달려가 홀로 나만의 앤을 만나고 올 예정이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백영옥 작가가 쓴 에세이이다.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나자마자 나는 당연한 듯 구매했다. 하나에 빠져버리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읽어대는 버릇이 있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리고 백영옥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꼭 50부작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한 번 빨강머리 앤을 만나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바로 빨강머리 앤 애니메이션을 구해 달라 요청했다. 나와 앤의 만남을 방해했던 미안한 때문이었을 까 빨강머리 앤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바로 조치를 취해주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이후 앤의 후속작으로 어른이 된 앤 셜리의 교사 시절과 대학 시절 그리고 길버트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에이번리의 앤(Anne of Avonlea)>, <레드먼드의 앤(Anne of the Island)>, <윈디 윌로우스의 앤(Anne of Windy Poplars)>, <앤의 꿈의 집(Anne's House of Dreams)>, <잉글사이드의 앤(Anne of Ingleside)> 등이 그것이다. 이미 구입해 놓은 <에이번리의 앤>을 시작으로 하나씩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하나의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꼭 프린스에드워드 섬에 가서 진짜 앤을 만나고 오는 것이다.     


차를 타고 이동 중에 잠시나마 나와 함께 앤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아들은 내가 앤의 감성의 폭포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감성적이라 소녀의 이야기이기만 푹 빠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물론 빨강머리 앤을 들고 다니며 읽는 것이 놀림감이 되기 전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슬램덩크 같은 남자들의 세계의 거대한 산을 만나기 전에 말이다.     


<참고도서>     

1. 빨강머리 앤 (오디오북) - 초록지붕 집 이야기,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엄진현 옮김, 이지혜 읽음, 커뮤니케이션북스

2. 빨간 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김지혁 일러스트, 김양미 옮김, 인디고

3. 빨간 머리 앤(명화로 보는 클래식 명작 동화), 글 김은하, 그림 맥심 미트로파노브, 한국차일드아카데미

4.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arte

5. [네이버 지식백과] 빨강머리 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6. [네이버 지식백과] 빨간 머리 앤 [Anne of Green Gables]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영미문학, 2013. 11., 박순강, 이동일, 위키미디어 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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