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고전 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애 Sep 05. 2019

인생의 어디쯤에서 만난 <꽃들에게 희망을>

인생 지침서를 찾았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요즘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고 있는 YB의 ‘나는 나비’이다. 아빠가 즐겨 듣던 노래를 이제는 애들이 열광하며 배를 잡고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며 목소리를 짜내어 부른다. 남편의 노래 풍을 따라가는 고작 일곱 살, 열 살 밖에 안 된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아이들이 한창 이 노래를 열광하고 있는 요즘, 나는 딱 일 년 전 추석 시댁에 내려가는 막히는 차 안에서 아이들과 남편에게 읽어주었던 이 책을 꺼내 들었다.     


 눈에 익는 표지와 제목을 보면서 당연히 이 책의 내용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읽어가는 내내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어?를 연발하며 읽었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1972년 트리나 폴러스에 의해 쓰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공주니어에 의해 정식 계약을 거쳐 출판된 시기가 1999년이라니 분명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1999년이면 내가 고3 시절이니, 2000년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이런 유치해 보이는 노란 표지의 동화 같은 책을 찾아 읽지 않았으니 말이다. 개나리 같은 샛노란색을 좋아하는 내가 이 책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이 새삼 안타깝게 다가왔다.     


 알에서 깨어난 작은 호랑 애벌레 한 마리. 나뭇잎을 갉아먹으며 몸집을 키우기에만 급급하던 호랑 애벌레는 그저 먹고 자라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 어느 날 먹이를 제공해 주던 정든 나무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찾아 돌아다니다 애벌레 기둥을 발견한다. 그 기둥의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져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모두 그 꼭대기에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무작정 기둥을 기어오른다.     


“그래, 내가 찾으려는 것이 어쩌면 저곳에 있을지도 몰라.”     



 호랑 애벌레는 그 기둥 속으로 무작정 뛰어들어 올라가다 자신과 같이 무작정 기둥을 오르고 있는 노랑 애벌레를 만난다.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두 애벌레는 두 몸을 공처럼 돌돌 말고 기둥을 내려와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서로 사랑하며 시간을 보내던 호랑 애벌레는 그 시간이 따분해지고, 처음처럼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이게 삶의 전부는 아닐 거야. 무언가가 더 있을게 분명해.”     


 결국 호랑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무언가를 찾아 기둥을 올라간다. 이번에는 어떤 애벌레와도 교감하지 않고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꼭대기를 향해 올라간다. 그 사이 또 다른 희망을 찾아 나선 노랑 애벌레는 고치를 만들고 있는 늙은 애벌레를 만나 나비가 되기 위한 모험을 감행하고 나비가 된다.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과는 다르단다.”     


 결국 나비가 된 노랑 애벌레는 기둥의 꼭대기에 있는 호랑 애벌레를 찾아낸다. 호랑 애벌레는 꼭대기에 있는 것은 결국 나비라는 사실과 자신이 오르고 있던 기둥은 수많은 기둥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기둥을 기어 내려온다. 노랑나비에 이끌려 고치를 만든다.     



 큰 이상을 품고 회사에 들어가 성과를 내기에 급급한 작은 정치판에서 생활하던 1년 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리고 있는 것일까? 처음엔 어떤 목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애벌레들처럼 관성적으로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회사 생활에 회의감이 들 즈음 이 책을 만났고, 흡사 이 애벌레가 나의 일부인 듯 느껴졌다. 육 개월 뒤 나는 그 기둥을 내려왔다. 그리고 또 육 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꼭대기’에 오르려면 기어오르는 게 아니라 날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호랑 애벌레가 기둥을 내려오면서 깨달은 바처럼 나도 천천히 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나는 법을 배우고 날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너무 성급한 생각이었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몸을 숨기고 죽은 듯 보이나 살아 있는 고치가 되어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실을 뽑으려는 시도조차하지 않고 날아보려고 하고 있는 나를 깨닫고 조금 초라해진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채찍질을 하는 이 책을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은 행운이다.     


 “자율학기제 때문에 1학년 때는 시험이 없는데, 2학년이 되면 시험을 보고 공부할 애, 안 할 애가 구분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거지.”     


 어제 아이의 학교 엄마들을 만나 식사를 하고 차도 한잔 마셨다. 이미 중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자신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알지 못했던 아이들이 시험을 통해 자신의 등수를 알게 되면 자신감이 뚝 떨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시험을 위해 그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머릿속 세상에서는 아직 먼 이야기 같이 느껴졌고, 너무 엄마들이 열성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나는 혼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큰 아이와 다투었다. 네가 살고자 하는 삶을 살라면 지금 엄마가 시켜주는 거(공부, 체험, 교육 등) 잘 챙겨서 하라고, 스무 살이 되면 엄마는 모든 지원을 중단할 거고 그때부터는 너의 삶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일 때까지 이야기했던 나의 모습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결국 내가 아이에게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거실 바닥에 <꽃들에게 희망을>을 펼쳐놓고 쪼그리고 앉아 읽고 있던 우리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었을까?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오는데 왜 또 집에 와서 문제집도 풀어야 하는 거냐고 이해할 수 없는 눈빛을 보내는 아이와 타협을 했다. 그럼 학교에서 배우고 온 것을 엄마에게 설명해 줄 수 있겠냐고. 당당히 그렇게 할 수 있다며 오늘 배운 과학, 음악,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아이의 속도를 무시하고 너무 애벌레 기둥의 꼭대기로 올라가라고 닦달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 안에 살고 있는 나비를 보지 못하고...


 <꽃들에게 희망을> 속의 애벌레는 나 자신이 되기도 하고, 내 아이가 되기도 하고 또 함께 살고 있는 옆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애벌레들이 고뇌하고 궁금해하며 도전하고 깨닫고 또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들은 우리네가 사는 인생의 한 과정이었다. 그 과정의 어디쯤에 있든지 간에 또 고민하고 후회하고 도전하거나 주저앉기를 반복한다. 내 삶의 옆에 두고 꺼내 봐야 하는 인생 책을 만났다는 떨림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저자인 트리나 폴러스는 국제 여성운동단체인 ‘그레일 The Grail’의 회원으로 조각자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부재는 이렇게 쓰여 있다.      


‘삶과 진정한 혁명에 대한, 그러나 무엇보다도 희망에 대한 이야기, 어른과 그 밖의 모든 이들을(글을 읽을 줄 아는 애벌레를 포함하여) 위한 이야기.’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들었던 의구심이 하나 있다. 왜 이 책의 제목을 ‘꽃들에게 희망을’이라고 했을까? ‘애벌레에게 희망을’이라고 했다면 조금 더 어울렸을 텐데. 그래서 책의 원제를 찾아보았는데 역시나 ‘hope for the flowers’였다. 이 책을 여러 번 읽고 난 뒤 어렴풋이 저자가 지은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애벌레도 나비도 아닌 꽃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어본다면 조금 더 다른 시야에서 <꽃들에게 희망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한글 번역판으로 나오며 트리나 폴러스가 전한 감사의 말 중 마지막 구절을 남겨본다.     


 우리 모두 가장 중요한 것에 시간을 씁시다. 사랑하고 창조하는 것은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일입니다. 돈 한 푼 들지 않을 뿐 아니라, 베풀수록 늘어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삶을 선택합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잘조잘 초록 지붕 집의 <빨강머리 앤>을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