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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Oct 21. 2019

병아리 부화부터 이별까지

작은 병아리가 키워 준 아이의 마음

항상 호기심 가득한 아이를 위해 병아리가 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겠다고만 마음을 먹었다. 그리곤 대형마트에서 사 온 유정란 세 개를 골라 부화기에 넣었다. 나머지 유정란들은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달걀프라이가 되었다. 선택되어 부화기에 들어간 유정란에서 세 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났다. 우리 아이들은 그 병아리들에게 찍찍이, 짹짹이, 쪽쪽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항상 에디슨 한 명을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에디슨처럼 알을 품진 않았지만 결국 우리 아이는 병아리의 엄마가 되었다.


병아리 부화 과정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박스 안에 넣어둔 큰 전구와 보온을 위해 덮어 둔 수건 그리고 가동된 보일러로 인해 찍찍이와 짹짹이는 '날아라 병아리'의 얄리처럼 하늘나라에 갔다. 마음 여린 손주가 행여나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걱정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 몰래 병아리를 나무 아래 묻어주셨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간혹 보고 있던 드라마 덕분인지 병아리들은 '델루나'에 갔을 거라며 죽음 앞에 무던했다. 그렇게 큰아이의 병아리는 한 마리가 남았고, 그 병아리가 태어난 지 20일가량이 지났을 때 두 번째 병아리가 부화기에서 태어났다. 병아리가 태어날 때 처음 보는 사람을 엄마로 알꺼라고 동생을 근처에도 못오게 했다. 궁금함에 서러움까지 받던 작은 아이를 위한 병아리다. 그 병아리 이름은 짝짝이로 지었다.


쪽쪽이와 짝짝이(오른쪽이 쪽쪽이, 왼쪽이 짝짝이)


쪽쪽이는 유독 사람을 잘 따랐다. 상자 밖에 내어놓으면 사람 발걸음을 졸졸 쫓아다녔다. 큰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산책을 시키겠다고 놀이터에 데리고 나갔다. 쪽쪽이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부터 초등 고학년 아이들까지 놀이터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우리 아이는 그 우쭐함에 자주 놀이터에 데리고 나갔고, 그때마다 쪽쪽이는 사료가 아닌 개미를 잡아먹으며 영양보충을 했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메뚜기 몇 마리를 잡아 상자 안에 넣어주었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나 쪽쪽이는 메뚜기와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는 제대로 식사를 마쳤다.


이미 흰 깃털이 나와 닭인지 병아리인지 경계에 있는 쪽쪽이를 행여 키울 수 없다고 할까 봐 아이는 아침, 저녁으로 상자 속에 깔아 준 신문지를 열심히 갈아 주었다. 알레르기 비염이 심한 아이는 환절기와 함께 눈이 충혈되고 재채기와 훌쩍거림이 심해졌다. 아파트에서 더 이상 병아리를 키울 수 없다고 아이를 설득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집착했다. 상자 속 병아리는 털갈이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털이 많이 빠지고 날렸다. 조그만 상자 속의 닭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고 아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방 시댁으로 가는 주말, 우리는 병아리 두 마리를 담은 상자를 차에 실었다. 내려가는 두어 시간 동안 아이는 아빠에게 운전을 조심히 해 줄 것을 여러 번 당부했다. 행여 병아리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병아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병아리 두 마리는 다른 사촌들에게도 충분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 병아리들을 데리고 나가 산책도 시켜주고 모래사장에서 사욕도 시켜주었다. 병아리가 아주 행복해하고 즐거워했다고 했다.


손주의 알레르기가 심해짐을 보신 시부모님은 시골에 병아리를 가져다 놓는 것이 좋겠다고 아이를 설득했다. 아이의 건강이 염려되어하는 설득에 아이는 한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하지만 사욕을 하고 행복해하는 병아리를 계속 상자 속에 키워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자기가 자주 산책을 시켜주면 된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 차에는 병아리 상자 대신 사촌들을 태우게 되었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 사촌들을 집에 데려다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병아리를 잊고 사촌들과 즐겁게 엘리베이터에 올라 탄 줄 알았던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쪽쪽이 두고 가야겠다."


얼굴에는 어릴 적 나도 느꼈던 그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곰돌이'라는 한 달 정도 된 발발이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내 기억에는 쪽쪽이처럼 한 달 남짓 우리 집에서 길러지다가 시골에 두고 왔던 것 같다. 다행히 곰돌이는 시골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만날 수 있었지만 집에 함께 돌아갈 수 없었던 '곰돌이'때문에 집에 오는 내내 마음이 허전했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물어봤다. 왜 쪽쪽이를 두고 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할머니가 병아리 숨겨둔 거 보고 그랬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의 결심에는 다른 뜻이 있었다. 손주의 건강을 염려하고 병아리를 기르는 수고를 감수하겠다는 할머니의 걱정을 헤아렸던 거다. 생각보다 많이 자란 우리 아이. 잠깐이었지만 우리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병아리 덕에 우리 아이의 마음속 깊이는 한 뼘은 깊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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